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는 진짜가 될 수 없는가

그란 투리스모를 보고

by HoA

"진짜가 아니라도 지극히 하다 보면 진짜보다 훌륭해질 수 있다." 그란 투리스모는 가상의 레이싱 세계에 몰입한 한 게이머가 실제 프로 레이서가 되는 이야기를 통해 이 명제를 입증한다. 이 영화는 단순히 게임과 현실의 경계를 허무는 이야기가 아니라,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우리의 편견을 질문한다. 과연 "가짜"는 진짜가 될 수 없는가? 우리는 원본이라는 이름 아래 스스로의 가능성을 가로막고 있지는 않은가?


1. 시뮬레이션의 진실성: 왜 우리는 가짜를 경계하는가?

우리는 오랫동안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데 집착해 왔다. 예술에서 복제품은 원작에 미치지 못한다고 여겨졌고, 스포츠에서 e스포츠는 진정한 경기로 인정받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란 투리스모'의 주인공 얀 마덴버로가 겪은 것처럼, 시뮬레이션 레이서(Sim Driver)는 실제 레이서들로부터 "게이머"라는 편견으로 배척당한다.


하지만 문제는 "진짜"의 정의 자체가 모호하다는 점이다. 레이싱 시뮬레이터는 실제 트랙의 물리법칙, 차량의 반응, 심지어 운전자의 심리 상태까지 디지털 트윈으로 재현한다. 여기서 훈련된 기술은 실제와 다를 바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가상"이라는 단어 앞에서 의구심을 품는다. 이는 오리지널리티가 단순히 물리적 실존에 기반한 관념임을 드러낸다.


2. 몰입이 만드는 현실: 잘 디자인된 가상(디지털 트윈)의 힘

디지털 트윈(Digital Twin)은 가상과 현실을 잇는 기술이다. 공학, 의료, 제조업에서 이미 활용되는 이 개념은 "가짜"가 단순 모방이 아니라 새로운 차원의 진실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 '그란 투리스모'에서 얀이 가상 레이싱으로 체득한 기술은 실제 트랙에서도 통했고, 결과적으로 그는 "진짜 레이서"가 된다.


여기서 핵심은 '몰입'이다. 가상 세계라도 완전히 몰입하면 뇌는 그것을 현실로 인식한다. 게임 속에서 수천 시간을 달린 경험은 실제 운전의 근육 기억과 다를 것이 없다. 이는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를 뒤집는 발상이다. 우리가 보는 그림자가 진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Journal of Neurophysiology에는 손목 깁스를 한 환자가 상상 속에서 운동하는 것만으로도 근육손실이줄고 근력이 강화되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된 바 있다. 이 사례 연구 이후 가상훈련은 올림픽 출전 선수의 90퍼센트 이상이 하는 일반적 과정이 되었다. 결국, 가상현실이 갖는 한계란 '가짜'라는 관념이 만들어내는 불합리한 판단인지도 모르는 일이다.


3. 오리지널리티의 함정: 우리는 왜 새로운 가능성을 거부하는가?

"원본"을 숭배하는 태도는 창의성을 방해한다. 르네상스 화가들은 선배의 스타일을 모방하며 새로운 예술을 창조했고, 오늘날 AI 작곡가는 인간의 감성을 학습해 음악을 만든다. 문제는 "진정성"이 과거의 형식에 갇힐 때 생긴다. '그란 투리스모'의 얀은 "게이머 출신"이라는 이유로 경멸을 받았지만, 그의 실력은 오히려 전통적인 레이서보다 더 혁신적인 접근법을 증명했다.


이러한 현실은 전통적인 모방론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요구한다. 고대 그리스부터 예술의 본질로 여겨진 미메시스(Mimesis)는 단순한 복제가 아닌 창조적 재현을 의미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방을 "인간의 본능적 충동"이자 "예술 창조의 근원적 능력"으로 보았으며,

피카소는 "훌륭한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라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모방이 "복제나 표절이 아니라 벤치마킹과 같은 폭넓은 의미"를 가지며, "본보기를 따르지만 새롭고 고유한 성질을 창조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원본을 고집하는 이유는 제한된 영역, 권위가 보장하는 안전함을 찾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정한 혁신이란 경계를 허무는 데서 온다. 만약 가상현실이 실제 경험과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면, "가짜"라는 분류는 무의미해진다.


4. 진짜는 목적지가 아니라 과정이다

그란 투리스모는 궁극적으로 "진짜"와 "가짜"의 대립이 아니라, '의지''결과'의 문제임을 보여준다. 오리지널리티는 고정된 상태가 아니다. 어떤 경로로 도달하든, 열정과 노력이 충분하다면 가상의 경험도 현실의 성취로 이어질 수 있다.


디지털 트윈이 확장되는 시대에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이것이 진짜인가?"가 아니라 "이것이 의미 있는가?"이다. 가짜는 진짜의 경계란 새로운 기준이 설 때 재정의된다. 우리가 원한다면, 이 가상의 방식이 인간에게 이롭다면 시뮬레이션은 더 이상 그림자가 아닌 현실의 일부가 될 수 있다.


가끔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이라는 거창한 이름 하에 실데이터로 입증하지 못한 가설은 무의미한 것으로 폄훼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아직 가보지 못한 길은 과거 데이터로 증명할 수 없으며, 치밀하게 디자인된 상상이 박약한 과거 데이터보다 나은 경우도 많다.


지금은 진짜, 가짜를 분별하는 경계를 세우는 데 시간을 보내기보다 원하는 것을 명징하게 디자인하되 이를 지지할 수 있는 정교한 시뮬레이터를 구현하고 여러 번 실험해 보는 실천적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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