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 감자를 보면, 엄마 생각이 나

by 달밋

- 나의 오늘



패딩을 꺼낼까 고민하는 나를 보니, 어느덧 겨울이 눈앞에 완연하게 찾아왔나 보다.


오늘은 일을 하다 오른쪽 중지의 살갗이 찢겼다. 짧은 순간에 통증이 찾아오더니, 살이 많이 벗겨진 탓에 피가 꽤 흘렀다. 연고가 없어 밴드를 붙이는데, 문득 고2 수업시간 때 그림을 그리려고 몰래 연필을 깎던 중 깎을 때의 반동으로 칼로 내려쳤었던 네 번째 손가락이 생각이 났다.

7년이 지난 탓에 지금은 흔적을 찾을 수 없지만, 그럼에도 나는 아직 손을 다치면 그때가 생각이 난다.

내 중지를 보라. 옷을 입었으니

물론 그 기억도 잠깐. 찰나의 실수로 다친 내 중지를 지혈하면서도 짧은 행동으로도 이렇게 아프니, 말을 함에 있어 더욱 조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 몸에 새겨진 상처는 금세 회복되지만, 마음에 새겨진 상처는 그렇지 않으니까.


이렇게 잊고 있던 깨달음을 준다면, 이 정도 상처는 내게 유익한 상처겠지?



- 감자와 고구마는 별로다.


나는 감자와 고구마를 좋아하지 않는다. 싫어한다기보다는, 말 그대로 좋아하지 않는다. 퍽퍽한 식감보다는, 먹은 후에 너무 답답하기 때문에 그렇다. 나는 감자를 보면 7살 무렵 엄마가 떠나던 순간이 떠오른다. 내가 기억하고 싶어서 생각나는 것이 아닌, 그저 그 상황, 그 순간에 내가 하필이면 어린이집 종일반에서 간식으로 나온 찐 감자를 먹고 있었기 때문에, 감자는 내게 있어 그 순간의 조연이 되어버린 듯하다. 고구마는 뭔가 감자랑 비슷해서 좋지 않다.

이 정도면 고구마가 가장 억울하려나?


아마 앞으로도 감자와 고구마는 의도치 않게도 내게 ‘내키지 않는’ 음식으로 평생 배척받지 않을까.



- 매복!! 매복이다!!


사진은 추억을 담는다. 그 순간의 모습을 생생하게 저장해, 나중의 우리에게 그 순간을 다시 복기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래, 사진은 추억을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옛날 사진을 보고 진심으로 놀라거나 하지는 않는다. 자신을 피사체로 예전에 사진을 찍었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사진이 아닌 다른 복병에 연관된 기억에 놀랄 때가 많다.

대표적으로 멜로디가 있겠다. 요즘은 음악이 어딜 가나 흘러나오는 시대이기 때문에, 길을 걷다 흠칫흠칫 놀라고는 하는데 이것은 항상 그 노래들이 내가 잊고 있었던 것들을 일깨우는 탓이다. 어쩌다 팻두의 노래를 들으면 중학생 때 신경치료를 다니던 치과에서의 고통이 떠오르고, 크러쉬의 잠 못 드는 밤을 들으면 스무 살 때의 방황이, 2lson의 노래에는 병영생활이... 떠오른다. 사진을 찾아본 것도, 기억해내려 한 것도 아닌데, 마치 ‘무조건 반사’처럼 연결이 되어버리니 참 당혹스러울 때가 많다.

길을 걷는 것도 그렇다. 별생각 없이 걷던 길에서 옛 기억이 떠오르고, 강제적인 회상에 돌입한다. 길조차 기억을 품는다. 아니, 감자와 손의 상처마저도 옛날을 기억하게 하니, 이 정도면 인생의 여러 요소가 기억을 품는다고 말해야겠지.


뭐 이것에 딱히 거부감은 없지만, 문제는 사진이 아닌 다른 복병들은 내가 원하지 않는 기억까지 떠오르게 한다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 있게 마련인데, 잊는 것이 유익한 기억도 있을 텐데, 이런 기억들이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날아와 어퍼컷을 때리면 기분이 참 별로인 것은 나뿐만은 아니겠지.



- 기억은 감정을 어느 정도 싣고,


나는 일기를 ‘순간을 동결시키는 선택적 기록’이라고 생각한다. 하루를 살며 인상 깊었던 점, 잊고 싶지 않은 것들을 끌고 가 나중에 펼쳐보기 위한 것이 일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종종 인생의 책갈피로써 작성을 해왔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일기장을 펼쳐보면 그 시절의 감정이 다시 차오르고는 했었는데, 감정을 싣고서 내게 전달해 주는 것은 일기장 속의 묘사와, 연결된 기억이었다.

기억은 이런 식으로 예전의 감정을 어느 정도 다시 느끼게 해 준다. 행복했던 시절의 사진과 기억은 그 시절의 행복감을 전달해주기에 기분이 좋아지며, 불행했던 시절의 기억과 관련된 요소들은 부정적인 감정의 고개를 들게 한다. 나 역시 ‘이땐 좋았지’라고 옛날 생각을 하며 행복해했던 경험이 있고, 또 계속해서 트라우마를 찔러대던 요소들에 시달려 눈물에 절어 보낸 시간들이 있었다. 기억이 품은 행복에 사람은 희망을 품고, 기억이 심은 트라우마에 사람은 몸부림치는 것이리라.



- 망각을 다오


시간이 흐를수록 기억은 조금씩 무뎌지기 때문에, 기억 속 감정도 서서히 무너져 내렸던 걸까? 지금은 감자를 보면 꺼려지긴 하지만 슬프지는 않다.

25년을 살며, 좋지 않은 기억은 지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감자도 좋아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나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다행히 감자의 기억은 극복했으나, 아직 예상치 못하게 내 감정을 괴롭히는 기억들을 다 지워버리고 싶기에, 사람들의 트라우마 치료에도 도움이 될 것이기에.


누가 내게 레테의 강물 좀 주면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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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다친 데서 시작한 생각이, 어느새 여기까지 흘러왔다. 글을 잘 쓰지 않던 요즘이라, 뭐라도 쓰고 싶었던 것이었을까? 두 시간 정도가 지났지만, 생각정리 훈련을 오랜만에 한 것 같아 기분이 꽤 좋다. 이제 해를 맞이하며 꿈을 꾸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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