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보다 기록

김신지,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자기만의방

by 책먹는기린

책(소개) 모임에서 이번엔 어떤 책을 소개해드릴까 고민하며 책장과 블로그 기록을 훑어보았다.

그러다 '기록'에 꽂혀, 황정은 작가님의 <일기>와 김신지 작가님의 <기록하기로 했습니다>의 문장을 발췌해서 시식 도시락(?)을 준비했다. 문장을 읽고서 함께 나눠보면 좋을 질문들도 곁들여서.

몇 년 전에 읽었지만 읽고서 기록은 남겨놓지 못했던 책, <기록하기로 했습니다>를 다시 살펴보며 남겨놓는 기록.


좋은 순간을 하나라도 주웠다면, 오늘도 잘 살아낸 셈이에요. 나쁘지 않았어요. 그것으로 하루치의 피로와 상심이 상쇄되는 것은 아니지만, 좋은 것을 하나라도 찾아낸 하루가 그렇지 못한 하루보다 나을 테니까요. 우리를 지탱해주는 건 결국 삶의 사소한 아름다움들이니까요.

하루에 하나씩만 좋은 순간을 줍기, 67


'행복이라 부르기엔 어쩐지 조그맣게 여겨지는 사소한 순간'을 '행복의 ㅎ'이라고 부르기로 했다는 김신지 작가님. 그런 순간들을 1일1줍해서 인스타그램 부계정에 쌓아가고 있다고. '오늘은 무얼 주울까?' 기대하며 무심히 지나치던 것도 다시 들여다보셨다고 한다.

모아놓은 것들은 미래의 나에게 큰 기쁨이 되는 듯.


생각해보면 우린 이미 많은 말에 기대어 여기까지 왔습니다. 평소에 좀처럼 감정 표현을 않던 친구가 생일에 드물게 써준 편지를 읽을 때, 누군가로부터 뜻밖의 칭찬을 들었을 때, 여행지에서 만난 낯선 사람들이 나를 좋은 사람으로 여기며 환대할 때, 모르는 이가 댓글로 응원을 남겼을 때. 쑥스러우면서도 마음이 환해지고 마는 건 그래서입니다. 그 말들을 딛고 앞으로 나아가려 하기 때문이죠. 나도 믿지 못하는 내 미래를 믿어주던 말, 나도 모르던 내 장점을 반들반들하게 닦아 보여주던 말, 다 진심은 아니었다고 해도 그 순간에 너무나 필요했던 말. 그 말들이 우리를 여기까지 오게 했습니다. 그런 말에 잠시 기대는 순간, 주저앉아 있던 우리 마음은 무릎을 펴고 일어서게 됩니다. 그래, 해보자. 살아보자. 좋은 말들을 닮아보자, 하고요.

내게 닿은 좋은 말들을 적어두기, 107


그 날 들었던 기분 좋은 칭찬은 내가 지난번 모임에서 추천한 책을 읽어 보셨다며 좋은 책을 소개해 주어 고맙다는 말이었다. 이 독서 모임의 취지가 책을 안 읽던 사람을 읽게 만드는 거니까 한 분이라도 이렇게 반응해주니 감동이었다.


잊지 못하리라 생각하며 가슴에 품었던 문장들이 풍화되듯 사라지는 일을 반복해서 겪은 후, 저는 이런 것을 기록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쓰기 위한 영감이 아니라 살기 위한 영감이 되어주길 바라면서요. 인생이 망망대해같이 느겨질 때 등대의 불빛처럼 찾을 수 있길 바라면서요. 하지만 아무리 깊은 울림을 느낀다 한들, 그 문장을 삶으로 살아내기란 여전히 어려운 일입니다. 좋은 문장을 기록해두면 우리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소설가 김연수식으로 말하자면 ‘우리가 지금 좋아서 읽는 이 문장들은 현재가 아니라 미래의 우리에게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기록하는 문장들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할 거예요. ‘아름다운 문장을 읽으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아름다운 사람이 된다’던 그의 말처럼 아주 아름다워지진 못하더라도, 이 문장들을 조금씩은 닮아가고 싶어서 오늘도 기록합니다. 당신에게도 지친 당신을 언제고 일으켜줄 문장들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나를 일으켜준 문장들, 126



아름다운 문장을 옮기는 순간, 마음에 옮겨 붙어서 나의 일부로 스며들고, 노트에 필사하거나 여기에 옮겨놓은 문장들을 다시 읽으며 미래의 내가 야금야금 파먹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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