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_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이다혜 작가)
서울 생활이 벌써 10년이 넘었는데, 그중 대부분의 시간은 혼자 자취를 했다. 혼자 있는 시간 동안 ‘빨간책방’이라는 책 리뷰 팟캐스트를 자주 들었다. 이다혜 작가는 빨간책방의 진행자 중 한 명으로 처음 알게 되었다. 어떤 책에 대해서든 진지하고 즐겁게 이야기하던 분으로 기억한다. 이번에 리뷰하게 된 이다혜 작가의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는 빨간책방에서 언급이 되어 읽게 되었다.
사실, 처음에는 이 책을 읽는 것을 주저했다. 왜냐하면, 첫째로 글쓰기 관련 책을 읽고 나서 실질적으로 도움이 된 적이 없었고, 둘째로 일전에 읽은 이다혜 작가의 <책은 밤이다>라는 책이 나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책에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들은 너무 많이 쓴 느낌이었다) 하지만 빨간책방 팬심으로 한번 더 이다혜 작가의 책을 도전했다. 그리고 이 책은 이번 19년 상반기에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이 되었다.
이 책의 첫 번째 장점은 친한 친구와 이야기하는 듯한 글의 톤이다. 저자는 글쓰기를 힘들어하고 있는 친구들을 위해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글이 소탈하다. 예를 들어, 중간중간 책을 쓴다는 약속이나 마감을 지키지 못해서 피해를 입었던 분들에게 사과를 하고, 자신이 글쓰기를 못했던 날들에 대해서 고백을 한다. 더구나 책 시작 부분에서는 글쓰기라는 것을 가르칠 수 있을까 하고 솔직한 의문을 털어놓으며 시작한다. 그래서 이 책은 독자에게 강의를 한다기보다는 함께 고민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편안하게 읽혔다.
십 년 전에 아무에게도 토로하지 못하고 글 빚에 파묻혀 울던 내게도 그 말을 해주고 싶다.
널 위해, 그리고 지금의 내 친구들을 위해 책을 한 권 썼어.
잘 쓰는 사람만 보느라 스스로 나아질 기회를 날리지 말았으면 좋았을 걸.
십 년 전의 나야, 그만 울고, 그만 울라고.
글을 쓰려면 울게 아니라 글을 써야 한단다.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다.
-책의 내용 중 <십 년 전의 나에게>에서 발췌 -
두 번째는 장점은 뷔페 같은 책의 구성이다. 책을 읽다가 보면 저자는 글쓰기에 관련해서 생각난 모든 것을 책에 담은 느낌이다. 그래서 글쓰기에 대해 팁도 많고 여러 관점으로 생각해보는 기회도 가지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생각을 구체화하기 위해, 소재를 발전시키는 등의 기본적인 글쓰기 지식뿐 아니라 저자의 실용적인 글쓰기 관련 노하우도 배울 수 있었다. 아래는 그중 하나인 편중되지 않게 책을 읽기 위한 저자의 조언이다.
읽기의 방법에는 이거다 싶은 단 하나의 정답은 존재하지 않지만, 강조하고 싶은 것은 ‘나의 방식’을 만들어가는 시행착오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점이다. 그 시작은 책 고르기다. (중략)
그렇게 한 뒤에는 책을 읽는데, 읽다가 못 읽겠으면 그만 읽는다. 그리고 다 읽었든 아니든 그 책에 대한 간단한 메모를 한다.
나는 왜 이 책을 끝까지 읽었을까/읽지 못했을까?
나는 왜 이 책을 대여/구입했을까?
이 책을 대여/구입할 때 내가 기대한 것과 이 책이 채워준/채워주지 못한 것들은 무엇인가?
(책의 완독 여부와 무관하게) 이 책이 내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 점은 무엇인가
(책의 완독 여부와 무관하게) 이 책이 나의 흥미를 끈 부분은 무엇인가
이런 다섯 가지 지점을 하나씩 생각해본 뒤 다음 책을 고를 때 반영하는 식이다. 뜻밖에도 책을 고를 때 우리는 책의 외적인 환경(표지, 추천사, 판형 등)에 좌우되기 쉬운데 자신의 그런 경향성을 파악하는 데는 경험을 쌓고 실패해보는 것이 가장 확실하다.
‘내가 좋아할 만한 책’을 파악하기 쉬워지면, 그 뒤에는 관심사 깊게 파기와 관심사 넓히기를 양립할 수 있는 책 읽기를 권한다. 그리고 ‘넓히기’ 위한 ‘깊게 파기’의 방식으로 좋은 일은 역시 읽은 책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이다.
-책의 내용 중 <책 읽기, 그리고 읽은 책에 대해 쓰기>에서 발췌 -
세 번째 장점은 저자의 에세이를 읽는 재미이다. 책은 중간중간 예시로 저자의 에세이를 사용한다. 글을 감칠만나게 쓰는 것은 기본이고 소문난 독서광답게 책에 나오는 도서의 종류가 굉장히 다양해서 새로운 텍스트를 접하는 재미가 있다. 예를 들어, 전국의 중고생들의 학급 문집을 글로 모은 <나도 생각 있음>부터 시작해서 <할머니의 여름휴가>라는 동화책, 손열음의 <하노버에서 온 음악편지>, 오스카 와일드의 <오스카리아나>등이 있다.
안녕 달 작가의 그림책 <할머니의 여름휴가>를 펼치면, 두 페이지 가득 할머니의 집안 풍경이 보인다. 여기 있는 소리라고는 ‘윙윙윙윙윙’하며 거실에 앉은 할머니 앞에서 힘겹게 돌아가고 있는 낡은 선풍기에서 나는 소음가 ‘할할’ 하며 숨을 몰아쉬는 할머니 옆의 개가 내는 소리뿐이다. 더위 때문인지 미닫이문은 활짝 열려있고, 그 밖으로 할머니가 화분에 가꾼 작은 텃밭이 보이고 저 멀리 아파트 단지엔 껑충한 건물들이 서있다. (중략...) 그리고 다음 페이지에서, “띵동!’하고 초인종이 울린다. 개는 신이 나서 달려 나가고 할머니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피어오른다. 며느리와 손자가 방문했다. 할머니가 손자에게 음료수를 꺼내 주는 사이, 손자는 바다에 다녀온 자랑을 늘여 놓는다. “엄마, 할머니랑 또 가요!” “할머니는 힘들어서 못 가신다니까” 그 말을 들은 손자는 주머니에서 소라르 꺼내 건넨다. “바닷소리를 들려드릴게요”
-책의 내용 중 <한 권의 책, 두 가지 리뷰>에서 발췌 -
이 책은 글쓰기를 '어떻게 하면 시작할 수 있을까’하고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20년 경력의 편집기자가 허심탄회하게 내어놓는 글쓰기에 대한 조언들을 읽어 볼 수 있고, 생경한 작품들에 대한 리뷰를 키득거리며 읽어 볼 수 있다. 물론 이 책을 본다고 해서 글쓰기 실력이 엄청 늘지는 않는다. 정작 소개하는 내가 만족스러운 리뷰를 쓸 수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글을 처음 써보는 사람이 현실적으로 가장 쉽게 글쓰기를 시작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그리고 초보 작가의 마음의 안심시켜 주는 건 덤이다. ‘이렇게 잘 쓰는 사람도 처음에는 글을 잘 못 써나 보다. 다행이네' 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