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을 위해 이직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누군가에게 자신을 지식과 기술을 나눠주는 업(컨설팅, 에이전시 등)을 하는 사람이라면 영역을 막론하고 '헌터'가 아닌 '농부'가 되어야 한다는 게 평소 생각이다. 자신이 맡은 프로젝트나 클라이언트의 성장이 업의 소명이라고 믿는다(그래야 또 계속 밥벌이를 할 수가 있기도 하고). 그러므로 대개 이런 업을 직업으로 선택한 사람들은 정체되지 않고 매일을 성장하며 살아야 한다는 압박 아닌 압박 속에 지낸다. 자신의 업으로 밥벌이를 하기 위해 더 먼저 경험해야 하고 더 빨리 알아야 한다. 늦더라도, 조금 밀렸더라도 끊임없이 계속 캐치 업은 해야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슬럼프가 찾아왔다.
나는 10년 뒤에도 버틸 수 있을까?
내 얕은 재주가 나 자신을 계속 갉아먹는 느낌이 들면서 불안감이 찾아왔다. 당분간은 버틸 수 있겠지만 지금의 실력으로 10년 뒤에도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압박이 생겼다. 특히 자신이 가진 작은 능력이나 기술, 또는 경험이 엄청 대단한 것인 양 부풀려 잘 모르는 이들에게 '눈탱이'를 치는 이들을 보면서 그 초조함은 더 늘어갔다. 나도 저렇게 되지 않으란 법은 없으니까. 이건 그들에 대한 비아냥보다는 진짜 내게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란 생각이 계속 나를 괴롭혔다.
그래서 한 때는 이직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요소가 바로 배울 것이 있는 선배가 있는 곳이었다. 이전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좋은 선배들이 많은 곳에서는 많은 만큼 피똥도 싸게 되지만 압축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잘하는 선배를 따라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공부였다. 이직 과정에서 있는 네트워크 없는 네트워크 다 땡겨서 체크한 것이 함께 일하게 될 동료, 특히 그런 선배가 있는지 여부였다. 그런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연봉이 조금 낮더라도 흔쾌히 '좋은 선배'가 있는 곳을 선택했다.
사실 어쩌면 연봉이란 것은 지금 나를 평가해주는 객관적 지표이긴 하나 직장인으로 살기보다는 조직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몸을 바로 세울 수 있는 직업인으로, 40대에는 육아에 집중할 수 있는 포지션을 원했기에 지금의 월수입보다는 빠른 성장을 선택했다. 후일을 도모(?)하기에는 이게 더 합리적이라는 판단이었다.
이런 기준으로 여기저기 다녀봤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좋은 선배는 어딜 가나 있었다. 정면교사와 반면교사를 할 수 있는 선배 말이다. 그러나 쉽게 만족할 수 없었다. 특히 아무것도 모른 체 스펀지처럼 쭉쭉 빨아들이던 시기가 지나면서 내게도 일련의 '쪼'가 생기니 더 그러했다. 결국 어딜 가도 허수아비가 찾던 뇌도 없었고, 양철 나무꾼의 심장도, 사자가 그토록 원했던 용기도 없었다. (역시 연봉이 진리였던 건가?!)
대신 다양한 형태의 조직과, 다양한 스타일의 리더, 다양한 성격을 가진 팀원, 상상도 못 할 다양한 또라이(내가 아녀서 다행이긴 했지만, 하긴 그건 또 모르는 거니까 일단 보류)를 겪으면서 한 가지는 얻을 수 있었다. 어떤 선배가 배울 것이 많은 선배인지, 어떤 동료가 나를 성장시켜줄 수 있는 동료인지 말이다.
그는 바로 충실한 하루였다. 하루를 충실하게 잘 보내는 것, 그리고 그 하루들이 모이고 쌓여서 만들어내는 것들이 결국 좋은 선배이자 나를 성장시켜주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렇게 찾아 헤맨 뒤에서야 말이다. ‘저어-기'에 있는 줄 알았는데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에메랄드 시티를 찾아, 오즈를 찾아 그렇게 열심히 다녔던 도로시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그는 바로 충실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