투고하는 마음
이현우의 음악앨범을 배경음악 삼고, 간간이 들리는 빗소리를 곁들여, 차분하면서도 적당히 상기된 채로 책상에 앉았다. 온라인 서점 사이트를 열어 '에세이'를 클릭하고, 하위카테고리 중에서 일상, 감성, 가족, 치유, 여성 등의 키워드와 연관된 책들을 훑으며, 제목과 내용이 끌리는 책은 상세페이지까지 더 읽어내려간다. 제일 눈여겨보게 되는 건 '작가소개'다. 검색창을 하나 더 띄우고 OO출판을 입력해 출판사에서 출간한 다른 책들의 결을 본다. 저명한 분들의 책만 출간한 출판사라면 이쯤에서 접는다.
투고해보고 싶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면, 그러니까 내 원고를 제목이라도 읽어봐줄 것 같은 기대가 되면, 메일창을 열어 이메일 주소를 복사해두고, 캔바 사이트를 연다. 만들어 놓은 출간기획서 마지막페이지에 해당 출판사 로고와 이름을 입력해 새로 저장한다. 다시 메일창으로 돌아가 제목, 내용, 첨부파일을 하나씩 채워넣고 출판사 이름에 오타가 없는지 확인 후 발송한다.
지금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총 스물한 곳에 투고했다. 서른 곳을 채울 때까지는 계속 해볼 생각이다. 무소식을 '대답'으로 여기면서, 현실을 배우고 대안을 궁리하는 시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충천했던 자신감은 밀물다음 썰물이 따라오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빠져나가는 중이다. 의기소침과 담담, 그 사이를 오가면서 소진된 마음이 충전되면 한 차례 다시 투고해볼 의지가 생긴다. 새롭게 충전한 기대감이 무색하게 역시나 회신이 없으면, 어쩔수 없이 한동안 낙담하게 된다. '그래 세상에 글 잘 쓰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데. 내가 쓴 글이 많은 자원을 들여서 책으로 붙박을 만큼 대단한 메시지도 아닌걸. 나는 왜 감히, 꿈을 꾸고 있나.'
두어 번만 더 하면 '투고기'는 일단락 될 것 같다. 마치 별 스릴도 없으면서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는 유아용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적당한 기대와 예상한 낙담 사이를 오간다. 탈고 후의 수순으로 투고를 하고 있는 이유는 어떤 행운을 기대해서라기보다 내가 쓴 원고에 대한 최선을 다하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했으나, 그 안에서 경험하고 얻어지는 것이 적다면? 굳이 돈을 내고 유아용 롤러코스터를 계속 탈 이유는 없을 것이다. 차라리 그 돈(에너지)을 어느 곳에 써서 더 나은 경험을 해볼지 모색하는 게 내게 더 유익할 것이다. '투고기'의 다음은 온라인 플랫폼 연재가 될 수도 있고 부크크 출간이 될 수도 있다. 하나씩 쪼개고 다듬어서 작은 수필 공모전에 여러 편 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는동안 나의 글쓰기 이력도 조금씩 쌓이겠지. 그러고보면 가능성은 여러 길로 이미 열려 있다.
스물한 곳 중 1/3은 아예 수신확인이 안됐다. 투고를 받지 않아도 출간을 기다리는 원고가 많아서 더이상 확인할 필요가 없는 메일함이지 않았을까 싶다. 나머지 2/3가량은 수신확인이 되었지만, 아마 내 원고를 읽어보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1차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출간기획서를 통해 내 원고를 잘 포장하지 못했으므로. '그럴듯한 명함이 없는' 신분임을 밝힌 메일 내용만 읽고 출간기획서를 아예 열어보지않았을 수도 있다. 메일 내용에 끌려서 출간기획서를 열게 되고, 출간기획서를 통해 본 가능성으로 샘플원고를 읽게 되며, 관심이 점점 커져야 전체원고까지도 클릭하게 될 것인데. '이정도면 되겠지'하며 혼자 만든 출간기획서는 베테랑을 낚을 정도의 역할을 잘 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여러 가능성을 타산하다보니 '낙담'을 사서 할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투고 메일에 긍정적인 회신이 돌아오지 않았다고 해서 '내 원고가 별로구나.'라는 의미로 해석할 필요가 없겠다는 자각이 든 것이다. SNS활동으로 인지도를 쌓아오지 않은 그저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에. 유혹적인 기획 능력을 발휘하지 못해 전체적인 방향성이 너무 평범해져버린 까닭에. '전체 원고'가 읽힐 기회조차 없었던 것이라면? 내 글이 별로구나, 나는 글쓰는 재능이 없는가보다, 등등의 자괴감을 부러 느낄 필요가 없는 것 아니겠나? 그렇게 생각하니 다시 가슴 한복판이 채워졌다. 부족한 글이든 안팔리는 글이든, 내가 쓰고 싶다면, 계속 쓰면 되지 않겠나..그런 배짱이 생기는 것이다.
딱 두 군데에서 답메일이 왔는데 한 곳은 '출간 방향이 맞지 않아서'였고, 한 곳은 '검토하는데 시간이 걸려서'였다. (형식적인 복붙이겠지만) 답장을 보내주었다는 데 진심으로 감동했다. 두 출판사의 책은 앞으로도 애정을 갖고 볼 생각이다..ㅎㅎ 첫 회신을 받은 날, Re: 가 달린 메일 제목만 보고서 심장이 떨려 바로 클릭하지 못하고 김칫국부터 드링킹했던 것도 추억이라면 추억이겠다.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