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파랑

by 도토리




귀에는 에어팟이 꽂혀있다. 그저 백색소음 대용인 음악은 개미 소리처럼 들린다. 그리고 목은 곧 거북이가 될 것처럼 모니터를 향해 있다. 멀리서 보면 내 어깨 역시 동그랗게 말려있겠지.

듣고 있던 음악이 갑자기 끊기고 집중을 깨는 알림이 띠링-하고 울린다. 안 그래도 짧아진 집중력을 수시로 방해하는 알림 문자. 하지만 마냥 무시할 수도 없는 재난 문자가 하루에도 몇 번씩 날아온다.


요즘에는 아침에 출근 준비할 때 잠깐 뉴스를 체크하는 것 이외에는 뉴스를 집중해서 볼 시간이 별로 없다. 보통은 점심 먹을 때 동료들과 함께 앉은 채, 스마트폰 속 각자의 세상을 보는 그 시간마저도 이젠 거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어느샌가 점심 외출마저도 자주 안 하게 되었다. 우선은 날이 많이 더운데 마스크를 쓰고 바깥으로 나서는 게 두렵다. 그래선지 어쩐지 점심에는 입맛도 별로 없다. 그렇지만 당연하게도 저녁에 식욕이 폭발하고 만다. 집이라는 편안함 때문인가..? 곤란한데..



어쨌든간에.

그러나 단지 더운 여름만 탓하기엔 요즘 하늘이 너무 예쁘다. 땅에서는 불쾌하다며 질색하는 그 습기가 하늘에서는 드라마틱한 구름을 만들어 보여준다. 지상에는 거리두기가 한창인데 하늘은 무슨 일이 있냐는 듯이 평화롭고 아름답기만 하다. 역시 가을 하늘은 공활하기만 하지. 역시 하늘은 여름이 예뻤지.(라고 적으면서 봄에도 이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 녀석... 모든 계절을 좋아하는 거였니...)

여름의 저녁이 보여주는 찬란하고 다채로운 색의 노을이 보고 싶어서 할 일을 남겨두고 자꾸 퇴근을 하고싶어진다. 게다가 안타깝게도 나는 아직 실물을 못 봤지만 로맨틱한 무지개까지 띄워주고 그러니까 막..

요즘의 SNS는 하늘 사진이 제철이다. 역시 누군가의 말처럼 하늘을 보는 건 누구에게나 허용된 즐거움이기 때문이겠지. 덕분에 나도 아침저녁으로 그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 확. 행. 작지 않은 그냥 확실한 행복. 나는 주로 시원한 사무실 안에서 유리창 밖으로 훔쳐보는 편이지만.





어느새 내가 바이러스 관련 뉴스에 서서히 둔감해지는 사이 확진자는 치솟았고 수도권의 거리두기는 4단계로 격상되었다. 거리두기가 2단계든 4단계든 나에게는 크게 의미는 없다. 근래에는 '저녁 모임' 자체가 드문 일인데, 그런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어느 날엔 재난 문자가 울리면 이제는 자연스레 그냥 스킵해버리는 내 행동에 스스로 놀란다. 이러다 진짜 큰일이 났는데도 내가 안 보고 지운 거면 어떡하지? @_@ 그래서 나만 막 모르고 그면 어떡하지...





Cobalt Blue 혹은 Smalt 그 어디쯤..




어제는 하루에도 몇 번씩 울리는 방역 관련 문자들 사이에 '폭염주의보' 문자가 끼어있었다. 하마터면 못 보고 점심먹으러 나갈 뻔 했지. 당연히 방역 문자겠거니 대충 쓱 보고 습관처럼 지우려다 숫자를 보고 멈칫했다. 35℃ 숫자로만 봐도 숨이 막히는 온도다. 유리창 밖 하늘이 참 파랗고 예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구름조차 허용하지 않는 그 파랗고 깨끗한 여름 하늘은 사실 무시무시한 열기를 동반하고 있는 것이다. 붉은 장미에 달린 가시같은 열기. 바다처럼 깨끗하고 깊은 파랑의 하늘을 보면서 여름의 열기를 느낀다. 오늘은 중복이라고 한다. 가장 더운 날씨를 허락받은 여름날. 나는 어디로든 달려가 물 속으로 풍덩 뛰어들고 싶은 기분이 든다.

아마도 여름의 짙고 푸른 하늘은 지상의 모든 것을 남김없이 뜨겁게 달궈버리고 말 것이다.


여름의 파랑은 그래서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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