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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영웅 Jun 07. 2024

밸런스의 태생적 한계

 밸런스라는 말 속에 숨겨진 진실을 마주한 이후 최대한 ‘대충’을 인생에서 없는 단어로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언제부터 밸런스란 단어는 무슨 치트키 마냥 분야를 막론하고 남발되는 인상이 든다. 그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워.라.밸.


워라밸에서 ’밸‘은 밸런스다. 얼핏 좋은 단어 같지만 한계가 명확한 단어기도 하다.


밸런스, 균형이 맞다는 건 어디에 치우침이 없다는 것. 우리가 바라는 성공은 현상만 놓고 보면 치우친 현상을 말한다. 부나 명예, 인정 등의 치우침 말이다.  


위에서 언급한 희소한 가치를 남들보다 많이 가졌을 때 일반적으로 우리는 성공이라는 단어를 붙인다.


다시 말해 밸런스를 추구하면서 더 나은 삶을 획득한다는 건 애초에 모순일 수밖에 없다. (물론 그렇다고 밸런스를 추구하는 삶이 틀렸다는 전제는 아니다.)


다만 밸런스를 추구한다는 건 희소한 가치를 추구하지 않고 풍족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적절한 상태를 유지하겠단 의미다.


그런데 가끔 밸런스를 추구하는 삶을 살면서 희소한 가치가 자신에게 다가올 것이라고 믿는 아쉬운 이들을 본다.


장황하게 말했지만-


희생하지 않고, 투자하지 않고, 리스크를 감수하지 않고 희소한, 보편적으로(surely not everybody) 생각하는 더 풍족한 삶을 가지고자 하는 것을 양립할 수 없다(고 본다).


더 단순화해서 말한다면(물론 이래서 오류가 생기기도 하지만) 적당히 해서 얻어지는 건 적당함 뿐이다.


슬프지만 냉정하게도 더 열심히, 더 많은 시간을, 더 잘하지 않으면서 남들 보다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건 없다. 아니 그나마 저렇게 해서 얻을 수 있다면 그마저 다행일지도 모른다.


당신이 더 에이트 쇼에서 8층 카드를 뽑을 수 있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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