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부탄이 그랬어

오 나의 가정부

by 유장래

가정부 때문에 힘들다. 배부른 소리 같겠지만 여긴 인건비가 싼 나라 베트남이니 조금만 아량을 베풀어 하소연을 들어주시길.

나의 브엉 씨는 행주로 소파부터 바닥까지 청소하는 사람이다. 처음 그 모습을 보았을 때 어찌나 충격이었는지. 나라가 다르면 청소법에도 차이가 있는 걸까. 그는 나의 상식들을 종종 부순다. 현대 미술을 하셨으면 좋았을 텐데.



브엉 씨의 답답한 점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설거지를 더럽게 한다. 기분 좋게 요리를 담으려 그릇을 꺼냈다가 개수대에 다시 넣은 게 몇 번인지 모르겠다. 그는 브래지어 패드를 정확하게 거꾸로 집어넣는다. 출근하려고 부랴부랴 옷을 입는데 죄다 울룩불룩하게 패드가 튀어나와 있으면 열이 확 오른다. 이 정도면 나에게 원한이 있는 게 아닐까.

주방 가위와 일반 가위를, 외출용 겉옷과 스포츠 유니폼을 구분하지 못해 아무 데나 놓아두는 건 이제 놀랍지도 않다.



누군가는 지금쯤 의문이 들 것이다. 그렇게 별로면 가사도우미를 바꾸면 되지 않나? 이 세상 가정부가 한 명은 아닐 텐데 왜 투덜거리면서도 이렇게 살고 있나? 하지만 당신도 알 것이다. 세상일이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이게 다 람부탄 때문이다.








작년 11월 초, A형 독감에 걸린 적이 있다(스리랑카에서 걸렸는데 이 이야기는 나중에 하도록 하자). 머리가 핑핑 도는 와중에 몸 구석구석에서 근육이 녹아내리는 듯한 통증이 느껴지며 몸이 덜덜 떨렸다. 땀범벅이 되어 깨었다가 추위에 몸서리치면서도 움직일 힘이 없어 그저 앓고만 있었다. 이곳은 베트남. 난 철저히 혼자였다.



생각해 보면 출근 시간이니 한국이었어도 자취생인 날 챙겨줄 사람은 딱히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어딘지 모르게 서러웠다. 부모님이 걱정하실까 한마디 뻥끗 못한 것은 물론이요 이대로 내가 소리 없이 죽어도 아무도 모를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집구석에 틀어박혀 더웠다 추웠다 명태가 되는 과정을 홀로 이겨냈다. 사실 이겨냈다기보다는 수동적으로 버텼다는 표현이 더 맞겠지만 말이다.



그때 브엉 씨가 나타났다. 내가 직장에 있을 시간에 우렁각시처럼 왔다 갔기에 그를 마주한 건 실로 오랜만이었다. 브엉 씨는 예상치 못한 집주인의 등장으로 한 번 놀라고, 몸에 밴 유교 사상에 의거해 그를 일어나 맞이하려던 내가 비틀거리자 두 번 놀랐다. 그는 내게 누워있으라고 당부한 뒤 집안일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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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잠에 들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눈을 떴을 땐 집이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다. 식탁에는 람부탄을 비롯해 몇몇 열대과일이 놓여 있었다. 웬 과일인가 싶어 다가가 보니 쪽지가 있었다.

‘모두 마트에서 산 깨끗한 과일이에요. 먹고 얼른 낫길 바란다.’

본인이 선심을 베풀어 놓고도 내가 과일의 청결도를 의심할까 봐 출처까지 밝히는 모습에 마음이 찡했다. 예상치 못한 친절에 가뜩이나 병으로 인해 흐물흐물하던 내 마음은 흘러내렸다.



브엉 씨는 그다음 방문에도 분보후에를 사놓고 갔다. 사실 람부탄도 그랬지만 아픈 와중에 먹고 싶은 음식은 그다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순간에는 내 음식 취향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고수 가득한 베트남 전통 고기국수를 애써 씹어 삼키다 보니 내가 회복되는 게 느껴졌다. 착각일 수 있겠지만 분명 그랬다. 브엉 씨를 함께 소개받았던 직장 동료들이 하나둘 브엉 씨를 해고할 때에도 나는 그에게 그만 오라고 할 수가 없었다.








브엉 씨를 향한 내 판단은 여전히 오락가락한다. 글을 쓰는 지금처럼 브엉 씨의 친절함을 회고할 때면 남은 베트남 생활을 그와 함께하는 게 사람의 도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열어놓은 욕실 하수구 구멍과 짝짝이로 개어 놓은 양말 쌍을 볼 때, 그를 향한 애정은 차갑게 휘발한다. 대체 왜 기본도 못 해서 나를 시험에 들게 하시는 건지.




한때 유행했던 밸런스 게임(직장 동료 선택의 딜레마)이 있다. 일은 뛰어나게 잘하는데 싸가지가 심히 없는 사람과 인품은 훌륭한데 일은 거지같이 하는 사람 중 누굴 동료로 맞이하겠냐는 물음이다. 이 질문이 이제는 다르게 읽힌다. 능력주의 사회라는 21세기에도 따스한 마음씨는 효력을 발휘한다고. 당신의 일처리 능력이 바닥이 아닌 한 사람들은 그래도 따스한 위로의 말 건넬 줄 아는 당신을 더 반길 거라고. 우리 거지 같이 일을 못하지만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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