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

by 도토리





무기력함이 나를 훑고 내 손가락 끝을 지나 친구들과의 메시지 창으로 향했다.

아차... 기분은 전염시키면 안 되는 건데 하는 후회가 곧바로 밀려왔지만 내가 띄운 말풍선 앞의 숫자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엉망진창이야. 내가 다 망친 것 같아. 너~무 싫어. 짜증 나'라고 보냈나?

아무튼 부정적인 단어에 감정이 꽤 담긴 문장이었을 것이다. 답변을 기대하고 적은 문장도 아니었다.

폭우가 퍼붓는 오후였다. 올해 장마도 무서울 거야라고 예고하듯 소나기가 사무실 창문을 세차게 때리고 있었다. 그래 다 습도 때문이야라고 하는 생각을 하면서 핸드폰 화면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여기 비 엄청 와. 우리나라도 인제 열대기후인가.'

아무렇지 않은 친구 1


또 다른 친구 2

'오늘 주식 미쳤나 봐. 더 샀어야 되는데- '라고 한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럼 그렇지.

대화는 그대로 이어진다. 나는 아무도 무기력에 전염시키지 못했다.

아 역시. 이곳은 그런 방이지. 우리는 그런 애들이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서로의 고충을 모르는 건 아니다. 아니 오히려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서로 심각해지지 말자고 암묵적인 동의가 이루어진 것뿐이다. 이곳에 털어놓으면 무거웠던 내 고민이 조금 가벼워진다.


신기하게도 그건 아무도 진지하게 듣는 것 같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각자의 이야기를 하고 누구도 대답하지 않지만, 아무도 서운해하지 않는다. 그게 이곳의 룰이다. 때로는 무엇이든 가볍게 생각하는 것도 필요한 법이다.


그 이후로도 쭉 끊어질 듯 시종일관 시답잖은 대화가 이어진다.


친구 3: 너네 오늘 점심 뭐 먹냐? 나 뭐 먹을까? 귀찮은데 좀 정해줘 봐.

친구 1: 귀찮은데 밥은 뭐하러 먹냐. 굶어라 그냥.


어쩐지 아무것도 받아주지 않는 이곳에서 위로를 받는다. 작은 소원이라면 모두가 나와 상관없이 행복한 것. 내가 무엇을 떠들더라도 이들이 각자의 행복을 찾는 것이다.



그래.

소나기가 쏟아지는 찰나의 순간처럼 무기력함이 나에게 쏟아져도 괜찮아. 혹은 나무 밑으로 잠시 피해 있는 것도 괜찮겠지.

소나기가 그치고 지나간 뒤 남은 자리에 무지개가 떠오르듯이 기분도 곧 다시 다채로워질 거야. 이건 모두 다 지나가는 비처럼 아무것도 아닌 일이야.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