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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진 Jun 03. 2020

너 누구랑 크게 싸워 본 적 없지?

최근에, 누군가 내게 이렇게 물었다.


"너 누구랑 크게 싸워본 적 없지?"


어떤 자리에서든지 의견을 조율하려 했고, 다른 사람 이야기에 누구보다 귀를 기울이려 했고, 무엇보다 내 의견만을 뾰족하게 내세우지 않아서 나를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정말 이것도 저것도 아닌 사고방식과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내 딴에는 배려였는데 누군가의 시선에서는 자기 주관이라고는 털 끝만큼도 없는 한심한 인간으로 비쳤으리라.



1세대 걸그룹 '핑클'의 성유리는 어느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렇게 털어놨다.


"나는 욕먹지 않으려고 20년을 산 것 같아. 그러다 보니까 내가 뭘 원하는지 몰라. 욕 안 먹는 짓만 해."

세상에 욕먹기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관성처럼 자신의 말과 행동이 굳어져버린 성유리의 슬픈 고백은 듣기 좋은 칭찬 속에 숨어 정작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회의실에 떠다니는 수많은 아이디어, 연애에 관한 선배의 조언, 옷 가게에서 거울에 비춰보며 고민하는 내게 건네는 종업원의 말... 절대적으로 옳고, 바르고, 멋지고, 아름다운 게 있나? 나이가 많거나 사회생활 경력이 많으면 그만일까?


글을 쓰는 지금도 내 목소리를 세게 내는 방법을 모르는 것 같다. 쟤는 주변 사람들한테 참 잘하고 싹싹해 - 뭐 이런 칭찬도 좋기는 하지만, 쟤 뚝심 하나는 알아줘야 해. 결국 쟤 말이 맞을지 누가 알았어? - 라는 원망 섞인 눈빛도 느껴보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일 아침 눈을 뜨고 사람들을 만나면 나는 또 착한 사람,

그저 배려심 깊고 재밌는 사람으로 말하고 행동하겠지.


그게 참 슬플 것 같다. 아니, 아직도 나는 뭐가 정답인지 모르는 것만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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