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과 사이비종교에 빠지지 않으려면
성경은 기독교인은 물론 일반인도 어떤 책인지 대부분 알고 있다. 지식으로라도 내용을 어느 정도는 이해한다. 그러나 정확한 이해가 없는 사람을 대상으로 이단이나 사이비 종교가 현혹하여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예가 있다. 무엇이든 잘 모르면 진짜와 구별하기 어렵다. 성경의 내용은 이 시대 사람들의 생활과 다르고, 비유적인 부분이 많아 해석이 필요하다. 성경의 본질적 이해가 필요한 이유다. 왜냐하면, 개인적 고통이나 어수선한 사회적 상황을 틈타 비기독교적 활동이나 신흥종교를 창시하여 미혹하기 때문이다.
성경의 내용을 왜곡, 편취하여 인간의 욕망과 결부시켜 사익을 추구하는 개인과 집단이 여전히 존재한다. 사람을 현혹하여 신도로 삼고 자기 권위를 신처럼 세워 이득을 추구하는 구조다. 따라서 인간의 심리적 본성과 성경의 본질을 잘 이해하여 이단이나 사이비 종교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 성경에서도 이 부분에 대한 주의를 명확히 제시하고 있다.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히브리서 5장 13절~14절)
젖먹이 아이들은 고형식을 먹지 못한다. 성인처럼 치아와 소화기관이 아직 발달하지 않아서다. 보호자는 자녀의 성장을 돕기 위해 발달 단계와 심리특성을 알고 있어야 한다. 이처럼 건강한 신앙인이 되거나 이단을 분별하기 위해선 성경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사람들은 가품과 분명한 차이가 있는 명품을 좋아한다. 하지만 명품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다면 쉽게 구별하지 못한다. 가품이 끝없이 유통되는 이유 중 하나는 명품 소유에 대한 바람일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명품을 갖기 어렵더라도 소유하고 싶은 개인의 욕망과 업자들의 이익이 맞물려서 존재한다. 마치 종교의 긍정적인 역할과 가능을 이단과 사이비가 차용하는 것처럼 말이다. 기독교 계열 이단이 보다 많은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단이 내세우는 거짓 교리와 차이를 분별하여 멀리하자. 목사나 선지자인 양 행세하고 교회처럼 꾸며도 가짜는 거짓일 뿐이다. 이런 거짓 선지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않는다고 성경은 분명히 전하고 있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들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요한일서 4장 1절)
정통 기독교에선 성경 이외에 다른 교리를 삽입하지 않는다. 주석은 예외이다. 주석은 성경 본문을 설명하고 해석하는 글이다. 수천 년 전 히브리어·아람어·그리스어로 쓰인 성경은 문화·역사·상황이 오늘날과 매우 달라 이해하는데 한계가 있다. 그래서 주석이나 쉬운 문체로 바꾸어 이해를 돕는다. 그렇다고 본질을 바꾼 것은 아니다. 단순 번역만으로 깊은 뜻을 충분히 알기 어려워 활용할 뿐이다. 하지만 이단의 경우, 편의에 따라 성경을 왜곡 또는 변질시키는 예가 많다. 예수 십자가 사랑 이외의 것으로 구원을 전하면 대부분 이단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3장 16절)
최근엔 이단과 더불어 사회적 논란이 된 기성 기독교회도 문제점을 안고 있다. 대형 교회 목사나 신도라도 부패할 수 있다. 사익을 추구하고 기득권으로 군림하며,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비기독교적인 행태를 보이면 이 역시 비판받아야 한다. 관련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자.
첫째, 성경 내용의 일부나 전체를 다르게 해석하는 사람이나 집단, 교회는 경계해야 한다. 예를 들어, 선민사상을 내세워 특정 성경 구절만 대입하여 교리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발췌나 왜곡된 내용으로 새로운 교리를 만들어 교육하거나 성경과 다른 차이를 강조한다. 창시한 내용이 우월한 것처럼 왜곡, 해석하고 세뇌한다. 사적인 이득을 숨기는 예가 많다. 신도에게만 특별한 자격이나 영적 계급을 부여하기, 주요 임무자나 충성자에겐 엘리트 소속감을 부여하는 등 특권층을 형성한다. 성경에서의 순종을 단순화시키고 강요된 노력이나 노동과 같은 활동을 통해 상승의 기회를 제공하려 한다. 이를 위해 먼저 포섭한 명문대생이나 대기업 회사원,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부를 축적한 사람을 이용해 의심을 줄이고 부추길 가능성이 크다. 소속감을 갖고 활동하면 자신도 비슷한 위치에 오르거나 노력 이상의 보상을 얻게 되어 마치 은혜로운 사람이 될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이는 기존 종교에서 은총 입은 사람이 영적 우월성을 지닌 것처럼 강조한 때문이기도 하다.
다른 한편으로 개인의 욕망을 극대화시키려는 의도를 숨긴다. 누구나 갖고자 하는 높은 자존감과 자신감의 욕구를 이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난한 자, 궁핍한 자, 낮은 자, 애통하는 자, 미련한 자들을 택하여 일으키고 강한 자와 높은 자를 낮추셨다. 기독교에선 모든 사람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은 평등하다. 그 속에서 평안을 얻는다. 당연히 범사에 감사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구제와 겸손의 자세를 갖추라고 가르친다.
“가난한 자를 먼지 더미에서 일으키시며 궁핍한 자를 거름 더미에서 들어 세워” (시편 113편 7절)
“낮은 자를 높이 드시며 애곡하는 자를 일으키사 구원에 이르게 하시느니라” (욥기 5장 11절)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야고보서 4장 9절~10절)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고린도전서 1장 27절~28절)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 은혜를 주시느리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베드로전서 5장 5절~6절)
둘째, 특정 인물을 재림 예수로 지칭하며 교주로 삼거나 충성을 은혜로 포장한다. 창세기의 인간 타락 장면을 재해석하고, 자신에게 특별한 계시 혹은 예언의 능력이 있다고 강조하기 쉽다. 선악을 구별하는 에덴 동산 이야기와 정죄함을 연관시켜 구원자인 것처럼 교묘하게 속이고, 스스로 부여한 영적 권위를 내세운다. 만약, 의심하면 교만한 사람으로 치부하고 회개를 강조하며 죄인으로 낙인한다. 이는 에덴 동산에서 사람이 추방당한 사건을 들어 처벌적 개념으로 행위를 판단하여 공포와 불안을 조장하고 자신을 우상화하려는 작업이다.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마태복음 24장 11절)
종종 사사로운 계시를 앞세워 우월한 위치에 있는 것처럼 행세하고 절대복종을 강요한다. 계시적 능력에 기반한 신앙심을 부추겨 거짓 선지자 혹은 재림 예수처럼 우상화할 가능성이 크다. 성경에 따르면, 예수 재림은 미래에 일어날 분명한 사건이다.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요한복음 14장 3절)
하지만 이 땅의 누구도 그 시기를 알 수 없다. 따라서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 혹은 집단은 스스로 예수가 아니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속이는 것은 미혹을 통한 사익 추구 때문이다. 심판과 구원론의 왜곡이 가장 심하다. 특히, 직접적으로 자신을 예수라거나 신격화하는 경우라면 더 경계해야 한다.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마태복음 24장 36절)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사도행전 1장 7절)
셋째, 상식적이지 않거나 불공정 또는 위해한 일조차 신앙생활로 포장한다. 예를 들면, 간음이나 성적 타락 행위를 구원 또는 은혜라거나 전재산을 천국에 쌓으라며 헌금을 강조한다. 특정 사업을 지정하거나 활동에 참여시키고 수익금은 교주 혹은 집단이나 재단에 귀속하는 경우다. 이는 사기나 갈취행위로 봐야 한다. 예수의 십자가 구원과 은혜는 행위가 아닌 믿음과 값없음이라는 성경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따라서 봉사나 개인적 성취, 지식 습득처럼 제한된 행위나 활동을 단계로 구성하여 높아질수록 구원에 이르는 것처럼 하면 이단일 가능성이 크다. 이를 위해 신앙공동체 생활만을 강조하고 타인과의 만남이나 객관적 검증을 받지 못하는 구조로 만든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마태복음 7장 15절)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사도행전 4장 12절)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은 우주만물의 창조자로 상식 밖의 요구를 하지 않는다. 절대적이고 초월적 존재이며 만물의 근원인 창조주이기 때문이다.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1장 8절)
구약을 살펴보면, 오히려 우상 숭배로 인한 하나님의 진노가 어떤 결과에 이르렀는지 뚜렷하다. 십계명의 첫 번째 역시 이 부분을 강조하고 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출애굽기 20장 3절~5절)
스스로를 신격화하고 재림 예수라고 한 자들이 한 치 앞의 자기 일은 모르는 경우를 본다. 병들거나 사익을 추구하다 수사 대상이 되기도 하고, 종교 시설은 폐허가 되기도 한다. 심지어 죽음에 이르는 예까지 있다. 이는 평범한 사람에게도 미치지 못한 우상 숭배의 죄인으로 스스로 인간인 것을 증명하는 것에 불과하다.
“저희 우상은 은과 금이요.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이라.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코가 있어도 냄새 맡지 못하며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이 있어도 작은 소리조차 내지 못하느니라. 우상들을 만드는 자들과 그것을 의지하는 자들이 다 그와 같으리로다” (시편 115편 4절~8절)
여호와는 길이고, 진리이며 생명이신 전능자이다. 따라서 건강한 기독교 사상은 개인에게 부당한 신체적, 정신적, 심리적 요구가 없다. 만약, 이런 것이 있다면 거짓이니 걸러야 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장 6절)
성경의 본질을 잘 이해하면 현혹되지 않는다. 본질에 입각한 성경 이야기를 보다 쉽게 이해하도록 앞으로 관련 내용을 더 많이 다루고자 한다. 그 이유는 몇 년 전, JMS에서 탈퇴한 신도들의 증언을 토대로 만든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의 내용이 생각보다 충격적 이어서다. 한 사람의 인생뿐 아니라 사회적 악으로 수많은 피해자를 남기고도 여전히 반성하지 않는 이단의 전형이기 때문이다.
누구도 미혹되지 말아야 한다. 미혹의 사전적 정의를 보면, '무엇에 홀려 정신을 차리지 못함'이다. 즉,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이단은 사실 확인이나 올바른 판단의 시간을 제공하지 않는다. 그럴수록 멀리 떨어져 바라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숲을 보려면 반드시 먼 곳에 서야 하는 것처럼.
기독교의 핵심 교리를 정확하게 이해하여 사랑의 본체인 하나님이 피조물 한 사람 한 사람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는지 알 필요가 있다. 또한 종교 유무와 상관없이 인간의 본성과 성경의 본질을 이해하면 유익한 삶이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요한일서 4장 16절)
다시 정리하자면, 집단의 폐쇄성이나 교주 중심의 사유화된 공간에서 생활하기, 재정적 손해나 갈취 행위가 나타나면 즉시 이단이라고 판단하자. 평범한 사람이라도 약한 고리가 되는 심리적 불안이 높을 땐 현혹되기 쉽다. 위로나 중보기도, 치유집회, 은사를 가진 자와의 만남을 미끼로 심리적 안정을 얻을 수 있다고 유혹한다. 무기력하거나 무료한 사람일수록 더 쉽게 빠질 수 있다. 회복하고자 하는 개인의 욕구를 이용해 외로움, 불안, 상실, 낮은 자존감에서 벗어나게 해 주겠다고 다가올지도 모른다. 주로 심리적, 정신적 취약성을 주제로 접근한다. 학업이나 직장 생활, 취미활동 혹은 대인관계를 위협하고 가족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선택을 조장하면 이단일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분별력을 가지고 항상 깨워서 기도하라고 가르치는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18절)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에베소서 6장 18절)
하나님이 자기의 형상을 닮은 사람을 창조한 이유가 분명히 있다. 당신과 함께 낙원에 거하고자 함이다. 좋은 것을 같이 나누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은 그로부터 시작되었다. 낙원은 단순한 장소의 개념이 아니다. 하나님과 함께 영생의 공동체에서 누리는 평안한 삶을 의미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23장 43절)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사랑에 기반한 성경의 본질적 이야기에 귀 기울여 이단이나 사이비 종교에 빠지지 말고 평안한 삶을 영원히 누리며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