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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진 Dec 08. 2020

여보세요, 거기 누구 없소?

여보세요, 거기 누구 없소?


JTBC의 새 음악 예능 <싱어게인>에 등장했던 찐 무명의 참가자(63호 가수). 자유로운 헤어스타일만큼이나 음색이 꽤나 독특했다. 멍하니 한참을 듣다가 또 그렇게 며칠을 들었다. 내 귀를 사로잡았던 것은 비단 스타의 탄생을 알리는 멋진 목소리뿐만이 아니었다. 한영애 씨가 불렀던 <누구 없소> 원곡의 노랫말이 괜히 지나간 시간들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노래가 좋으면 가사에 빠지는 사람, 저 말고 또 없나요?)


https://tv.naver.com/v/16850040

날 기억하는 사람들은 지금 모두
오늘 밤도 편안히들 주무시고 계시는지
밤이 너무 긴 것 같은 생각에 
아침을 보려 아침을 보려 하네

- 한영애, <누구 없소> 노랫말 中


요즘 문득 이런 생각이 자주 들곤 한다. 언제 이렇게 커버렸나 하는 생각? 누군가 보기엔 아직 햇병아리, 처절한 사회생활을 이제 갓 경험한 아이처럼 보일지도 모를 일이지만. 정신없이 그 시절, 시절마다의 시간에 한껏 빠져 살다가 어떤 번뜩이는 신호나 뚜렷한 경계 없이 그곳을 벗어나 지금 현재의 시간을 살고 있다는 것이 곱씹어 볼수록 꽤나 어지러운 일이 되어버렸다. 과거의 조각들을 하나씩 꺼내보면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흠뻑 추억에 빠지지만 언제 그 시기를 멀리 달아나 지금에 이르렀을까 하는 궁금증들.


수능을 앞두고 밤을 지새웠던 고등학교 기숙사 친구들, 대학 새내기 시절 웃고 떠들던 친구들, 선배, 후배, 군 시절 후임, 동기, 선임들, 취업 준비를 함께 했던 사람들, 대외 활동하며 이곳저곳 싸돌아다녔던 형, 누나, 친구, 동생들... 그다지 긴 삶이 아니었음에도 충분히 많은 장면과 사람들이 지나간다. 



가수 한영애 씨는 1988년 8월에 <누구 없소>를 처음 불렀으리라. 날 기억하는 사람들은 지금 모두 어디에 있을지, 오늘 밤도 다들 편안히들 주무시고 계시는지, 그들도 이 밤이 너무 길다고 생각하진 않았을지 고민하며 그녀는 노래를 불렀을 것이다. 하루하루 눈을 뜨면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바삐 움직여 일을 하고 점심을 먹는다. 식곤증이 몰려온다며 커피를 한 잔 손에 들고 다시 컴퓨터 앞에, 고객 앞에, 회의실 한 구석에 앉는다. 거꾸로 매달아도 시간은 흐르고 온 길을 따라 다시 집으로 돌아가 모두가 비슷한 표정들로 잠이 든다. 날이 밝아 아침이 오면 다시 윗 윗줄로 올라가면 된다.


그냥 하루하루 일에 치여 살거나, 조금이라도 일찍 퇴근하면 더 잘 수 있다는 생각에 행복해하는 내 모습이 낯설어 언제 이렇게 커버렸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그냥, 아주 가끔 그런 날이 있다. 그때의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뭐하고 지낼까 하는 생각. 어색하게 변해버린 내 모습을 보면 어떻게 반겨줄까 하는 걱정과 옅은 그리움 조금?


물론 그 시절보다 우리는 훨씬 더 생산적으로 움직인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새우 과자에 소주로 배를 채우지 않아도 될 만큼, 편의점에서 작은 샌드위치 가격을 보지 않고 신용카드를 내밀만큼 주머니 사정에도 여유가 생겼지만 그 시절만큼이나 웃지 않는 것 같다. 그 시절의 사람들이 문득 궁금해진 까닭은 나만큼이나 그들도 웃지 않고 있는지에 대한 답이 듣고 싶어서 인 것 같다.


"여보세요, 거기 누구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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