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의 아픔을 이겨내며 살아가는 중년기 친구들의 만남은 즐겁다
7월에 큰딸을 결혼시킨 친구가 고맙다며 저녁식사를 대접했다. 모처럼 친한 고등학교 친구들이 다시 모였다.
한 동안 모이지 못했다가 최근 다시 만나면서 반가움은 배가 되고 있었다.
부모 부양과 자식 돌봄으로 남편과 더불어 돈을 벌거나 공부를 다시 하는 등 저마다 바쁜 일상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다섯 명이다. 키가 큰 순서대로 매긴 번호로 자리를 정한 터라 우리 다섯은 교실의 한 분단 맨 뒷자리 주변에 있다 친구가 되었다. 나와 J, K와 S는 짝이었다. S 옆자리 B까지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 어울리며 친해지다 지금까지 관계가 이어졌다.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던 시절이라 점심시간이면 나와 J가 뒤돌아 앉으면 겸상이 되었다. 자연스럽게 네 명이 둘러 앉고 B까지 모이면 다섯 명이 한 테이블에서 먹을 수 있었다.
토요일 오후, 그 시절처럼 우리 다섯은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서로를 마주했다.
혼주였던 친구가 다섯이 충분히 먹을 수 있는 메뉴를 주문했다. 긴 이야기를 나눠도 좋을 만큼 음식은 넉넉했고, 삶의 이야기는 지나 온 시간만큼 풍성했다.
혼주였던 친구가 사위를 맞이하는 과정에서 경험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어 10년 정도 가족 모두 이런 저런 이유로 병마와 싸웠던 B의 이야기까지 함께 웃고 울었다.
"어머나, 정말?"
청자가 된 친구의 입에선 듣는 내내 자연스럽게 놀라움이 나오는 주제까지 있었다.
화자가 된 친구 역시 순서가 되면 지난한 시절에 겪은 자신의 삶의 흔적을 이야기로 풀어냈다.
"난 너희들이 있어서 너무 고마워. 사실 손님이 없을까봐 속으로 걱정했거든."
혼주였던 K는 다섯 명 중 가장 먼저 결혼했고, 직장 말고 별다른 사회생활을 하지 않았고, 부모님도 모두 돌아가신 상태였다. 친정 쪽으론 친척도 많지 않아 걱정했다는 친구는 당연히 갔던 우리 넷의 축하에 대해 남다른 감사의 메시지를 전했다.
어린 시절부터 어떻게 살아왔는지 지난 시간동안 익히 들었던 터라 친구들은 저마다 K를 또다시 응원했다.
"그날 **(신부였던 K의 큰딸)이가 너무 예쁘더라."
"맞아. 사위가 키도 크고 인상도 좋던데."
"손님이 많던데. 걱정했다고?"
"**(K의 남편)씨가 웃고 다닐 만 하네."
결혼식을 다시 기억하며 던진 친구들의 말을 받아 K는 그동안 힘들었던 이야기를 다시 전해 나머지 네 사람을 뭉클하게 했다. 친정엄마 없이 컸던 친구가 큰딸을 시집보내면서 느꼈을 마음이 애잔해 보였다.
"너도 잘 키우고, **이도 잘 컸네. 내 친구 정말 열심히 살았네. 아니 잘 살아냈다."
친구를 향해 진심으로 마음의 소리를 내비췄다. 그런 내게 친구는 한 번 더 눈물이 핑 돌게 했다.
"정말 고마워. 난 너희들이 있어서 정말 감사해."
그렇게 K의 이야기꽃을 피우다 B가 전날 퇴원하지 못했다면 참석할 수 없었을 이야기로 화제가 전환되었다. 4일 전에 B는 입원하고 골수 검사를 했다. 이틀 전까지 퇴원 여부를 알 수 없다며 자신이 못 나오더라도 모임은 하라는 메시지를 남겼던 터라 모두 걱정했었다. 다행히 결과를 기다리기로 하고 퇴원을 해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유난히 입퇴원을 많이 한 친구였다.
조직 검사까지 하다니 말만 들어도 상황이 이해되어 위로하지 않을 수 없었다. B의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중년기 여성들 답게 자신들이 앓고 있는 질병과 복용약에 대한 이야기로 흘렀다. 노화로 생긴 시력 변화로 불편한 근황까지 펼치면서.
B가 이야기 중 가방을 열었다.
"그래서 난 안경을 따로 써."
"어머, 나도. 두 개야. 운전할 땐 이건 안 맞아서."
"나도 요즘 안경 쓴다."
우리 중 시력이 가장 좋아 지금껏 안경을 착용한 적 없던 S의 말까지.
"어머나, 정말?"
그렇게 눈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 동안 하다가 하나 둘씩 자신의 안경을 꺼냈다. 가방에서 필요할 때만 쓴다는 안경까지 다 모았다. 친구 숫자 보다 많은 안경을 테이블 위에 모았다. 그 모습에 친구들은 일제히 해말간 웃음을 지웠다.
"야, 이거 너무 재밌다."
아주 사소한 발견에 다섯 명은 열 일곱 살 때처럼 깔깔거리며 웃어 댔다.
각자 자주 쓰는 안경 한 개씩만 지목해 모아 보자며 또 한 번 웃었다. 나도 운전용 안경을 뒤로 하고 책 볼 때 쓰는 안경을 밀어 두었다.
"우리 모두 그럴 나이네."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메뉴판을 볼 때나 휴대전화기에서 정보 검색을 하며 안경을 올렸다 내리거나 또다른 안경을 썼다.
친구들의 안경을 보며 나이듦을 새삼 느낀 시간이었다.
청소년기에 쓰는 안경과 달리 중년기 안경은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세월의 무게만큼 안경도 무겁다.
인생의 방향이 한 가지가 아닌 것처럼 우리들의 안경도 하나가 아니었다.
노화의 속도에 맞춰 바뀌는 안경처럼 중년기 내 친구들은 서로를 향한 이해의 마음이 서서히 바뀌고 있었다.
이렇게 나이 들어가면서 발견한 새로움은 행운권 추첨에 당첨된 것처럼 기분 좋다.
각자의 안경 너머로 본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도수가 올라가듯 세상을 향한 이해의 깊이도 한층 올라갔을까?
친구가 15%할인 적용 카드를 찾아 기분 좋게 계산을 하는 모습에 나머지 넷은 또 한 번 감사와 웃음으로 즐거움을 표했다.
"너무 많이 나온 거 아냐?"
"다음엔 N분의 일로 하자."
계산을 마치고 나온 친구를 향해 두 명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아니야. 많이 안 나왔어. "
괜찮다는 친구를 향해 나머지 친구도 말을 이었다.
"그래, 너무 맛있게 잘 먹었다."
"언제 이런 곳에 와 봤는지 모르겠네."
K는 에스컬레이트로 향하며 말을 받았다.
"덕분에 나도 너무 즐거운 시간이었어."
친구처럼 나 역시 즐거운 시간이었다.
돌아오는 길, 인생 2막을 쓰는 친구들의 모습이 다시 떠올랐다.
간혹, 배우자 보다 친구가 더 편할 때가 있다는 또 다른 친구의 말도 생각났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느껴졌기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몸과 마음의 아픔까지 이겨 내며 살아가고 있는 중년기 친구를 만날 수 있는 이 시간이 다시 좋아졌다.
여기 저기 근육통을 달고 살아가며, 정기 진료와 복용약도 늘어나겠지만 조금은 더 즐거운 삶을 살고 싶어 졌다.
책을 보거나 운전할 때 안경을 바꿔 쓰는 불편이 생겼고, 자식들이 하는 말을 못 알아 들어 오해를 낳고 핀잔도 듣을 때가 있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나도 그렇다고 말해주는 친구 덕분에 조금 더 힘이 생겼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찾은 편안함을 전해 주는 친구 때문에 하루 정도는 마음 편히 잠들 것 같다.
많이 웃고 헤어진 탓인지 집에 다다를 무렵, 다시 배가 고파졌다.
웃음이 약이라더니 이미 소화가 다 된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