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으로 살며 커리어를 만든다는 것
스페인어만 잘하고, 효율적이고 생산적으로 일하면
여기서 충분히 인정받고 잘 살아남을 줄 알았다.
난 유별난 한국인이니까.
성과만 있으면 국적 따위는 중요하지 않을 거라 믿었다.
그래서 당연히 승진도 하고, 연봉도 오를 줄 알았다.
적어도 노력한 만큼은 보상받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건 내가 세상을 너무 쉽게 본 거였다.
두 나라 사이에 나는 늘 끼어 있었고,
한국인 주재원과 멕시코 현지인들 사이에서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꼴이었다.
한국인들 눈에는 제대로 된 결과물을 빨리빨리 가져오지 못하는 무능력한 사람. 그래서 늘 성이 났고,
멕시칸 눈에는 ‘네가 뭔데’ 하는 시선으로 은근히 당하고, 조용히 밀려났다.
아무도 크게 말하진 않았지만 분명히 느껴지는 배제.
나는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소리 없는 아우성 속에서.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 날들도 있었다. 그게 이상하다는 걸 나만 몰랐을 리 없었다. 다들 바쁘게 움직이는 하루 한가운데서 나만 할 일이 없다는 게 이상하지 않을 리 없었다.
싸하게 스며드는 그 느낌이 무서워 괜히 바쁜 척 사무실을 서성이고, 화장실에 들어가 숨어서 시간을 죽이기도 했다.
아무도 부르지 않는 자리에서 나는 그렇게 하루를 버텼다.
내가 내 업무가 아닌 일까지 나서서 하고,
자잘한 잡일까지 다 떠맡으면 그제야 나를 봐줄까?
그렇게 나는 아주 적극적으로 한국인들의 노예가 되었다.
개인적인 심부름부터 시작해서 사소하고 하찮은 일들까지, 가리지 않고 모두 떠맡았다.
그런데 그러면 그럴수록 점점 더 노예가 되어갔다.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안다. 그 말이 딱 맞았다. 어느새 내 호의들은 당연한 일이 되어 있었고, 고마움은 사라지고 의무로 바뀌어 있었다. 회사가 더 싫어졌다. 나 혼자만 계속 지치는 것 같았다. 상대방은 더 이상 감사하지 않았다. 오히려 선을 그으면 조용히 멀어져 갔다.
난 한국으로 돌아가는 게 해결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가봤자 나는 또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