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으로 시작해, 삶을 이어갈 자리를 찾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왜 한국이 아닌 이곳에서, 나는 삶을 이어가고 있는지.
그 질문의 시작에는 언제나 가난이 있었다.
“왜 그 좋은 나라 한국을 두고, 지구 반대편 멕시코까지 와서 그렇게 고생하며 사느냐”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 질문 앞에서 나는 늘 잠시 멈춘다.
대답은 단순하지만, 설명은 언제나 길어지기 때문이다.
우리 집은 늘 가난했고, 아무리 애써도 삶은 제자리에서 헛도는 쳇바퀴 같았다. 더 빨리, 더 성실히 살아보려 했지만 현실은 좀처럼 바뀌지 않았다.
노력만으로는 넘을 수 없는 벽 앞에서, 나는 점점 숨이 막혀갔다.
코로나라는 시대는 그 답답함에 결정타를 날렸다. 구직의 문은 닫혔고, 편입을 거쳐 스물일곱에 막 졸업한 나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말조차 버겁게 느껴졌다.
불안은 생각보다 먼저 몸으로 찾아왔다. 처음으로 심장이 지나치게 빠르게 뛰었고, 밤이면 잠을 이루지 못했다. 결국 나는 살기 위해 정신과를 찾았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도움을 받는 선택만큼은 미루지 않았다.
그 시절 내 손에 남은 유일한 가능성은 스페인어였다. 지난 3년간 이 악물고 버티며 익힌 언어였다.
화려한 무기는 아니었지만, 나를 다른 곳으로 이동시킬 수 있는 최소한의 힘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나는 멕시코를 바라보게 되었다. 선택이라기보다는, 그곳이라면 조금은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에 가까웠다.
그렇게 도착한 멕시코에서 어느덧 다섯 해를 살고 있다. 지금의 나는 대출이 대부분인 집이지만, 하루의 끝에 편히 쉴 수 있는 ‘우리 집’을 가지고 있다.
곰 같은 남편과 이리 봐도 저리 봐도 너무 이쁜 딸, 세 사람으로 이루어진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다사다난한 날들을 지나 비교적 평온한 일상을 살아간다.
한때는 하루를 버티는 것이 전부였던 내가, 이제는 누군가의 삶을 함께 책임지는 사람이 되었다.
가끔은 지금의 이 삶이, 내가 어릴 적 보았던 부모님의 모습과 겹쳐 보인다. 한창 일자리가 많던 시절, 열심히 일하며 자식을 키우고 집 대출을 갚아나가던 그 시간들처럼.
나 역시 아등바등 살아가고 있지만, 예전처럼 마음이 무너지지는 않는다. 불안 속에서도 살아남았다는 기억이, 지금의 나를 조용히 지탱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멕시코로 떠난 선택은 도망이 아니었다. 더 나은 삶을 향한 도약이라 말하기엔 거창하지 않지만, 적어도 나를 살게 한 결정이었다.
가난과 불안에서 출발했지만, 나는 결국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자리를 스스로 만들어왔다.
이곳에서의 시간은 나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꾸진 않았지만, 쉽게 무너지지 않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지금의 나는 여전히 반복되는 하루를 산다. 내 부모가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빚을 갚고, 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며 시간을 채운다.
다만 분명히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 반복 속에서 나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삶은 요란하지 않게, 그러나 확실하게 나를 안정시키고 있다.
많은 것을 얻고 잃었지만, 결국 나에게 남은 것은 이 가족이다.
그리고 나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