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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영웅 May 24. 2017

책상 내놓고 했던 첫 PT

박원순 관찰기 #2

공무원으로서 나의 첫 임무는 시장이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는데 온라인 미디어를 잘 활용하고 있는지 진단하고,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미디어 운영을 할 수 있게 제안하는 것이었다. 그럴려면 우선 그가 이것들을 어떻게 쓰는지 관찰해야해서 한동안 그를 졸졸졸 따라다녔다.




그렇게 한 달동안을 관찰하면서 '디지털 원순 개편 프로젝트'란 이름만 거창한 보고서를 조금씩 완성해갔다.

우선 그는 SNS 파워유저인만큼 생각보다 뉴미디어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다. 게다가 핀터레스트라니... 박원순과 핀터레스트... 핀터레스트와 박원순... 이게 어디 어울리는 조합인가? 진짜 이 부분은 문화 충격이었다. (그의 덕후미 팡팡 터지는 핀터레스트 계정이 궁금하다면 !)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그의 핀터레스트 계정을 보는데 세계 각국의 맨홀사진을 모아뒀기에 그 이유를 물었더니,

아 왜~ 예쁘잖아. 예쁘지 않아?



애초에 예상했던 것보다는 높은 수준의 미디어 감수성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집에 계신 우리 어머니와 연배가 비슷한 것을 감안했기 때문이고, 역시나 아쉬운 부분들이 발견됐다. 미디어마다 이용하는 유저층이 다르고 이용하는 동기가 다양하기에 그에 적절한 콘텐츠 전략이 필... 아 쓸데없이 설명충이 될 뻔 했다.


애니웨이쨌든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이렇게까지 비판해도(까도) 될까하는 고민을 계속 했다. 집에 계신 홀어머니 생각도 잠깐 해보고 이번 달 월세며 카드값을 생각하니 "시장님은 역시나 잘하고 계쓉뉘닷! 뿡뿡~" 이렇게 해야하나 고민도 했다. 이제 겨우 친해지는 중인데 괜히 맘상해서 어색해지면 어쩌나 걱정도 됐다.


아 진짜 별의 별 생각을 다했다...
막상 발표를 하려니...
ㅎㄷㄷ은 이럴 때 쓰는거더라...  
"다른 사람이랑 뭐가 달라요? 눈에 띄지 않아요"


독대도 아니고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동석한 자리에서 본인의 부족한 부분을 듣는 것은 유쾌하지 않은 일이다. 특히 그 자리에서 자신이 가장 권위있는 위치일 때는 더더욱. 그 자리에 간디가 앉아 있었더라도 마냥 웃어넘길 수만은 없었을 것이다. 뭐 폭력은 행사하지 않았겠지만서도.  


사실 시장 박원순이 운영하는 온라인 미디어는 공간과 시간을 초월한 그의 시정 공간인 동시에 평소 그의 생각이 담긴 또다른 박원순이기 때문에 이러한 지적이 불편했을 것이다. 오히려 억울하다고 느꼈을 수도 있다.


이렇게 질문할 줄 알았는데--;;


그러나 그는 오히려 불편할 수도 있는 이야기들을 귀담아 들으면서 쿨하게 인정하는 것에도 주저함이 없었다. 오히려 억울할 수도 있을 것 같아 PT 중반쯤에 넣어둔 페이지가 내 잔머리가 무색하리만큼 쿨했다. 되려 그는 적극적인 자세로,

그러면 내가 어떻게 하면 되죠?
이건 이렇게 하면 되는건가요?
이런 것들은 얼른 해보고 싶네요. 몰랐어요~


우와... (이럴 줄 알았으면 더 쎄게 해보는건데...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심 큰 기대는 없었다. 새로 들어왔으니 저놈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밥값은 할 놈인지 간 볼 겸 의례적으로 하는 프리젠테이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발표하는 내내 필기해가며 경청하는 모습이 신선하다 못해 낯설기까지 했다. 적지 않은 나이(사실 액면가에 비하면 그리 많지도 않지만ㅋ)에 자신에 대한 비판을 귀담아 듣고 이를 개선하려는 아재를 보스로 만난다는 것은 행운임과 동시에 직업인으로서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자리를 꿰차고 앉아서 목에 힘을 빳빳하게 주고 거들먹거리는 보스가 아니라 언제나 스스로 성장할 수 있게 깨어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작은 기대를 가져본다.


굿잡 뿌잉뿌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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