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로는 돌아갈 수 없으니 나는 내일로 먼저 가 있을게.
생각이 많던 어느 날 긴 대화를 나누었던 그 밤의 끝에 친구에게 나는 이렇게 말했다.
" 알아. 사실 문제도 답도 내 안에 있다는 거.
아무도 나에게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는데 이렇게 힘든 걸 보면 말이야."
차라리 타인에게 문제를 지적받거나 질타받는 거라면 그 문제를 해결하거나 무시하면 될 텐데, 내 안에 소용돌이치는 감정들은 타인보다 자신을 더 많이 공격하고 괴롭혔다. 나를 공격하는 게 나 자신이라는 건 알고도 극복이 안 되는 정말 힘들고 외로운 일이다.
그래서 어떤 날에는 생각을 정지하는 버튼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라본다. 보고 싶지 않으면 눈을 감고 듣고 싶지 않으면 귀를 막으면 되는데 생각을 하고 싶지 않은 것만큼은 내 힘으로 되는 문제가 아니라서다.
하다못해 이 생각조차도 생각인 것처럼.
어제 혹은 몇 시간 전 과거의 내가 했던 행동, 생각이 밖으로 튀어나와 문장으로 만들어져 버린 내가 쓴 단어들까지 그 모든 것들이 전부 하면 안 되는 실수를 저지른 듯 느껴지는 날에는 너무나 그 버튼이 누르고 싶어 진다. 그래서 나의 몸 어딘가에 있는 동그란 버튼을 꼭 누르면 모든 생각이 정지되는 상상을 한다.
끝없는 자책을 계속하는 나를 멈출 수 있는 버튼을 가진 건 결국 나뿐이란 걸 알고 있기 때문에, 후회와 걱정으로 가득한 채 수많은 생각으로 흔들리고 있는 오늘이란 녀석을 붙잡고 대체 나한테 왜 그러냐 하고 따져 묻는다. 하지만 어차피 돌아올 답이 없는 질문이다.
한 사람의 존엄은 그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타인에 의해서만 다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함부로 대할 때에도 존엄성은 상처를 입는다.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매 순간,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살아갈 것을 결정할 수는 있다.
조금 더 스스로에게 또 타인에게 주의를 기울이기, 존중하며 살아가겠다고, 자기 자신과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신뢰 속에서 조금은 호기심 넘치는 삶을 살겠다고.
게랄드 휘터, '존엄하게 산다는 것' 중
그래. 그냥 오늘은 없는 셈 치기로 하자.
어제로 돌아갈 수는 없으니 모든 것들이 완벽하게 정리되어 있을 것만 같은 내일로 먼저 가버리자. 모든 걸 멈추는 대신 시간을 빨리 감아버리자. 오늘을 잘 달래서 마음이 괜찮아질 것 같은 모레쯤으로 보내버리자. 이렇게 나로부터 나를 지켜내자.
나는 그렇게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