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술 맷돌 이야기

by 유장래


“선생님, 진짜로 바닷속에서 요술 맷돌이 계속 돌아가고 있어요?”

“응?”


지율이의 질문에 순간 당황했다. 설마 하니 「소금을 만드는 맷돌」을 읽고 그런 질문을 할 줄은 몰랐다. 장난인가 싶어 지율이의 얼굴을 살폈으나 지율이는 진지했다. 다른 아이들 역시 숨죽인 채 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너희 진심이구나. 한국에서는 다섯 살이면 읽는 전래동화에 이런 반응이라니 당황스러웠다.


“음... 지금은 국어 시간이니까 맞는 말이지요.”


나는 교묘하게 말장난을 쳤다. 저런 눈망울을 한 아이들에게 굳이 진실을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만 7세 어린이들이 ‘지금은’ 같은 단어의 뉘앙스를 헤아릴 리가 없다. 맞는 말이라고 하니 신이 나서 질문을 퍼붓기 시작했다.


“맷돌이 너무 많이 돌아가서 바닷물이 엄청 짜지면 어떻게 해요? 그럼 물고기가 죽잖아요.”

“맷돌은 어느 나라 바다에 있어요? 냐짱(나트랑) 가보니까 베트남 바다도 짜던데 설마 맷돌이 베트남 바다까지 떠내려온 거 아니에요? 그럼 좋겠다.”


이쯤 되니 과학교육과 출신으로서의 자아가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학생들에게 명백한 오개념을 심어주고 있는 것 같다. 결국 나는 참지 못하고 진실을 밝혔다.


“이건 그냥 동화일 뿐이에요. 강물이 바다로 흘러들어올 때 염분, 아니 소금을 가지고 와서 바다가 짠 거랍니다.”


아이들의 눈빛이 순식간에 공허해졌다. 산타클로스의 비밀이 그렇듯 때가 되면 알아서 깨닫게 될 텐데 괜한 짓을 했다. 나는 내 대답을 꽤 오랜 시간 동안 후회했다.







우기가 되면 도시 곳곳에 물이 범람하기 시작한다. 단순히 비 때문만은 아니다. 해발고도 19m인 이곳은 만유인력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 달이 지배하는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은 인력에 맞춰 무릎까지 차오르다가도 한두 시간 뒤면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진다. 저녁을 먹고 온 사이에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물을 보면서 생각한다. 저 물들은 다시 바다로 돌아갔겠지. 요술 맷돌을 대신해 염분을 모아 갔겠지.


내가 일하는 곳은 베트남 호치민이다. 옛 이름은 사이공, 정확한 발음 표기로는 호찌민이 되겠다. 이곳에서 살기 전까지는 호치민하면 막연히 더운 휴양지 정도를 떠올렸다. 다 틀렸다. 이곳은 새벽부터 주 6일 일하는 분위기의 대도시이며(1000만 명 이상이 거주하는, 서울보다도 인구수가 많은 곳이다) 나름의 계절이 있다(당장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추워서 잠바를 껴입고 있다). 한국과 비행기로 5시간 거리인 이곳에는 8만 6천여 명의 교민들이 산다. 강원 속초시보다도 만 명 많은 숫자다. 자연스럽게 한글학교가 필요해졌다. 국제학교에 다닌다거나, 부모님 중 한 분만 한국인인 경우에는 한글학교가 아니면 한국어를 쓸 일이 아예 없는 아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 한글학교의 너희와 있다 보면 놀랄 때가 종종 있었다. 지난번 수업 때 우리는 추석에 대해 배웠고, 너희는 추석을 잘 몰랐다. 민족 대명절 추석을 말이다. 추석이라는 이름은 들어보았으나 그게 정확히 무얼 하는 날인지, 왜 기념하는지 하나도 대답하지 못했다. 추석은 1년 동안 지은 농사를 축하하는 시간이에요. 미국의 추수감사절 같은 거라고 보면 돼요. 너희는 땡스기빙데이(Thanks giving day)라는 단어가 나오고 나서야 고개를 주억거린다.



그런데 왜 하필 음력 8월 15일일까? 내가 질문을 하면 다들 눈만 말똥말똥 뜨고 있다. 그건 1년 중 달이 가장 밝은 날이기 때문이에요. 아, 저 알아요. 풀 문(Full moon)! 그래, 보름달이 뜨는 날이에요. 너희는 보름달이라는 단어를 소리 내어 발음해 본다. 덕분에 나도 입술끼리 맞닿으며 보름달, 발음할 때 어떤 소리가 나는지 감상하는 시간을 가진다. 한국이었다면 지루해하며 10분 만에 끝났을 이야기가 두 배로 길어진다. 그만큼 너희는 모르는 것도 질문도 많다. 너희는 지금까지 추석과 상관없이 7여 년을 살아왔으나 세시풍속 이야기에 귀를 쫑긋하며 집중한다. 나는 뿌리에 대해 생각한다.



처음부터 1학년 5반, 나와 아이들의 만남이 아름답고 순탄하게 흘러가지는 않았다. 한글학교를 시작한 나의 동기부터가 불순했다. 나는 호치민시한국국제학교 교사로 이곳에 와 처음 한글학교 공고를 보았을 때 시큰둥했다. 첫째로 이런 건 나의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물론 나는 한국인이고, 유창하게 한국말을 구사할 줄 알다.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한국어를 가르칠 자격이 될까. 한때 아나운서를 꿈꾸며 한국어 능력 시험을 깔짝여 본 적이 있기에 내 수준을 잘 알았다. 둘째로는 쉬고 싶었다. 호치민 생활에 완벽하게 적응이 끝나지도 않았으며,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맡은 일을 해내기만 해도 벅찼다. 주말 정도는 휴일로 남겨두고 싶었다.



다소 MZ 스러운 입장을 고수하던 내가 한글학교 교사에 지원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부끄럽지만 동료들 때문이었다. 친구들의 대부분이 한글학교에서 일을 했고, 토요일 오전은 어떤 약속도 잡을 수 없었다. 나 홀로 보내는 토요일 아침은 평안하면서도 고독했다. 다들 왜 그렇게 한글학교를 하는 거야. 나랑 놀아주지도 않고. 투덜대는 내게 친한 동료 교사 하나가 이야기했다. 한 번만 해봐. 그러면 알게 돼. 그렇게 한글학교에 지원했고, 1학년 5반 열다섯 명의 아이들을 만났다.



한글학교는 그동안의 수업과는 사뭇 달랐다. 그러니까, 중간중간에 당연히 있을 줄 알았던 무언가가 빠져있는 느낌이었다. 가나다를 잘 쓰다가도 ‘밟다’, ‘맑다’ 같은 겹자음 있는 글자가 나오면 까막눈 수준이 되었다. 글자를 네모 칸 안에 집어넣질 못하고 기이한 비율로 쓰는 건 당연했다. 평범하게 의사소통이 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박물관, 경찰 같은 단어들 대신 뮤지엄, 폴리스가 등장했다. 감탄사는 죄다 영어로 한다. 아, 한글학교라는 게 한글을 가르치는 곳이었지. 상당수의 아이들이 오직 이 시간에만 한국어를 배운다는 사실이 피부로 와닿았다.



그러니까, 너희는 한국인이지만 한국에 대해서 아는 바가 거의 없단 말이지. 나는 내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그제야 인지했다. 너희를 한국에 사는 아이들과 다를 바가 없게 한국어를 사용할 수 있게 만들겠어. 나는 침팬지를 돕는 제인 구달과도 같은 심정이 되어 이것저것 준비하기 시작했다. 자음퀴즈와 끝말잇기처럼 한글놀이를 많이 해야겠어. 단원별로 중요한 단어들은 한 번씩 따라 쓰게 해야지… 나의 열심은 점차 강박에 가깝게 변해갔고, 아이들은 공부 분량에 시들어갔으나 당시의 나는 알지 못했다.



어느 날, 수업 중 찍힌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 목표한 것보다 진도를 빨리 나가서 보상으로 신체놀이를 한 날이었다. 짧은 시간이라 별 준비를 하지 않고 수건 돌리기 같은 고전적인 놀이를 했다. 뻔한 게임이라서 지루해할 줄 알았는데 아이들은 그조차 처음이었다. 수건 돌리기를 할 때 노래를 부르면서 진행해야 하는데 아는 동요도 없다시피 했다. 그래서 우리는 손이 꽁꽁꽁 노래만 죽어라고 부르며(흉내 내는 말을 배울 때 익혔다) 서툴기 그지없는 수건 돌리기를 했다. 그래서 내게는 아쉬움이 남는 수업이었다. 그런데 사진 속 아이들은 활짝 웃고 있는 게 아닌가. 아이들이 밝음을 내뿜다 못해 터뜨리고 있었다. 어찌나 즐거워 보이는지 사진 속 공기마저 상큼한 레몬향이 나는 느낌이었다. 나와 수업할 때 한 번도 지은 적 없는 표정이었다. 멍하니 사진을 들여다보다가 깨달았다. 이렇게 행복할 수 있는 아이들인데 내가 ‘받침이 있는 글자 알맞게 발음하기’ 같은 것만 시켰구나.



그 뒤로 내 목표는 예전과는 달라졌다. 우리 반은 매주 동요를 하나씩 부른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와 딱지치기를 하는 시간을 가진다. 물론 예전에 비해 학습량이 줄었다. 그래도 이곳은 학원이 아니라 학교니까. 한국의 문화와 얼을 익히는 것 역시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아직 1학년이다. 문법과 맞춤법을 체계적으로 배우는 것 역시 때가 있을지도 모른다. 요술 맷돌의 비밀처럼 말이다.



이번 학기부터 우리는 매주 받아쓰기 시험을 본다. 감사하게도 내가 맡은 반은 학부모들이 협조적이어서 다들 열심히 준비를 해온다. 아이들도 한국 학생과 달리 시험 보는 걸 재미있어하고 기다리기까지 한다. 시험 앞에서 기가 죽는 것보다 이 편이 훨씬 낫다.



오늘 받아쓰기 5번 단어는 ‘맷돌’이었다. 이야기는 그렇게 집중해서 들어놓고선 ‘멧돌’이라고 쓰는 아이들이 절반이다. ‘매똘’같이 창의적인 맞춤법도 등장한다. 너희들, 내가 동화 읽어줄 때 그림만 열심히 봤구나.



그래도 괜찮다. 바다에서 놀다가 바닷물을 들이켜고는 짠맛과 함 요술 맷돌을 떠올린다면, 동그란 보름달을 올려다보며 추석을 생각할 수 있다면 그걸로 됐다. 너희는 1학년이기에 내년만 되어도 나를 까먹겠지. 그 역시도 아무렴 괜찮다. 한국의 무언가가 너희 안에서 잘 자라고 있다면 그걸로 됐다. 그리고 깨닫는다. ‘박물관’, ‘보름달’ 같은 단어들이 내게도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말로 변했다는 사실을. 내 마음속에서도 요술 맷돌이 돌고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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