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목상심의 가을

조용미, <초록의 어두운 부분>, 문학과지성사

by 책먹는기린

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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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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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목상심의 가을이다 눈에 닿는 것마다

슬픔 아닌 것이 없으니


촉, 자는 왜 이리 촉촉할까 촉, 자는 왜 이리도 착 와서 감길까 촉, 하고 말해보면 목이 젖어 따뜻해진다


그래도 슬픔을 가장한 감정들을 구분해낼 수 있다


슬픔을 가장한 감정들의 서글픔에 대해

생각해보느라

그 서글픔을 어루만지느라


하루를 다 보냈으니 촉, 자는 아픈 글자였구나


관해(觀海), 바다를 본다

바다를 보는 일처럼 알 수 없는 깊이를 바라보는 막막함을


만져본다


모든 인간은

완치라 하지 않고 관해(寬解)라 하는 섬세함과 야박함을 동시에 지니고 있으니


관해와 완치는 쥐손이풀과 이질풀처럼 구별이 쉽지 않다 생각하면 되겠구나


그러니

조금만 더 존재하자





촉목상심觸目傷心, 눈에 보이는 사물마다 슬픔을 자아내어 마음을 아프게 한다는 뜻이란다.

가을에는 그런 마음이 들게 마련인가. 이 시를 읽다가 지난주의 가라앉았던 마음이 떠올랐다.

이유도 없이 찾아온 먹먹함은 가을 탓이 맞았던 모양이다. 모든 게 가을 탓이라고 해놓고는 가을에게 약간 미안하기도 했는데.


한정원 시인님이 우시사(우리는 시를 사랑해) 뉴스레터에서 "가을은 과연 하강의 계절"이라고 하셨는데 그런 거였다. 가을은.

더위가 그칠 뿐 아니라 하강하는 계절.

그래서 마음도 솟는 것이 아니라 하강하는 계절.

슬픔을 가장한 감정을 감별할 필요는 있겠으나 하강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계절인 것이다.


조용미 시인님은 동음이의어 '관해'를 불러와 바다를 보는 것같은 막막함을 어루만진다.

단어를 세심하게 고르듯이 감정도 세심하게 돌보는 시인님.


며칠 전, 이 시가 수록된 시집, <초록의 어두운 부분>을 시 모임에서 함께 읽고 만나 소리 내어 읽으며 다채로운 모국어의 매력에 또 반했다. 이렇게 시를 옮겨 쓰면서, 다시 읽으면서 조금 더 촉촉해진다.

촉목상심의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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