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에게 집의 주도권을 빼앗기다
인간들은 벌레를 싫어해. 그래서 벌레들을 멸종시키려고 노력해 왔지.
하지만 벌레는 여전히 우리 곁에 있어.
삼체 1부에 나오는 대사다. 인간을 벌레 취급하는 월등한 과학 기술의 외계인에 좌절한 주인공에게 옆의 조력자가 해준 말로, 시리즈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희망적인 대사지만 화면 속 주인공 주변을 날아다니는 벌레들을 보는 내내 마음이 착잡했다. 벌레를 멸종시키려 노력했으나 실패한 인간이 바로 나였기 때문이다. 호치민에 이사 온 지 2년, 개미가 내 집을 점령한 지 오래다.
개미와의 첫 조우는 방바닥에서였다. 돌바닥 특유의 냉기를 즐기며 누워 있는데 눈앞에 개미가 기어 다니는 게 아닌가. 처음에는 그다지 상황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래봤자 개미 한 마리인걸. 날개가 달린 것도 아닌데 잡으면 그만이지.
워낙 각종 곤충이 많이 나오는 베트남인지라 이미 시중에 훌륭한 개미약도 있었다. 내가 선물 받은 맥**스라는 개미약의 원리는 이랬다. 개미가 다니는 길목에 약품을 소량 짜서 놔두면 개미들이 몰려와 이를 먹는다. 맥**스는 몹시 맛있으므로 개미들은 이를 개미굴에도 포장해 간다. 그렇게 여왕개미를 포함해 독약을 사이좋게 나눠 먹은 개미 일족은 멸망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개미들을 통째로 죽여버린다니 너무 잔인하다 싶었다. 지구를 인간 혼자 쓰는 것도 아니고 너무하지 않나. 나는야 감성충만한 지성인. 눈앞에 있는 개미만을 잡고 우선 넘어갔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 내가 미처 생각을 못했던 것은, 지구는 모두가 함께 쓰지만 우리 집은 내가 집세를 낸 공간이니 혼자 써도 됐었다는 사실이다. 개미의 생명권 운운하며 안이하게 굴던 차에 어느새 주도권을 빼앗기고 말았다. 노트북으로 타자를 치고 있다 보면 화면 위로 개미가 지나갔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며 무심결에 아래를 내려다보자 개미가 줄을 지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목이 말라 생수를 벌컥 들이키려는데 컵에 둥둥 떠 있는 개미를 발견했던 그날, 짜증이 확 올라왔다. 기본적인 의식주 생활은 쾌적해야 할 것 아닌가. 나도 내 집에서 개미와 얼굴 부빌 걱정 없이 편하게 지내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내가 비웃던 ‘곤충 몰아내기에 집중하는, 생명의 소중함을 생각하지 않는 인간’이 되었다. 집안 곳곳에 맥**스를 짜두었다. 개미 일족의 안위 따위는 알 바 아니었다.
삼체를 아직 끝까지 다 읽지 않았지만 결말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인간은 벌레를 이길 수 없나 보다. 우리 집의 전투는 개미 일족의 승리로 끝이 났다. 개미들은 내 집 이곳저곳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지내고 있다. 아마 지금도 주방 구석에서 잔치를 벌이고 있을 것이다. 나는 개미 생태학자로서의 기본 소양을 쌓게 되었다. 개미 사체가 쪼그라든 정도를 보면 사망한 지 어느 정도 되었는지를 추측할 수 있는 식이다. 월트 디즈니는 방 안의 쥐를 관찰하다 미키마우스를 탄생시켰다는데 과연 나는 얼마나 대단한 창작자가 될런지.
개미를 발견할 때마다 치를 떠는 내 모습에서는 과거 개미 일족의 안위를 염려하던 교양 있는 지식인을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 없다. 사람은 쉽게 변했다. 아니면 지금의 모습이 가식을 집어던진 본래 내 모습일지도. 안온한 상태에서 내리는 ‘합리적인’ 결정과 나의 이익과 직결되는 상황의 사고는 180도 달랐다.
그래서 생각한다. 절박한 상황에 몰린 누군가의 판단을 이기적이라며 함부로 조소하지 말자고. 삶이 녹록지 않을 때 못나지고 추해지는 건 모두에게 해당하는 일이라고. 타인을 함부로 재단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타인의 입장을 100% 할 수 없는 법이다. 결국 누군가를 함부로 미워하지 말자고 다짐한다. 우리 집 개미들 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