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를 비웃어도 좋다. 내가 봐도 그럴 만하다. 하지만 꽤나 진심이라는 점을 알아주길 바란다. 상당히 왜곡되었을 수 있지만 내 기억에 난... 음악 천재였다.
일곱 살 즈음, 피아노 건반과 음악 이론이 어느 정도 몸에 익었을 무렵, 내 음악적 재능도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어느 정도였느냐 하면, 창문 너머로 들려오는 새소리, 비 젖은 도로 위 자동차의 물 찰박거리는 소리를 들으면 악상이 떠오르는 식이었다. 그건 단순한 가락 수준이 아니었다. 여기서는 클라리넷이 베이스를 깔아주고, 주선율은 플루트가 진행하지만 바이올린이 화음을 풍성하게 깔아주다가... 물론 유치원생 어린이가 어디서 주워들은 곡을 자신이 창작한 것으로 착각했을 확률도 있다. 진실은 알 길이 없다. 어쨌든 내 머릿속에는 멜로디들이 다양한 악기의 색을 지닌 채 꿈틀거렸다.
초등학교 3학년 무렵, 내 고막이 남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아갔다. 악기 연주를 듣고 음을 알아맞히는 건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었다. 불현듯 영감이 오는 것 같지도 않았다. 내가 몇백 년 전 볼프강 가문에서 태어났다면 모차르트의 뒤를 잇는 위대한 음악가가 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그래도 아직 늦지 않았다. 큰 맘을 먹고 엄마에게 오선지를 사달라고 부탁했다. 고집을 피운 끝에 초등학생용 공책 대신 성인용 50매 이상의 하드커버 오선지를 거머쥐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당장 떠오르는 멜로디부터 채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네 줄 정도 기록했을 때 그만두었다. 콩나물 머리 부분을 하나하나 정성 들여 색칠하고 있자니 손이 금세 아팠다. 애초에 흥얼거리는 멜로디를 정확한 박자와 조로 표현해 낼 수준의 음악 지식이 안 됐다. 그렇게 차기 모차르트를 향한 야심은 다섯 줄 이내로 끄적이다 만 곡들과, 이럴 거면 왜 비싼 노트를 고집했냐는 엄마의 꾸지람만 남기고 종지부를 찍었다.
내가 채보하는 법만 제대로 알았어도, 모차르트처럼 음표를 대충 그리는 요령만 있었어도 달랐을 거다,라고 중고등학생 시절까지 생각했다. 얼굴 곳곳에 여드름이 나던 그 시기쯤 내 음악 능력은 퇴보하고 있었다. 동시에 다섯 개도 식별할 수 있던 화음은 이제 간신히 한두 음만 들리는 정도가 되었다. 머릿속의 오케스트라는 떠나고 단출한 멜로디만 연주하는 피아노 한 대만 남았다. 신은 저마다 하나의 달란트를 주었다는데 아무래도 난 그 달란트를 떠나보낸 듯했다.
위대한 작곡가는 물 건너갔으니 그보다 쉬워 보이는 길을 가보기로 했다. 바로 악기 연주자다. 들으면 바로 따라 연주할 수 있는 귀를 가졌는데 그 정도쯤이야. 눈치챘겠지만 그 역시 오판이었다. 바이올린은 듣기 힘든 끽끽 소리가 났으며 플루트는 숨을 너무 거칠게 쉰 탓인지 바람 소리가 강했다. 클라리넷은 입술 주변 근육이 모자라 길게 불 수가 없었고... 죄 그런 식이었다. 세상 예민한 내 귀가 좌절을 한 층 진하게 만들었다. 음이 반음정 내려갔다거나 고음이 거칠게 나는 건 잘 알겠는데 거기까지였다. 이걸 고치려면 수천 번의 반복 훈련이 필요한데 나는 그걸 이겨내지 못했다.
나에게 음악은 아련한 첫사랑이다. 운명처럼 다가왔으나 내가 부족해서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존재다. 타이밍이 맞았더라면 뭔가 달랐을까. 답은 평생 모른 것이다. ‘한승희’와 결별한 뒤로 ‘환승입니다’가 연인 이름처럼 들려 지하철 타기가 괴롭다는 누군가의 고백처럼, 나는 음이 있는 모든 것이 싫었다. 음악을 의도적으로 피했다. 귀에 들리기만 하면 그걸 저절로 분석하고 있는 내가 싫었다. 작곡가나 연주자의 실수를 신랄하게 비평하지만 정작 나는 그들의 발끝만큼도 음악적 재능이 없었다. 방구석 비관주의자인 내가 참 싫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을 마주하는 순간들이 온다. 걷다가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유행가를, 유튜브에 깔린 배경음악을 듣는다. 음악에 스며들다 보면 12음의 조합으로만 이루어진 이 예술에 얼마나 다양한 변주가 있는지 감탄을 멈출 수가 없다. 선율에 정신을 맡기게 된다. 그리고 끝이 어떨지 알면서도 노래한다. 베이스를 치고, 단소를 분다. 과연 첫사랑답다. 한승희와 헤어졌다는 그 사람도 부러 지하철 개찰구 앞을 서성이며 환승 안내음을 듣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음악이 싫다. 잘하지 못해서 싫다. 내가 주제도 모르고 노래 부르고, 연주하고 싶게 해서 싫다. 밴드, 오케스트라 공연을 감상하며 황홀경에 빠지게 한 뒤 다시 주제파악을 시킬 거라서 싫다. 이 모든 과정은 지겨울 정도로 반복된다. 설렜다가, 고백했다가, 현실을 깨닫고 멀어졌다가, 다시 설렜다가.
거짓말했다. 사실 음악이 좋다. 그래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