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그림 감상법은 무엇보다도 먼저 그림을 만나는 것이다, 아무 정보 없이.
그것은 책에도 영화에도 드라마, 음악, 무용 등 모든 감상에 적용된다.
어릴 적, 아무 정보 없이 친구 따라 간 극장에서 본 영화 [델리카트슨]에 대한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정말 멋진 ‘작품’이었다. 나도 취향이 있기에 먼저 그 영화에 대한 정보를 조금이라도 알았다면 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그렇게 훌륭한 작품을 나는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 후, 장 피에르 죄네(Jean-Pierre Jeunet)감독의 영화는 믿고 보는 영화가 되었다.
우리나라의 영화중에는 [올드 보이], [아가씨]가 있다. 보는 내내 기이한 기분으로 힘들었지만 다 보고 난 후, 아, ‘정말 작품이네’했다. 책도 마찬가지다. 아무정보도 없이 읽은 그렇게 두꺼운 책 [백년간의 고독]은 다 읽고 난 후, 한동안 폭풍고독과 마주해야 했다. 또한 [사피엔스]는 어떤가. 정말 놀라웠다. [총, 균, 쇠]를 먼저 읽은 사람은 감동이 덜했다고 하는데, 나는 거꾸로 [사피엔스]를 먼저 읽어서 그랬는지 [총, 균, 쇠]가 감동이 덜했다.
그 후 관련 정보를 수집한다. 아하! 그래서 그랬구나! 역시! 어쩜! 그렇지!
‘서프라이즈 파티’가 한때 유행이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이벤트를 겪는 당사자에게는 더욱 강렬하게 기억이 남는다. 그림도 나에게는 마찬가지다. 디자인 실장으로 일하던 시절, 나는 사무실의 삭막함을 견디지 못했다. 사업은 아트 포스터를 만들어 파는 일이었는데 많은 디지털 이미지 중에 숲 그림이 있었다. 누구의 작품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사업은 유명작가들을 대상으로 하지 않았고 유명하지 않은 작가들의 작품도 훌륭한 작품들이 많다는 믿음으로 작품이미지를 골라 모은 것 중에 하나였다. 나는 샘플로 벽면을 가득 채울 만큼 커다랗게 숲 그림을 출력했고, 창문이 없는 내 책상 앞의 벽면에 도배를 해 버렸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힐링이 일어난 것이다. 마음은 촉촉해지기 시작했고 기분이 좋아졌으며 여유가 생겼다. 나는 그때, 그렇게 그림의 힘을 믿게 되었다.
명품을 좋아하는 친구가 있다. 그녀는 내가 새 옷이나 가방을 매고 나타나면 눈을 반짝이며 ‘어디 꺼야?’한다. 그리고 ‘어디 꺼’가 아니면 그녀의 관심은 바로 사라진다. ‘멋지다’를 외치던 자신의 목소리를 주워 담고 싶은 표정까지 지으면서 말이다. 하하.
나는 나도 모르게 짝퉁을 산적도 있다. 왜냐하면 명품에는 관심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으니 명품 정보가 없고, 어쩌다가 들어 가 본 인사동 ‘보세’가게에서 자기네가 만들었다는 가방을 사들고 나왔는데, 몇 년이 지난 후에서야 그게 짝퉁인 줄 알게 되는 것이다. 루이비통처럼 대중적으로 유명한 브랜드는 아니었기에 그런 일이... 그녀에게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하.
나는 브랜드보다 제품이 더 마음에 와 닿아야 구매를 한다. 그만큼 나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를 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금융전문가가 패션에 대해 전혀 모를 수 있듯이 말이다. 우리는 모두 자기 전문분야 외에는 그 수준이 중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학 졸업 즈음에 교수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너희는 사회에 나가면 중졸 수준의 디자인을 해야 한다.”
당시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왜 비싼 돈 주고 대학에서 배운 최고의 지식과 테크닉을 중졸 수준으로 낮추라는 거지? 우리가 최고 수준으로 이끌어 줘야 하는 거 아냐?’
사회생활을 하며 나는 바로 꼬리를 내렸다. 그게 그렇게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었다. 클라이언트 맘에 안 들면 절대로 돈이 안 나온다. 최고의 디자인이고 뭐고 다 쓸데없다. 하하
아주 오래 전, 파스퇴르 우유 광고는 너무 촌스러워서 전문가들에게 다소 비판의 대상이었지만 소비자들에게는 강렬하게 어필됐다. 나는 전자제품에 대해서는 하나도 모른다. 특히 자동차에 대해서는 참 많이도 바가지를 썼다.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말하면 다 그런 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월은 점점 좋아져서 정보는 넘쳐나고 더욱 치밀해졌다. 그렇지만 여전히 자신이 모르는 분야에서는 우리 모두 중졸 수준임을 인정해야 한다.
사람들이 나와 다르게 그림을 감상한다는 것을 알게 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그들은 ‘아는 만큼 보인다.’는 명제를 신념처럼 믿고 열심히 정보를 수집한다. 그런데 ‘딱 아는 만큼만 보인다’라고 말하면 당신은 어떤가? 그림에서 내가 아는 것만 확인하고 그걸로 만족하고 가 버린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가?
이런 이유로 나의 [작가 노트]는 작품을 실컷 감상한 후에 더 궁금하면 보여주고 싶은 작가의 설명서이다. [우주의 결]을 이아(AI)에게 보여 줬을 때, 이아는 처음에 나무에 걸려 있는 ‘녹아내리는 시계’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것은 나의 계산된 장치였는데, 정말 나보다 더 사람처럼 구는 AI가 제대로 피드백을 준 것이다. 나는 그림을 ‘휙’ 봤을 때는 발견하지 못하고 다시 이리 저리 뜯어 봤을 때 발견되기를 바랐다.
이제 나의 [작가 노트]를 먼저 읽은 관객들은 그 의외의 발견, 우연에 대한 반응과 그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지 못한다. 왜 나무가 파란색인지 생각해 볼 이유도 없다. 왜 텐트에 불이 켜져 있는지도. 코끼리는 대체 왜 그려 놓았는지.
하지만 대신 나의 [작가 노트]는 그림을 알고 싶어 하지만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안내역할을 한다. 한 때는 그림을 그려 놓고 관객들이 작가의 의도를 정확히 알아봐 주기를 바랐던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모든 사람들의 경험이 다 다른데, ‘코끼리’를 그려 넣은 이유가 평생에 걸친 코끼리들의 ‘애도문화’때문임을 대체 누가 알겠는가. 코끼리 전문가가 와도 작가가 왜 코끼리를 그려 넣었는지 모른다.
내가 브런치에 특별히 [작가노트]를 공개한 이유는 여기 계신 작가들께서 내 작품을 보러 와 주시기를 기대하기 때문은 결코 아니다. 물론 전시일정과 장소 정보는 올렸지만 그것은 허상이 아니라는 장치일 뿐이고, 일상과 직장 외에 글 쓰는 일이 전부인 여기 작가들께서 남의 그림까지 관심을 가지고 전시장을 찾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본다. 사실 화가들도 자신의 그림에 열중하느라 다른 화가의 전시를 많이 못 간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만 집중하기에도 시간은 너무 아깝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그저 [작업노트]라는 글을 올린 것이다. [우주의 결]에 대한 생각도 공유하고 싶었다. 그런데 정작 우주의 ‘결’에 대한 이야기는 ai가 더 제대로 언급한 것 같다. ai의 평론을 보고서야 ‘아,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결’에 대해서는 하나도 언급을 안 했네‘ 했다. 하하.
물론 여기에서 작품공개도 하지 않는다.
많은 관심으로 읽어 주신 분 들게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