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에게 ‘인간다움’을 강요하시겠습니까?

이해할 수 없는 지능과 공존하는 법

by HoA

신용평가 모델을 만드는 일을 오래 해왔다. 기계학습 모델이 인간의 판단보다 더 정확하고 효율적이라는 사실은 이미 20여 년 전부터 현장의 상수였다. 당시에는 ‘인공지능’이라는 거창한 이름 대신 ‘모델’이라 불렸을 뿐, 데이터에 기반해 인간의 편향을 넘어선 예측을 내놓는 기계의 등장은 낯선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일까, 최근 사회 전반에 퍼진 AI에 대한 두려움과 저항이 조금은 기묘하게 느껴진다. 이미 ‘먼저 온 미래’를 살아온 입장에서 보면, 지금의 논쟁은 익숙하면서도 본질을 비껴가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오늘날 우리는 AI에게 ‘설명 가능성’이라는 굴레를 씌우려 한다. AI의 판단 과정을 인간이 납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풀어내라는 요구다. 전문가 견해는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기업의 의사결정에 AI가 도입되면 그 논리적 근거를 촘촘히 따져 묻는다. 일견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그와 같은 잣대를 인간에게 들이댄 적이 있었던가. 우리는 인간의 모든 의사결정에 대해 완벽한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때로는 직관과 통찰, 심지어 모순까지 ‘인간다움’이라는 이름으로 용인한다.

스탠퍼드 의대 연구에 AI의 진단 정확도가 88%로 전문의 판단 정확도 73%를 훨씬 뛰어넘었지만 인간과 AI가 협업하자 정확도가 76% 남짓이 되어 시너지가 나지 않았다고 한다. 인간이 AI를 재단하는 방식이 의심이 되면 기술발전이 사회 진보로 연결되지 않는다.

이미 성과가 입증된 기계의 판단 방식은 왜 인간의 이해 범위 안에 갇혀야만 하는가. 이는 어쩌면 우리 지능의 한계를 인정하기 싫은 인간의 지적 폭력이자, AI가 열어줄 새로운 사고의 가능성을 스스로 억압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소설가 장강명은 ‘먼저 온 미래’에서 알파고 이후 바둑계의 풍경을 그렸다. 인간의 이해를 뛰어넘는 AI의 ‘수’ 앞에서 기존의 정석과 기보는 무너졌다. 누군가는 바둑의 낭만이 끝났다고 했고, 누군가는 인간이 가보지 못한 새로운 지평이 열렸다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바둑 기사들이 결국 그 ‘이해할 수 없는 수’를 받아들이고 연구하며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섰다는 점이다.

인간은 합리적인 듯 보이지만 자주 비이성적이고 변덕스럽다. 기술에 대해 환상은 갖지만 막연한 심리적 저항으로 혁신을 저지하기도 한다. 비트코인 투자자들은 과연 복잡한 블록체인 기술을 완벽히 이해하고 실행했던가?

오히려 기술에 대한 이해, 경제적 영향도에 대해 숙고한 사람들일수록 코인에 대해 불신했다. 압도적인 결과와 수익이라는 ‘실익’이 대중의 이해를 강제한 것이었다고 보는 것이 현실적 분석일지 모른다. 이처럼 인류는 종종 이해하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인 후에야 비로소 이해의 틀을 바꿔왔다.

물론, 이러한 변화가 장밋빛 미래만을 약속하는 것은 아니다. 대런 애쓰모글루가 ‘권력과 진보’에서 경고했듯, 기술은 그 자체로 권력이 되어 인간의 삶을 통제하고 황폐화할 수 있다. AI라는 도구가 누구의 손에 쥐어져 어떤 목적을 위해 쓰이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극명하게 달라질 것이다. 효율성의 추구가 인간의 존엄성을 위협하고, 자동화의 물결이 다수를 도태시키는 디스토피아의 가능성을 외면할 수는 없다.

대혼란의 시대, 기술이라는 화살은 이미 시위를 떠났다. 일부는 그 화살을 쏘아 올리며 질주하고, 다수는 그 뒤를 맹목적으로 추종한다. 이제 와서 화살을 되돌리거나, 화살에게 인간의 걸음걸이를 따르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이제 우리의 역할은 AI와 경쟁하는 ‘계산기’가 아니라, 방향을 설정하는 ‘나침반’이 되어야 한다. AI에게 ‘어떻게 생각했니?’라고 묻는 대신 ‘우리는 무엇을 위해 생각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AI가 더 나은 답을 찾는 동안, 우리는 더 나은 질문을 만드는 존재로 거듭나야 한다. AI의 판단 과정을 시시콜콜 이해하려는 노력보다, 그 판단이 우리 사회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지를 성찰하고 윤리적 경계를 설정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AI는 인간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사고의 우주를 보여주는 망원경이 될 수 있다. 그 망원경으로 무엇을 관측하고 어디로 나아갈지 결정하는 것은 온전히 우리의 몫이다. 인간의 지능을 흉내 내라고 강요하기보다, 그 ‘이해할 수 없는 지능’을 지렛대 삼아 인류 본연의 과제인 ‘본질에 대한 탐구’로 나아갈 때, 우리는 비로소 이 대전환의 시대에서 길을 잃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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