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라는 성벽을 허물 때

AI시대, 전문가 타령은 이제 그만

by HoA

전문가의 홍수, 그리고 보이지 않는 장벽


요즘 인공지능(AI) 정보 공유 대화방이나 링크드인 같은 소셜 미디어를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현상을 목격하게 된다. 스스로를 ‘AI 전문가’라 칭하는 이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고, 동시에 그들을 향한 또 다른 ‘전문가’들의 날 선 비판과 배타적인 언사가 넘쳐난다. 나이나 배경을 막론하고 나름의 경계를 만들고 자기의 영역을 지키려는 경비태세가 삼엄하다. 정작 AI라는 개념 자체도 명확하게 정의내리지 못하고 있음을 학계 논문과 산업 현장에서 지적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는 아이러니하게도 ‘전문가’의 홍수와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장벽을 동시에 마주하고 있다.

문제는 누가 누구를 전문가로 인정하고, 또 비판할 자격이 있는가 하는 점이다. 사실 AI 분야에서 진정한 의미의 ‘전문가’ 집단은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AI는 더 이상 특정 알고리즘이나 모델 하나로 설명할 수 없는 거대한 생태계가 되었기 때문이다. 복잡한 모델 아키텍처, 방대한 데이터를 다루는 인프라, 하드웨어 최적화, 그리고 각 산업 도메인에 맞는 변주까지,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전능한 전문가’는 존재하기 어렵다. 특정 분야의 깊이 있는 경력자는 존재하겠지만, AI산업을 둘러싼 환경을 전방위로 깊이 이해하는 전문가는 손에 꼽을 정도일 것이다. 타임지가 선정한 글로벌 AI 전문가 100인에 한국인이 고작 2명(최예진 스탠퍼드 교수, 조앤 장 Open AI 모델행동 총괄) 들었을 뿐인데 정작 국내에서는 간장종지만도 못한 스케일의 밥그릇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전문가’라는 타이틀에 집착한다. 그것을 마치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고 타인을 얕볼 수 있는 권위의 면류관처럼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전문가'라고 불리길 원하는 사람들은 대개 자신이 쌓아 올린 지식의 성벽 안에 머물며, 그 성벽에 다가오는 이들을 밀어내는 배타적인 태도는 결국 스스로를 고립시킬 뿐이다.


2. ‘어쩔 수 없는’ 전문가들의 시대는 지났다


과거에는 특정 분야의 천재적인 전문가가 나타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영웅 서사가 존재했다. 하지만 세상은 이제 그런 방식으로 움직이기 쉽지 않다. 해결하기 쉬운 문제들은 이미 대부분 종결되었고, 우리 앞에는 여러 분야의 깊이 있는 지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치열하게 토론하고, 타협해도 풀릴까 말까한 복잡한 문제들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기존 전문가 집단의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문제도 등장하 시작했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 속에서, “나는 전문가인데, 전문가도 아닌 사람이 자기 생각을 떠드는 꼴은 볼 수 없다”는 식의 태도는 얼마나 위험한가. 내가 속한 온라인 AI 커뮤니티에서 가장 활발하게 논의를 이끌어가는 이들은 AI 알고리즘 개발자가 아닌,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경영대 교수님이나 컨설턴트, 사업가인 경우가 많다. 기술의 깊이만을 내세우는 대신, 그것을 어떻게 현실 문제에 적용하고 가치를 창출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귀 기울일만하다. 하지만 이면에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뭘 안다고 여기서 떠드느냐는 식의 딴지걸기를 하는 것을 보면서 나이나 지성은 인격과 비례하지 않음을 확인시키는듯해 씁쓸할 때가 있다. AI활용자로서 이 생태계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학문적 깊이는 기술적으로는 조금 부족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의 소리를 들어야 생산성이 됐든 효율성이 됐든 지금보다 나은 방향으로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음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 지점을 무시하는 순갸 소위 '전문성'이라는 것이 진보와 협력의 방해꾼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AI때문이라고만은 할 수 없겠지만 이제 ‘전문가’라는 권위는 더 이상 특정 집단의 전유물도 아니고, 권위를 유지시켜 주는 수단으로로도 효과가 감소하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박찬욱 감독의 "어쩔수가없다" 영화 속 인물이 내뱉는 “No other choice”라는 대사처럼, 기존의 전문가 집단이 보여주는 무력감이나 시대착오적인 권위 의식은 어쩌면 머지않아 연민의 대상이 될는지도 모른다. 변화의 물결 앞에서 자신의 지식만이 유일한 정답이라 믿는 순간, 우리는 모두 그 ‘어쩔 수 없는’ 전문가가 될 위험에 처하게 된다.


3. 진짜 전문가, 경계를 허무는 사람


내가 요즘 진정한 ‘전문가’, 혹은 ‘어른’이라고 느끼는 분들은 어떤 분야에 통달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생각에 반하는 의견에 기꺼이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과 다른 관점을 배척하는 대신, 오히려 호기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탐구한다. 자신의 지식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겸손함과, 새로운 것을 배우려는 열린 자세야말로 이 시대가 요구하는 진정한 전문성의 본질이다.

최근 어느 대학에서 강의하던 저명한 교수님께 한 신입생이 "교수님, 그 이론 이제 틀린 것으로 밝혀졌어요."라고 말했더니, 교수님께서 그 자리에서 설명을 부탁하고 좋은 정보 공유해 줘서 고맙다 하셨다고 한다. 그 강의장에 있던 학생이 교수님의 열린 태도를 보고 진정한 학자의 면모에 감동했다는 게시물을 대학 커뮤니티에 올렸는데 선플이 길게 이어졌다.

물론,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어느 경지에 도달하려는 치열한 노력과 의지는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 경지란 만들고 가꾸어 나가는 것이지 도달하는 것이 아니다. 결국, '경지'라는 것이 영원하지 않은 순간에 불과하다면,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는 더욱 명확해진다. 바로 자신의 전문성을 끊임없이 갈고닦되 타인의 지식과 경험을 존중하고 배우는 개방적인 태도를 갖는 것이다. AI를 직접 만들든, 남이 만든 AI를 잘 활용하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무언가를 시도하고 그 결과에 책임지는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

위험한 전문가는 자신의 지식으로 벽을 쌓는 사람이다. 반면, 우리에게 필요한 전문가는 자신의 지식을 다리 삼아 다른 세계와 연결하고, 미지의 영역으로 나아가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다. AI 시대의 진정한 권위는 ‘전문가’라는 낡은 왕관이 아니라, 끊임없이 배우고, 나누고, 협력하며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열린 태도에서 비롯될 것이다.


#소버린 AI든 AI 어플리케이션이든 무엇이든 우리나라가 시장을 주도하고 있지 않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미 조금 늦은 시작인데 그 와중에 이 좁은 땅에서 나누고 갈라치 기하는 구습은 그만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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