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영화를 보기 전에, 평점과 댓글을 크게 신경 쓰는 편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사람들의 평이 문득 궁금했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 꽤나 호불호가 심하게 갈려있는 리뷰를 보고 아주 조금의 고민(?)이 들기는 했지만 결국 더는 개의치 않고 보러 갔다. 그리고는 저런 평들이 크게 의미 없는 것들임에 확신했다. 로맨틱 코미디란 무엇인가.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네 연애에는 개연성이 있었던가. 주인공이 클리셰와 같은 고난과 역경을 딛고, 조력자의 존재와 더불어 갈등이 극적으로 해결되는 그런 개연성을 원하는 것인가. 우리의 연애에는 ‘개연성’이라는 단어 자체가 어울리지 않았으리라. 지금까지도 그래 왔고, 앞으로 펼쳐질 세상의 수많은 연애도 그러할 것이다. 영화 제목처럼 <가장 보통의 연애>를 말하고 싶었던 감독과 배우들. 지금 이 순간도 감정을 나누며 연애를 이어가는 세상의 모든 연인에게 ‘우리 또한 남들과 다르지 않은, 가장 보통의 연애’를 잘 해내고 있음을 확인시켜주려 했던 로맨틱 코미디 영화.
결혼식 직전 파혼에 이르렀던 재훈(김래원). 매일 밤, 술에 취하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었던 그는 기억이 나지 않는 물건으로 가득한 거실에서 힘들게 깨어난다. 거리의 입간판, 비둘기, 길고양이, 지하철 역 앞에서 파는 옥수수까지... 술김에 모두 그가 챙겨 온 것들이다. 집에 들어가지 않고 차에서 잠드는 것은 필수 코스가 되었고 회사 엘리베이터 1층에 신발을 벗어두고 들어가 잠이 들어 출근길의 직장 동료와 마주치는 것까지 참 다이내믹한 일상을 살아가는 재훈(김래원)이다. 연애 자체에 대해 환멸을 느끼는 것인지, 전 연인에 대한 미움과 이해하기 어려운 그리움 때문이었던 것인지 그는 모르고 있는 듯하다. 그러던 중, 회사에 새로 합류하게 된 선영(공효진)을 마주한다.
전 남자 친구와 깔끔하지 못한 이별도 모자라, 못난 집착으로 회사 직원들에게 원치 않는 풍경을 선사했던 선영(공효진)의 첫 회식. 재훈(김래원)은 그 모습이 왠지 모르게 낯설지 않다. 직장 동료로 만나게 된 지 하루 만에 일보다 서로의 과거사를 더 잘 알게 된 두 사람. 이들은 ‘가장 보통의 연애’가 무엇인지 알아가는 길 위에 서있었다. 둘의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언급하는 순간 영화 자체를 미리 보게 되는 것이기에, 영화의 스토리보다는 이것이 내게 선사한 생각의 ‘틈’을 짧은 글로서 적어보려 한다.
일단, 영화 <가장 보통의 연애>라는 제목부터 참 좋았다. 가장 ‘보통’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지극히 보편적인 부분들을 추출해 스토리텔링으로 녹여내야 하는 지난한 작업이다. 오히려 창의적이고 관객을 흡입하는 독특한 이야기를 그려내는 것이 더 쉬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적당히’, ‘그냥 딱 괜찮은 정도’를 말하는 수많은 요구를 들어오지 않았던가. 더군다나 연애라는 답이 없는 감정과 행위들을 가장 ‘보통’으로 다루는 것은 깊은 고민과 경험 없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영화에서 연애를 다루는 방식은 남녀의 사랑으로만 국한되지 않는다. 재훈(김래원)과 선영(공효진)을 30대 직장인으로 설정했기에 떠들 수 있는 것들이 훨씬 많아졌으리라 생각해본다. 20대에 연애에서 크고 작은 ‘사고’가 생긴다면 30대의 연애에는 ‘사건’이 생긴다고 영화는 말한다.물론, 아직 30대의 연애를 경험하지 못해 온전히 공감할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찾게 된 생각의 틈은 딱 한 가지를 말하고 있었다. 사랑의 감정 이외에 원치 않는 변수들이 참 많다는 것.
결혼도 생각해야 하고, 더욱이 사내 연애라면 동료들의 눈치도 봐야 한다. 특히, 회사에서 연애를 한다는 것은 우스갯소리로 당사자들만 빼고 모두가 안다는 말 있으니. 탕비실에 홀로 놓여 눈도, 귀도, 입도 없는 복사기마저 안다는 것이다. 나만의 휴식이 필요한 주말에는 등산도 가야 한다. 산을 올라가는 길에 연인과 나란히 걷기만 해도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어김없이 들려온다. 그렇기에 20대의 뜨거웠던 사랑의 감정만으로는 연애라는 과정을 견뎌내기가 몹시도 어려운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면 회사도 사람들이 모여 고민하고 의견을 나누고 한 걸음씩 걸어간다. 평범한 일상과 다르지 않고 모두가 똑같은 시간과 공간의 연장선에 있는 셈이다. 학창 시절, 취향과 생각이 비슷한 친구들끼리 몰려다니며 패거리(?)를 이루는 것 마냥 회사에서도 우리는 익숙한 풍경을 마주할 수 있다. 같은 부서 동료들이 모두 모여 있는 단톡 방이 있는 동시에 ‘우리’끼리만 소속감을 가지고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는 비밀 단톡 방 또한 존재하게 된다. ‘야, 그 방 아니야! 잘 보고 톡해!’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사무실은 거대한 눈치게임과 어색한 공기가 가득한 지옥으로 한 순간 변할 수 있다. 이처럼 지극히 현실적인 ‘단톡 방’ 설정은 이전 JTBC 드라마 <멜로가 체질>에도 등장했으며, 영화 <가장 보통의 연애>에서도 스토리를 이끄는 중요한 트리거가 되었다.
‘남자와 여자가 같니?’
‘같지 그럼! 넌 다르다고 배웠니?’
영화 <가장 보통의 연애>에서 선영(공효진)이 툭툭 던지던 말이다. 관람객들 사이에서는 이미 명대사가 되어버렸다. ‘나는 그런 뻔한 선입견을 가진 사람이 아니야.’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관객이 별로 없다는 뜻이 아닐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들의 가장 보편적인 연애에는 많은 변수와 편견이 녹아있었고, 그래서 ‘가장 보통의 연애’를 하기가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영화의 손익분기점에 대한 공식적인 언급은 나온 것이 없다. 하지만 150만 관객을 돌파한 시점에서 기사가 쏟아진 것을 보면, 영화는 이미 최소한의 ‘타율’을 낸 것이 아닐까. 물론, 영화에서 무슨 직장인들이 저렇게 매일 술만 마시고 서른을 넘어서도 연애 때문에 저리 힘들어할까 의문을 가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또한 영화를 바라보는 관객의 자유다. 영화 <가장 보통의 연애>는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를 다루고 싶었다. 영화를 보는 관객 또한 그러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이기를 원했으리라.
누구랑 봐도 좋다. 어떤 생각과 추억을 떠올려도 충분히 좋다. 배우 공효진과 김래원의 환상적인 케미를 보는 것 자체로도 잠깐이나마 웃을 수 있었다. ‘킬링 타임’용으로도 아주 좋은 영화이지만 저마다의 추억과 연애의 가치관마저 ‘킬링’하는 영화는 아니었음을 확신한다. 오늘도 ‘가장 보통의 연애’를 하는 모든 이들에게 주저 없이 추천해본다.
+ 참고로, 영화 <가장 보통의 연애>의 엔딩을 꼭 기억하기를. 내가 본 로맨틱 코미디 영화 최고의 엔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