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9 애동지에는 팥죽을 먹지 않는다.

by 도토리



오늘은 일 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인 동지.

24 절기 중 스물두 번째 절기이며, 날짜로는 양력 12월 22일.

태양이 적도 이남 23.5도의 남회귀선 270도의 위치에 있을 때를 말한다.


겨울이 오면 동지를 기다렸다.

왜인지 어릴 때부터 다른 명절이나 절기보다 동지가 좋았다.


그땐 팥죽을 먹는 날이기 때문인 줄 알았는데,

오늘을 기준으로 낮이 점점 길어지는 게 좋았다는 걸 최근에야 깨달았다.



결혼을 하고 나니 매년 동지가 되면,

친정엄마, 시엄마 할 것 없이 팥죽을 먹으러 오라 하시곤 했다.

물론 내가 끓여달라고 한 건 아니다.

그러면 나는 혼자 시댁과 친정을 들러 각자의 정성으로 끓인 팥죽을 챙겨 집으로 온다.

동지로부터 일주일 가량은 식사로 팥죽만 먹어야 한다.

남편은 팥죽을 먹지 않으므로.


매년 추운 겨울 팥죽투어를 하는 건 꽤 귀찮은 일이지만,

팥죽 좋아한다는 나를 위해 엄마들 각자 스타일대로 팥죽을 만들었다 생각하면

안 간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것이 순종적인 K-장녀, 며느리이니까.


동그란 새알심을 빚어서 끓이는 타입인 친정엄마의 팥죽,

쌀알을 넣어 푹 퍼지게 끓이는 시엄마의 팥죽.

역시 내 입맛엔 친정엄마의 팥물을 곱게 체에 내린 친정엄마의 팥죽이 입에 맞는다.

아무래도 나에겐 그게 클래식이기 때문이다.


올해 팥죽대신 대신 떡을 해 먹는 애동지라고 한다.

애동지는 동지가 동짓달 초순에 들어있는 경우를 말한다.







얼마 전, 아침 일찍 엄마의 병원진료에 동행했다가 친정으로 향하는 차 안이었다.

친구와 여행 일정이 있어 친정에 주차를 해두고 공항에 바로 가야 했는데,

차 안에서 엄마와 크게 다투었다. 태어나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대화를 마저하기엔 비행기 시간이 너무 가까웠다.

난 결국 눈물을 펑펑 쏟으며 선글라스에 의지한 채 사연 있는 여자처럼 공항으로 향했다.

생애 가장 마음 불편한 3박 4일이었다.


여행을 마치고 차를 가져가야 해 친정에 들르자

엄마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반찬을 싸주며,

"이번 동지는 애동지라 팥죽 안 먹어. 너 팥죽 좋아하니까 동지 아닌 날에 끓였어."

큰 솥 한가득 끓인 팥죽을 보는데 참아왔던 장녀의 설움이 다시금 올라왔다.

눈물은 또 왜 그렁그렁 차오르는지.


그날도 부모님 앞에서 설움 섞인 말들을 내뱉었지만 원하는 답을 듣진 못했다.

엄마는 팥죽을 쑤었고, 아버지는 오래 주차된 차 배터리를 걱정하며 주차장까지 배웅을 나오셨다.

이것 역시 생애최초일 것이다.


집에 돌아와 일주일 넘게 팥죽을 먹는다.

팥죽을 덜어 한입 삼킬 때마다 결국 엄마에게서 듣고 싶은 어떤 다정한 대답은 듣지 못할 거란 생각이 든다. 내가 원하는 건 한마디 말이었지만, 엄마의 언어는 어쩌면 음식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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