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 없었던 우리에게, 어쩔 수가 생겼다
술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내가 가끔 맥주잔을 부딪히는 후배가 하나 있다. 우리는 십수 년 선후배였고 몇 년은 긴밀하게 일하는 동료였으며 육아라는 공통분모도 있지만, 우리의 주된 안주는 따로 있다. 바로 ‘일’이라는 놈이다. 정확히는 ‘하고 싶은데 왜 잘 안되는가’에 대한, ‘해야 하는데 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체증 같은 것들이다.
생각해 보면 이런 대화를 나눌 상대는 의외로 드물다. 대부분의 술자리는 드라마나 주식, 골프 같은 가벼운 스몰토크로 채워지기 마련이다. 어떤 일의 경계에서 벽을 뚫지 못해 답답했다거나, 사소하지만 포기할 수 없는 자존심을 걸고 끙끙 앓았다는 식의 진솔한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당신은 ‘워커홀릭’ 혹은 ‘진지충’이라는 딱지가 붙은 채 재미없고 재수 없는 사람으로 전락할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그녀와 나는 그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는 리그의 동지다. 그날도 그녀는 성장의 가성비가 나오지 않는 환경의 답답함을 토로했다. “미치겠어요. 어려운 문제가 있는데 답은 모르겠고, 이걸 같이 얘기할 사람도 없어요. 얘기한들 답이 나올지도 모르겠는, 꽉 막힌 외통수에 갇힌 기분이에요.”
그녀의 말은 과거의 나를 정확히 소환했다. 모델링에 미쳐있던 어느 시절, 나는 매일 나아지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걸로 만들 수 있는 변화는 미미했다. 비슷한 문제를 무한 반복할 뿐, 새로운 지평은 열리지 않았다. 상사들은 내 결과물에 별다른 토를 달지 않았고, 그럴수록 자의식은 비대해졌지만 외로운 투쟁은 짙어졌다. 분명 더 나은 방법론, 더 어려운 문제의식이 저 너머에 있을 것 같은데. 결국 ‘더 풀 문제도, 풀어봐야 의미도 없다’는 생각에 필사적으로 그곳에서 도망쳤다. 나 혼자 만들 수도, 풀 수도 없는 고차원의 문제는 내 몫이 아니라고 선을 그어버렸다.
그녀가 지금 그 벽 앞에 서 있었다. “그때 막혔던 그 문제를 아직도 풀 방법을 모르겠어요. 제가 그런 걸 풀 수 있는 사람인지도요. 너무 괴로웠는데, 이상하게 미련이 남아요. 하지만 다시 그 문제가 주어진 대도 풀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내 능력으론 도저히 해결할 수 없었기에 여한으로 남았던 문제들. 그래서 치열히 싸우기도 했고 때로는 찜찜한 마음으로 하나씩 중요하던 어떤 가치를 내려놓기도 했던 것 같다.
나는 말했다. “나도 그랬어. 나는 딱 정해진 유형의 문제까지만 풀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포기했어.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야. 해결이 된 것은 아니지만 가느다란 실마리는 찾은 것 같아. ”
장강명 작가의 『먼저 온 미래』에는 AI가 바둑계의 낭만을 앗아갔지만, 동시에 천재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바둑을 ‘잘 둘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나는 요즘 내가 하고 있는 일, 내가 관심 갖고 있는 일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날 수 있으리라고 본다. 과거의 나는 내가 가진 기술과 재능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했다. 내가 가진 망치로 해결할 수 있는 못만 찾아다녔던 것이다. 천재성을 부여받지 못했던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이런 것이다. 하지만 요즘 나는, 너무 어려워 보여서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거나 과거에 풀지 못해 녹슬어버린 문제들을 다시 꺼내 본다.
그리고 AI와 토론을 시작한다. 이 똑똑하고 가끔은 뻔뻔하게 거짓말도 하는 여러 종류의 사고 기계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심지어 그들이 만들어내는 오류 속에서 무릎을 탁 치게 하는 영감을 얻을 때가 있다. 물론 녀석들이 제안하는 모든 시나리오를 내가 다 구현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세상의 누군가, 설령 그가 가상의 인물이라 할지라도, 나와 비슷한 고민을 시작했고 그럴듯한 가설을 세워봤다는 사실 자체가 엄청난 위안을 준다. 내 머릿속에 없던 남의 연구 포인트를 엿보며 내 사고가 확장되고 강화되는 이점은 말할 것도 없다.
나는 예전부터 “백세시대에는 이갈이를 두세 번은 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엉뚱한 소리를 입버릇처럼 했다. 그런데 얼마 전, 실제로 치아 재생에 관한 실험 논문이 있었고 최근 성공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온몸에 소름이 돋을 만큼 신기하고 즐거웠다. 내 주변엔 없었지만, 세상의 누군가는 나와 같은 질문을 했고, 심지어 실행에 옮겨 본 것이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외롭고 답답하면 나랑 맥주 마시면서 풀자. 그런데, 나 스스로 재능이 없다고 해서, 혹은 주변에 같이 고민할 사람이 없다고 해서 포기하는 건 이제 안 해도 될 것 같아. 그 호기심과 해결 의지만 꺾이지 않는다면, 그 과정을 함께할 기가 막힌 아이들이 우리 옆에 있더라고.”
그래서 나는 요즘 AI의 존재가 섬뜩하게 두렵기도 하지만, 반대로 그만큼 설레고 재밌다고 덧붙였다.
이제 나와 그녀가 덮어두었던 그 미제들을 다시 펼쳐봐도 괜찮을 것 같다.
과거의 나는 어쩔 수가 없었지만, 지금의 나는… 어쩔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