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연속으로 나를 울리면 어쩌자는 건지. 나는 역시 좋아하는 것들에겐 줏대없이 흔들려지는구나.. 너무 좋은 거 아닌가. 언제든 파도 속으로 태풍 속으로 헤엄칠 수 있는 거니까.
정말 오래 기다렸던 영화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와 함께 기다렸다. 무려 한 달이나 늦게 개봉하는 게 분해서 어떤 심정으로 버텼는지 사실 잘 기억이 안 난다. 그저 정말 오래오래 기다렸다.
스틸컷도 일부러 보지 않고 노래도 듣지 않았다. 그러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영화를 보러가다 광고에 떡하니 예고편이 나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영어 자막은 안 보면 그만이지만 큰 스크린 속 휘몰아치는 감정선 위에 올라탄 배우의 얼굴을 어떻게 피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흐린 눈으로 봤다. 그것마저도 너무 좋아서 기말고사 마지막주를 서둘러 보내고 싶었다.
전날 웡카를 보고난 뒤로 나는 윌리 웡카 생각 밖에 안 해서 그냥 웡카가 있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이 영화 속에서 살고 싶다.. 벗어나고 싶지 않아... 뿐이었기에 내일 '괴물'을 봐도 되는 걸까 잠시 고민했지만 그래도 나는 오래 기다렸고 볼 수 있는 시간이 딱 오늘뿐이었기에 다시 밖으로 나갔다.
웡카를 보고 나서 숨죽여 흐느껴 울었다면 괴물을 보고 나서는 가슴 한 쪽이 시리게 아려오고 너무 좋은 나머지 주저앉고 싶었다. 기숙사로 가는 길에 류이치 사카모토의 'monster ost' 만 주구장창 틀어놓고 걸으며 괴물은 명작이야 소리를 반복했다.
두 영화 모두 다 나에게 있어서 올해 최고의 영화다. 사랑하는 12월에 사랑하는 이야기를 두 편이나 만나며 앞으로 오랫동안 사랑하게 될 인물은 세 명이나 만났다. 마음속에 고이 잘 간직해뒀다가 적적할 때쯤에 또 만나러 가야지. 아무래도 매일이 될 것 같지만.
장르와 포스터가 강렬해서 너무너무 궁금했고 '이런 이야기를 하려나?' 혼자 예측도 해봤지만 이렇게 엄청난 대서사와 인물일 거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래서 너무 행복했다.
웡카는 영화관 밖을 나서서도 영화 같은 삶이 올 것이라는 희망을 경험했다면 괴물은 완전히 극명하게 갈렸다. 기숙사로 향하는 내내 내가 상상하고 그리며 들어간 세상과 현실의 간극이 좁혀지지 않는다는 이 감각을 학창시절 이후 또다시 오랜만에 크게 몰려와 혼란스럽고 공허했으며 힘들었다. 그러니까, 너무너무 좋아서 이 세계에 완전히 몸을 누르고 싶은데 현실이 내 발목을 꾹 잡고 있는 상황. 나는 저곳으로 가야만 하는데 영화관 밖을 나서자마자 내 앞을 반기는 풍경은 그곳이 아니었다는 것을. 어릴 때 이 감각을 매일 느꼈다. 분명 나는 만화책에서, 애니메이션에서, 영화에서 본 인물들처럼 되고 싶었는데 현실에서는 그것이 불가능 한 걸까 라고 생각하게끔 이질적으로 변하는 상황들이, 나의 상상과 현실세계의 간극이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좁아지지 않고 넓어져서 힘들었다. 어릴 땐 나의 세상들과 내 주변을 돌아다니는 인물들과 함께 있는 게 당연했는데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현실세계가 나를 자꾸 끌어당기기 바빴다. 그 감각을 실로 오랜만에 느꼈다.
그러니까 너무 좋았다는 뜻이다. 미나토와 요리의 눈과 손짓들이, 행동들이, 마음들이 아름답고 사랑스러워서 보는 내내 이들과 계속 함께하고 싶었다. 너무 좋은 작품을 만날 때 그 인물을 연기한 배우와 사람은 온데간데 없고 오로지 그 인물만이 남는 경험을 사람들은 얼만큼 해봤을까. 전날 웡카도 그렇고 오늘 괴물 속 미나토와 요리는 내 곁에 오래 남을 게 분명해졌다.
배우와 감독의 인터뷰를 읽는 내내 너무 행복해서, 이렇게 벅차오르면 우는 울보가 되어버려서 어떡하지. 감정은 손에도 있고 배에도 있다고, 그리고 물건에도 있다는 감독의 말에 "넘칠 것 같은 미나토의 마음"을 보리차에 담아 출렁거리는 것을 직접 생각해냈다는 쿠로카와 소야의 인터뷰가 자꾸자꾸 생각난다. 스크린 속 이야기에 완전히 매료됐을 땐 배우와 사람은 온데간데 없고 오로지 인물만이 남아있다. 그래서 배우라는 직업이 참 신비롭게 느껴진다. 어떻게 저렇게 감쪽같이 다른 차원과 세상을 넘나들 수 있는 거지? 저게 가능한 건가? 한 사람이 수만가지의 인물이 되어 이쪽 세상과 저쪽 세상을 왔다갔다 하는 모습이 새삼 부러울 때도 있다. 그만큼 대단하다. 내 곁에 쭉 남아있을 미나토와 요리가 되어준 친구들과 꼭 같이 작업하고 싶다. 그만큼의 이야기와 음악들을 나도 안고 갈 테니 조금만 기다려달라는 말도 서슴없이 해댄다. 그리고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다.
한국으로 내한을 온다는데 나는 가지도 못한다.. 티켓팅을 시도해보지도 못한다.. 2분만에 전석 매진이 되었다는데..
"다시 태어난 걸까?"
"아니 그대로야."
폭풍 후 땅으로 올라온 후 나눈 미나토와 요리의 대화가 자꾸 생각난다. 두고두고 보고 싶다. 영어 자막이 아닌 한글 자막으로 모든 걸 다 훑고 싶다. 완전히 박혀버린 장면들이 반복적으로 재생된다. 미나토와 요리를 곁에 두고 오래오래 보고 싶고 만나고 싶다. 하루종일 이 영화만 틀어줬으면 좋겠다.. 정말 너무 좋아서 아무것도 집중이 안 된다.. 종강이라 짐 싸야 되는데 인터뷰와 영상만 계속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