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2] 멕시코에서의 첫 실패 이후

나는 살아남기 위해 다른 내가 되었다

by 아우로라

나는 원래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사람과 어울리는 데 에너지를 쓰는 걸 힘들어한다.


혼자 여행하고,

혼자 할 일을 끝까지 해내고,

계획해 둔 목표를 하나씩 지워가는 순간들이 좋다.

혼자 있는 시간이 편하고,

그 시간 속에서 스스로와 대화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한국에서도 늘 어딘가 겉돌았다.

그런 내가 멕시코에 왔으니,

이곳에서의 삶이 쉽지 않을 거라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멕시코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는 변해야 했다.


‘일단 끝까지 가보자.

정 안 되면 그때 돌아가자.’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버텼다.


언어 공부도 했고,

친구도 사귀었고,

남편이 라티노라

문화도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했다.


… 착각이었다.

실전은 전혀 달랐다.


이곳에서는

업무 능력보다도

사람들과의 관계가 더 중요했다.


어떨 때는

일을 하러 출근한다기보다

친구를 만나러 회사에 가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가끔은 회사가

일하는 공간이 아니라

친목 모임 장소 같았다.


파티, 술자리, 생일, 기념일.

먹고 마시는 일에

진심인 사람들.


나도 그 안에 섞여보려고

억지웃음을 지으며

굳이 안 가도 될 자리에 나가고,

비싼 음식도 사주고,

내가 아닌 사람이 되려고 애썼다.


집에 돌아오면 늘 지쳤다.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지…”

혼자 중얼거리면서도

다음 약속에는 또 나갔다.


금요일이면 더 심하다.

여기 사람들에겐

금요일은

‘출근은 하지만

일은 안 하는 날’이다.


아침부터 모여

타코 시켜 먹고,

수다 떨고,

그러다 하루를 그냥 흘려보내고

아무렇지 않게 퇴근한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속으로

조용히 무너지고 있었다.


한국 본사에 보고할 자료는

정확해야 하고,

기한은 다가오는데

현지 직원들은 너무 느렸다.


자료 하나 요청하면

늘 돌아오는 말.


“Ahorita.”


사전적 의미는 ‘지금’이지만

지금 당장일지,

30분 후일지,

내일 일지,

내년일지

아무도 모르는 말.


기다리다 지쳐 재촉하면

오히려 내가 나쁜 사람이 된다.

“왜 이렇게 예민하냐”는 눈빛.


끝도 없는 핑계.

변명.

회피.


나중엔

이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듣고 있어도

이해가 안 됐다.


어느 날은

같은 팀 동기가

나를 인사팀에 신고했다.


업무가 겹치는 것도 아닌데

한국인과 소통해야 하는 일만 생기면

“너 한국어랑 스페인어 다 잘하잖아.”

하면서 자기 일을 내게 떠넘겼다.


그리고 문제가 생기면

항상 내 탓이었다.


그날,

정말 더는 못 참겠어서

모든 증빙 자료를 모았다.

메일, 메시지, 기록 전부.


한국인 주재원까지 포함해

메일을 보냈다.

조용히,

사실만 적어서.


그게 그의 자존심을 건드렸나 보다.


그는 바로 인사팀으로 달려가

나를 `직장 내 폭력’으로 신고했다.


메일 하나 보낸 게

폭력이라니.


너무 어이가 없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다행히

인사팀과 충분히 이야기하며

오해는 풀었지만,

그 사건은

내 마음에 깊게 박혔다.


“아…

여기서는

내가 잘못하지 않아도

언제든 가해자가 될 수 있구나.”


그날 이후

나는 더 단단해졌다.

아니,

더 냉정해졌다.


멕시코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는 다른 내가 되었다.


이젠 아무리 친하게 지내도

업무에 도움 안 된다는 걸 알기에

내 일이 아닌 것까지

내가 떠안는다.


아니면

완전히 선을 긋고

“내 일 아니다”라고

차갑게 말하든가.


둘 중 하나다.

중간은 없다.


통역도 마찬가지다.

양쪽 사이에 서면

늘 욕을 먹는다.


한국인은

“왜 제대로 통역 안 해?”

멕시칸은

“쟤가 말을 이상하게 전달했어.”


모두 자기 책임을 떠넘긴다.


다섯 해를 살면서

“와, 이 사람 진짜 일 잘한다”

싶었던 현지인은

아직 못 만났다.


직급이 높아도 마찬가지다.

능력보다 관계가 먼저인 사회.


그래서 깨달았다.


멕시코에서 살아남으려면

회사 체계가 잡힌 곳에 가야 한다.

그리고 무조건 증빙을 남겨야 한다.


구두 약속?

이제 믿지 않는다.

무조건

메일, 메시지, 기록.


그렇지 않으면 모든 책임은 항상 내 몫이 된다.


안타깝게도

나는 멕시코에서 5년 동안

이직을 세 번 했다.


도망치고 싶었던 날도 많았고

포기하고 싶었던 밤도 많았다.


그렇게 흘러온 시간 끝에

지금은

그나마 숨 쉴 수 있는 회사에 있다.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친해지고,

적당히 살아간다.


완벽하지 않다.

여전히 힘들다.

여전히 상처받는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언제 웃어야 하고,

언제 거리를 둬야 하고,

언제 침묵해야 하는지.


나는 멕시코에서 이렇게 다른 사람이 되었다.


살아남기 위해.

내 가족을 지키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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