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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May 23. 2020

면접에서 마주한, 나와 같은 사람들

대한민국의 수많은 직장인 대학원생을 응원하며

입학 전형을 살펴보고 원서를 넣었다. 아주 오랜만에 쓰는 자기 소개 겸 학업 계획서. 글을 쓰면서 이런 내용들에 관한 나의 모습을 표현하는 일의 생경함을 느끼며 마치 풋풋했던 학생 시절로 돌아가는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렇게 서류를 넣고 면접을 보는 날.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잘 모르니 우선은 깔끔한 정장부터 골랐다. 입사 면접도 아닌데 너무 딱딱하게 입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너무 가볍게 입고 가는 것은 당연히 예의가 아니고. 고민을 거듭한 끝에 검은색 원피스를 골라서 입고 학교로 향했다. 오랜만에 들어선 대학교 캠퍼스는 주말이어도 대학생들이 여럿 돌아다니고 있었고, 뭔가 가을의 정취가 묻어나는 캠퍼스의 분위기는 잠시나마  설레게 했다.  


안내된 곳에 도착하니 애띤 얼굴의 조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대기실은 하나의 강의실이었고 들어가면 호명하는 순서대로 면접을 보게 된다는 안내를 받았다. 강의실에는 약 50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때 나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장면을 마주하게 된다.


먼저 강의실에는 굉장히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우리 아빠 정도의 나이가 되어보이는 아저씨도 계셨고, 엄마 같은 아주머니도 계셨다. 나처럼 정장을 입고 온 사람도 있었지만 굉장히 캐주얼한 차림으로 온 사람도 있었다. 갓 대학교를 졸업한 것 같은 학생들도 있었고, 이미 입학도 하기 전에 다들 아는 사이인지 삼삼오오 모여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도 있었다.


순간 ', 이건 대학원 면접이지.'라고 생각하며... 내가 놓인 현주소를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아마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도 나는 사회생활의 고단함이 묻어나는, 토요일 아침인데 늦잠을 못자서 얼굴은  부어있는, 그런 평범한 직장인의 모습일텐데. 잠시나마 캠퍼스의 청춘에 대한 상상에 물들었던 내 자신을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하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대학 강의실에 앉아있으니 나쁘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나는 친구 말대로 확실히 나이를 불문하고 대학원을 다니려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실감했다. 한편으로는 나도 무거운 몸을 이끌고 이 자리에 왔지만, 직장생활하면서도 이렇게 자기계발을 위해 대학원을 오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을 깨달았다. 아마 야간 수업이 없는 대학원이라면 이런 풍경을 보기 어려웠을테지만, 여기는 주간-야간 수업을 병행하는 전공들이 많아서 더 그런 것 같았다. 이렇게 나같은 사람들도 공부할  있는 기회를 을 수 있으니 감사한 이기도 했다.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면서 기다리는 동안, 미리 만들어 두었던 노트를 꺼내 들었다. 지난 교수님과의 면접 때, 내가 이 분야의 석사과정을 공부한 것이 아니라서 면접 전에 미리 공부를 좀 하고 싶은데 어떻게 공부하면 될지 넌지시 여쭤 봤을 때 추천해주셨던 책을 요약한 것이었다. 나름 면접까지 주어진 한 달의 시간 동안 퇴근하고 집 앞 지하철역 근처에 있는 스타벅스로 다시 출근, 늦은 밤까지 읽고 요약하며 공부한 나의  예비 대학원생 라이프의 성과이기도  노트였다. 갈수록 해는 짧아지고 밤공기가 쌀쌀해졌지만, 나름 열심히 하고 집에 들어가는 길이 나름 성취감있고 좋았던  이었다. 주변을 보니 돋보기를 쓴 어른들도 나름 준비해온 무언가를 보며 긴장된 마음으로 면접을 기다리는듯 했다.


아마 여기 있는 사람들  
나같은 마음이었겠지?



서로 모르는 사이였지만, 면접까지 기다리는 시간 동안 괜한 동질감도 느껴지고   없는 위로를 받기도 했다. 어쩌다보니 나는 면접도 가장 마지막에 했기 때문에 하나 둘씩 면접을 보고 안도하는 표정으로 사라지는 사람들을 보고 있어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뭔가 다들 나름대로의 꿈을 갖고 애써 여기까지 왔을텐데... 다같이 잘됐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빌어보게 되었다.


그렇다면 면접은 어떻게 되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내가 공부한 것은 단 하나도 물어보지 않으셨다.(하하하하... 하얗게 불태웠던 나의 한 달이여...) 전혀 생각하지 못한 질문을 받았고, 현장에서 근무하는 사람이니 현장과 앞으로 배울 전공 간의 연계성에 대한 내 생각을 많이 물어보셨다. 생각해보니 대학원은 지식을 습득, 암기하는 곳이 아니라 그것을 베이스로 나의 생각을 확장하는 공간이기에 더 이런 질문들을 받을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무사히 면접을 마친 후, 집에 와서 배달음식으로 내 영혼을 채웠다. 그리고 난 다시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가 대학원은 잠시 잊은 채 바쁘게 살았다. 그러던 어느날, 합격 발표를 듣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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