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창 모임을 더 자주 하고 싶은 이유

중년이 되면 동창끼리 더 자주 만나고 싶은 이유가 있다.

by 오로라


고등학교 친구였던 L이 전화를 했다.


“내일 네가 사는 동네로 강의하러 가는데 시간 되면 잠깐 얼굴 볼래.”


다음 날 별다른 일이 없어 그러자고 했다.


친구는 영어영문학을 전공했으나 지금은 청소년과 성인 대상 상담자로 일하고 있었다. 그날도 청소년 대상 인성 교육을 하고 왔다며 직업이 바뀐 상황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그랬구나. 넌 왜 나보다 훨씬 오랫동안 상담해 놓고 안 하려고 해?"


"뭐, 여러 가지 이유로 쉬고 있지. 당분간은 그러고 싶어서."


속내를 다 이야기하진 않았지만 친구는 궁금했던 모양이다.




아마도 3년 동안 같은 반이었던 것 같다.

결혼하고 아이들이 어릴 때까진 연락하고 만났으나 서로 사는 동네가 달라지면서 점차 연락이 줄었다. 그러다가 10여 년 만남이 끊어졌다. 최근 다른 친구의 연락으로 만남이 이어졌다.


L은 친한 한 두 명의 고교 동창과 지속해서 만나고 있었다. J를 통해 다른 반이었던 친구 몇 명이 더 연결되면서 동창 모임 하나가 만들어졌고 지금은 매월 회비까지 내고 만난다고 했다.


쉰 살이 넘으면서 결혼한 친구들은 대부분 성인 자녀를 두었다. 서로 연락하고 친했던 친구들끼리만 모였다가 간혹 작은 동창회처럼 확대되기도 한다.


나에게도 그 모임에 나오길 바라는 눈치를 보인 친구가 있었으나 거절했다. 잘 모르는 친구도 섞여 있어 굳이 그렇게까지 모임을 확대하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고등학교 친하게 지냈던 E와 J는 가끔씩 함께 보자고 했다.




L은 고등학교 때 내 모습을 기억하며 이야기를 했다. 그녀가 기억하는 나는 아기자기한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지난번 만남에서 J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덧붙여 나에 관해 이런 말도 했다.


“너한테 남자 친구에 대해 말하면 상담 같은 거 잘해주고 그랬잖아.”

“내가 그랬나?”


나도 모르는 내 모습을 두 친구로부터 들으니 그런 특성이 있었던 것도 같다.


일하면서 종종 나는 왜 상담자의 길로 들어선 것일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내 기질이나 성격이 그 무렵부터 상담직을 할만하다고 느꼈거나 심리상담 분야에 대한 관심이 생겨서 자연스럽게 흘러왔는지도 모르겠다.


암튼 지난날 서로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하며 우린 관계를 다시 쌓기 시작했다. 힘들었던 결혼 생활과 아이들 이야기를 나누며.


L은 더 자주 만나면 좋겠다며 차 한 잔을 마시고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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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이후 동창회 같은 모임을 더 자주 하고 싶은 이유가 있다. 살펴보자.

첫째, 과거의 긍정적 기억을 통한 회복탄력성


친구가 전해준 것처럼 학창 시절 나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니 “그때도 난 정말 그랬구나”라고 떠올렸다. L은 내 기억엔 공부를 꽤나 잘했고, 누구에게나 편하게 대한 것도 같다. 우린 서로에 대해 좋은 이미지로 기억하고 있었다. 허물없이 지난날 경험한 아픔도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꺼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이처럼 서로에 대한 긍정적 기억은 현재의 어려움을 버틸 수 있는 힘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다시 건강해지는 심리적 회복탄력성을 키워준다. 즉, 자신의 원래 모습과 가치를 친구를 통해서 확인하는 것이다.



둘째, 사회적 연결감의 욕구 충족


자녀들이 독립해 모두 떠난 중년기엔 집도 마음도 텅 빈 것 같아 외로움을 더 자주 느낀다. 부부끼리 계속 함께 사는 예도 있지만, 사별이나 이혼으로 혼자 살아가기도 한다. 그러다 동창 모임에 나가서 옛 친구들과 웃고 이야기를 나누면 “이제 혼자가 아니구나”라는 생각으로 연결감과 소속감을 회복한다. 이는 우울과 고립감을 완화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셋째, 죽음과 유한성의 자각으로 의미 있는 관계 추구


중년기 정도가 되면 부모들은 보통 70~90세가 많다. 그래서 차츰 부모를 포함하여 형제자매, 배우자와 같은 가까운 사람의 부고를 접한다. 그런 경험을 하고 나면 “나도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다. 좋은 사람들을 이렇게 살다 간 언제 다시 볼지 모른다”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친밀했던 친구들이 생각나 모임을 더 챙기고 싶어진다. 이는 단순한 만남이 아니라 인생의 유한성의 의미를 자각하고 더욱 의미 있는 관계를 강화하려는 심리적 선택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중년 이후 동창 모임에 더 자주 가고 싶은 이유는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외로움에서 벗어나길 원하며, 긍정적 기억을 통해 새로운 힘을 얻고 여생을 의미 있게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즉,

삶의 의미를 재해석하여 의미 있는 좋은 친구 관계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은 욕구가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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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한 가지 주의할 사항이 있다.


동창 모임에 가면 가능한 배우자나 자식 자랑은 하지 말자. 가장 마음대로 되지 않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같은 나이에 비슷한 시절을 살았지만, 결혼 이후 혹은 중년기까지 살아온 환경은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새롭게 형성한 가족의 모습은 각기 다를 수밖에 없다.


사회적 지위와 소득 수준, 가족 환경 등이 학창 시절과 차이 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선 이것을 성공과 실패로 보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는 자칫 갈등을 불러온다.


누구나 좋은 배우자와 잘 키운 자식이 곁에 있으면 좋다. 하지만 뜻대로 안 되는 예도 많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배우자나 자식으로 속 끓이는 친구가 있을 수 있다. 조용히 듣고 있지만 입을 열기 두렵다. 어차피 말하지 않아도 계속 만나다 보면 친구 가족의 삶까지 알게 된다. 굳이 자랑하지 않아도 말속에서 충분히 파악이 된다는 소리다.


그러니 굳이 먼저 자랑해서 친했던 친구 마음을 상하게 하고 관계마저 소원하게 만들지 않기를 바란다. 질투를 느끼면 괜히 열등감과 자존심이 상해 모임에 나오기 싫어질 수 있다.

그냥 평범하고 어릴 때 순수했던 시절의 친구 관계로 만남을 이어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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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L과 나는 묻어 두었던 둘만의 추억을 떠올리며 서로의 이야기만 주로 나누다 헤어졌다.


친구는 이후에도 몇 번 이쪽으로 강의를 더 올 예정이라고 했다. 그래서 학교 다닐 때처럼 다음번엔 같이 밥을 먹기로 했다. 곧 그 약속을 만들 날이 올 것이다. 살짝 설레는 이유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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