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창세기는 창조의 원리

우주 만물의 질서 체계를 세우다

by 오로라

시대를 불문하고 성경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란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가장 많은 언어로 출판되었고, 독자층이 다양한 유일한 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독자가 줄어들지 않는 것을 보면 흥미롭고, 교훈적인 부분이 많아 보인다. 그래서 문학, 영화, 콘텐츠의 모티브로 지금까지 자주 활용된다. 일부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건국역사나 기독교 교리를 담은 책 정도로 이해한다. 연관성이 높지만 그보단 훨씬 포괄적인 내용을 다룬다.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주는 고서 중 하나인 것은 분명하다.


성경은 구약과 신약 총 66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구약은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 총 39권으로 이루어졌고, 신약은 마태복음에서 요한계시록까지 총 27권이다. 방대한 내용이지만 하나님의 감동으로 사람에 의해 쓰였다. 저자를 알 수 있는 것과 미상인 것이 존재한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디모데후서 3장 16절~17절)



구약은 성부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와 인류 문명의 형성 과정이 잘 나타나 있다. 창조주가 직접 통치하던 세상에 살았던 인류의 기원, 민족으로 성장한 이스라엘의 역사가 중심이다. 내용 구성은 하나님의 천지창조와 이후 인간의 불순종으로 시작된 죄와 인류 타락의 역사,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의 약속이 포함되어 있다. 신약은 구약과 마치 쌍으로 내용의 관련성이 높다. 성자 예수의 족보를 시작으로 출생, 사역, 고난, 죽음, 부활, 재림 약속에 관한 것이다. 이처럼 성경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과 피조물인 사람과의 관계를 총 망라한 것이다.


성경에 대한 지식이 높을수록 서양사를 이해하기 쉽다. 역사 속에 예수의 흔적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은 시간을 나누는 연도 표기법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 기준이다. 즉, BC는 라틴어 'Before Christ'의 약자로 '그리스도 이전'을 말한다. 예를 들면, BC 10년이라고 하면 '예수 탄생 10년 전의 해'란 의미다. AD는 라틴어 'Anno Donimi'의 약자로 '우리 주님의 해'로 '예수 탄생 이후의 해'란 뜻이다. 그래서 AD 1년은 예수 탄생 직후의 해를 말한다. 유럽에 여전히 존재하는 성당 건축물과 고서 속 이야기는 예수를 포함한 성경 속 인물과 연관된 자료인 예가 많다. 그래서 다양한 인간의 심리와 행동 특성을 이해할 때 성경 속 인물을 활용할 수도 있다. 성경의 유익함을 필요에 따라 찾아보는 것도 필요하다. 그보다 먼저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가장 먼저 서술된 창조의 원리에 대해 알아보자.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히브리서 11장 3절)


창세기의 저자는 출애굽을 이끈 모세다. 우주 만물에 대한 창조부터 이야기는 펼쳐진다. 매우 서사적이어서 구약 중 가장 흥미를 느끼는 이들도 있다.


순서에 따른 창조의 개요를 살펴보자.


이에 앞서, 하나님의 존재 인식이 필요하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오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이시니 (골로새서 1장 15절)


여호와로 부르는 이로 눈에 보이지 않는 스스로 존재하는 형상이다. 창조주이니 당연히 피조물보다 먼저 나셨고, 이후 우주만물을 질서 있게 만든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장 1절)


창세기의 도입은 창조의 세계와 인류 문명의 형성 과정이 잘 드러난다. 당연히 우리가 사는 지구는 애초에 없었다. 하나님이 '빛'을 통해 밝음과 어두움을 나누어 낮과 밤이라고 한 첫째 날 이후 생겼다.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창세기 1장 3절)


창조 둘째 날은 물을 위와 아래로 구분하여 하늘과 땅을 구분하였다. 셋째 날은 앞서 창조한 땅에 풀과 씨 맺는 채소, 열매 맺는 나무에서 각기 다른 종류로 식물이 생겨나게 했다. 넷째 날에는 땅과 구분한 하늘에 수많은 광명체를 두어 징조와 계절, 날과 해를 가늠하게 했다. 은하계의 생성으로 이해하자. 다섯째 날은 하늘과 땅, 바다에 살 수 있는 다양한 생물들이 창조되었다. 하늘에는 새가 나르고, 바다에는 큰 짐승이, 물에서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 종류대로 생겨났다. 지금까지 그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가축과 온갖 들짐승, 생물이라고 부르는 생명체다. 창조 후 하나님은 피조물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명령했다. 그에 따라 모든 피조물은 저마다의 질서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창세기 1장 30절)



여섯째 날, 하나님은 자기 형상을 닮은 사람을 흙으로 창조한 후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살아 숨 쉬게 하였다. 최초의 사람이 생긴 것이다. 모든 창조사역을 마치고 일곱째 날은 안식했다. 그날을 축복하고 거룩하게 여겼다. 우리가 주일로 지키는 날이 생긴 것이다.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안식하셨음이라(창세기 2장 3절)



창세기는 모든 것의 시작을 다루고 있다. 즉, 하나님의 존재를 통해 천지만물이 창조되는 전 과정, 인류의 출현과 문명의 출발점을 담고 있다. 하나님이 자기의 형상을 닮게 만든 피조물인 아담과 이브가 남자와 여자로 구분되어 가정을 이루어 살게 된 과정도 소개된다.


창조 직후 피조물에 대해 모두 보기에 좋았다고 평가한 하나님이 단 하나, 혼자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예외적으로 바라보았다. 즉, 혼자 사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창 2:18). 그래서 당신을 닮은 첫 번째 사람을 도울 짝을 만들었다. 깊이 잠들게 한 후 그 사람의 갈빗대 하나를 뽑아 또 하나의 사람을 만드시고 직접 첫 번째 사람에게 이끌어 소개했다. 최초의 중매자는 하나님이었다. 첫 번째 사람 아담은 여자 이브를 보고 반했다. 세기에 남을 프러포즈를 하고 부부로 살았다. 부모를 떠나 둘이 한 몸이 되라는 창조주의 질서에 따라 남자와 여자는 지금까지 연합하여 부부로 가정을 세워 살고 있다. 처음으로 연인이 된 부부는 창조주와 함께 에덴동산에 거하며 살았다. 둘은 벌거벗었으나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죄가 그들에게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창조는 만물에 질서체계를 부여한 하나님의 사역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질서란, 앞과 뒤, 위와 아래처럼 모든 영역에 혼란 없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게 하는 사물의 순서나 차례를 의미한다. 하나님의 창조는 순서대로 이루어졌다. 생성된 차례를 보면 지극히 자연스럽다. 즉, 질서가 있다. 나중에 창조된 것은 앞선 것들을 필요로 한다. 그런 관점을 고려하면, 사람을 위해 하나님은 필요한 모든 우주만물을 질서 있게 만들었다. 미리 필요를 아시고 창조한 것이다. 사람은 시작부터 하나님의 혜택을 누리며 살게 되었다. 결국, 창조 사역부터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섭리가 드러났으니 시작과 끝이 은혜라고 밖에 할 수 없다는 것이 기독교의 핵심 교리가 되는 것이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 (요한계시록 22장 13절)



질서의 관점으로 창조의 원리를 더 깊이 생각해 보자.


모든 피조물은 창조주가 만들어 놓은 질서에 따라 움직인다. 이는 배타적이지 않고 상호 보완적이며 합력하는 구조다. 즉, 공존의 체계를 갖추고 있다. 무질서가 전혀 없는 아름다움으로 각기 존재한다.


우주에 있는 해와 달, 별, 행성의 운행 원리를 사람이 알지 못하더라도 그들은 정해진 질서에 따라 예나 지금이나 활동한다. 사람들은 예부터 변함없이 그것들을 이용하며 살았다. 동식물도 마찬가지다. 계절에 따라 피고 지는 식물은 물론 생육과 번성을 반복하는 동물의 세계 역시 신비롭다. 동식물은 서로의 먹이체계를 이루며 질서 있게 공존한다. 생명 있는 모든 피조물들은 창조주가 만들어 놓은 질서대로 순환하며 살아간다.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은 미생물부터 도달하기 어려운 우주에 이르기까지 창조주의 피조물들은 존재한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은 창조주처럼 많은 것을 만들어낸다. 지금은 인공위성을 쏘아 우주의 공간을 탐색한다 한다. 그런 시대라고 해도 창조의 원리를 모두 헤아리기 어렵다. 이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경계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선악을 구별하고 심판하는 일이 창조주 하나님에게 있다고 한 것처럼 말이다.




동식물의 세계를 살펴보면 창조의 섭리를 느낄 수 있다. 먹이사슬의 구조를 떠올려 보면 창조의 질서가 더욱 뚜렷하다. 하단에 있는 것들은 상단으로 올라가는 생명체 보다 개체수가 훨씬 많다. 예를 들면, 수초나 다양한 식물은 그 수가 많아 작은 생물의 먹이가 된다. 작은 생물은 윗 단계의 포식자인 작은 동물에게 먹이로 제공되지만 씨가 마르지 않는다. 작은 동물 역시 그보다 더 큰 동물에게 잡혀 먹힌다. 하지만 모두 사라지지 않는다. 큰 동물 역시 자신보다 훨씬 큰 짐승의 먹이가 되지만 공존한다. 약육강식처럼 보이는 이런 질서체계가 자연 속에서 계속 나타나지만 하나님의 섭리로 진멸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한 여름날 잠자리를 예를 들어보자. 어린 시절, 고추잠자리를 잡으려고 애쓴 적이 있다. 움직임이 빨라 놓치기 일쑤였다. 문방구에 잠자리채를 팔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어린아이의 손에 쉽게 잡힐 잠자리가 아니다. 주로 꽃이나 바위에 앉아 있어 잡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쉽지 않다. 센서가 있는 것처럼 가만히 다가오는 움직임을 바로 포착하고 도착 전 날아가 버린다. 아무리 살금살금 걸어가도 금방 알아챈다. 운 좋게 한 마리의 날개를 잡아챌 때도 있지만 파드득 거리는 통에 놓쳐 버리곤 했다.


잠자리는 빠르고 사냥 솜씨도 대단하다. 하루살이, 파리, 모기처럼 자기보다 작은 곤충들을 하루 800여 마리까지 먹는다. 이렇게 많이 먹어도 파리나 모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잠자리 숫자보다 훨씬 많이 생겨날 뿐 박멸하지 못한다. 알 수 없는 질서의 세계다.


비행 실력도 잠자리는 수준급이다. 전후진은 물론 급회전까지 능숙해서 어지간해선 사람의 손에 잡히지 않는다. 어린 시절 쉽게 잡지 못한 이유였다. 뒤꽁무니라도 낚아채려 해도 잽싸게 날아가는 통해 약이 올랐던 적이 많다. 정지 상태처럼 보여도 급히 날아오르는 기술이 있어 사람의 손엔 쉽게 걸려들지 않는다. 약 시속 98km 정도의 속도라고 한다. 이런 잠자리도 사마귀 앞에선 속수무책이다. 순식간에 잠자리를 낚아채는 사마귀는 더 뛰어난 사냥 실력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사마귀조차 천적인 개구리 앞에서는 꼼짝 못 한다.


사마귀를 통째로 삼키는 개구리는 뱀을 만나면 적수가 안 된다. 조일 듯이 감싸는 뱀 앞에서 사마귀는 한낱 먹잇감에 불과하다. 이처럼 먹이사술은 연쇄적이고 질서 있게 움직인다. 생태계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신비로움이 존재한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 (창세기 1장 29절)


최근 생태계 파괴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나오는 것을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의 무질서나 과욕 때문은 아닌지 말이다. 원인이 우리의 선택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필요한 만큼만 소유하면 생육과 번성을 명한 창조주의 질서체계로 파괴되는 것은 없었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면 알 수 없는 무질서의 문제를 초래하기 마련이다. 무질서로 인한 결과에 대한 두려움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결국, 생태계 파괴는 마지막 피조물인 사람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 창조주가 부여한 자연의 질서가 훼손될수록 먹이사슬의 가장 상단에 있는 우리도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서서히 무너져 가는 생태계 복원에 힘을 써야 하는 이유다.


만물의 질서를 만든 창조주의 섭리대로 살아간다면 다시 질서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기후 온난화와 물 부족 현상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 보자. 공존의 힘으로 무질서의 결과를 미리 예측하여 합력하여 선한 결과로 되돌려야 할 것이다. 창조의 질서가 훼손된 것은 우리의 불순종과 같은 죄와 관련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멸종위기동물에 관한 것도 비슷하다. 관심을 멈추지 않아야 하는 이유를 창조의 질서 관점에서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모든 피조물은 창조주의 섭리 안에 있을 때 전멸하지 않았다. 생사를 주관하는 창조주가 질서체계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오 (고린도전서 14장 33절)


우주 만물의 질서 체계를 만든 역사적 사건이 창조주의 사역이다. 우리 역시 피조물의 한 사람으로 무질서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피조물의 숙명 같은 역할이다. 형상뿐 아니라 주권자인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는 사람을 창조주는 원한다. 절대복종이 아니라 자유 의지를 가진 인격체로서 말이다. 좋은 부모는 자식의 순종을 기대하지만 복종을 강요하진 않는다. 당연히 자식을 인격적으로 대하고 잘 살기를 원한다. 부모의 마음이 이런데 창조주 하나님이 피조물을 향한 마음인들 어떠하겠는가?


무너진 질서를 회복하여 우리는 물론 후대들도 창조의 원리에 따라 생육하고 번성하여 충만한 삶이 되길 기도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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