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증명하는 삶의 글쓰기

정지우의 <AI,글쓰기,저작권>을 읽고

by HoA

나를 증명하는 삶의 글쓰기

AI가 나를 비롯하여 내 동료의 생산성을 추월하고, 때로는 인간이 시스템의 정교한 부속품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불안 앞에서 정지우 작가는 데카르트를 다시 불러왔다. 알고리즘이 우리의 욕망을 설계하고 영토를 구획할지라도, 그 안에서 "이것이 정말 나의 욕망인가?"라고 의심하며 번민하는 주체는 결코 가짜일 수 없다. 모든 감각과 결과물이 AI의 계산에 의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 도구를 쥐고 고뇌하는 ‘나’의 존재 자체는 논리적으로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라는 것이다. 작가에 따르면 우리가 AI를 활용하며 느끼는 그 '정체성의 혼란'조차도, 역설적으로 우리가 아직 기계가 아닌 '인간'으로 살아있음을 뜻하는 데카르트적 증거가 된다.


경험주의의 회복: 데이터가 흉내 낼 수 없는 ‘삶의 마찰력’

경험주의 철학의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지식과 서사는 오직 감각적 경험을 통해서만 완성된다. AI는 수조 개의 문장을 학습하지만 그 문장에 담긴 '통증'이나 '환희'를 단 한 번도 직접 겪어보지 못했다. 정지우 작가가 강조하듯, AI가 유려한 그림을 그려낼수록 사람들이 인간이 직접 그리는 '과정(Process)'에 열광하게 되는 이유는 그 안에 삶 속에 어떤 행위에 대한 저항, 그리고 마찰력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직접 겪고, 부딪히며, 그 틈새에서 얻어낸 고유한 경험은 데이터에 갇힌 패턴이 아니라 생생하고 고유한 삶이 된다.


삶으로의 증명: 작가의 경쟁자는 AI가 아닌 ‘거짓된 삶’

이 책의 가장 따뜻한 통찰은 "글은 기술이 아니라 삶으로 증명하는 것"이라는 대목이다. AI의 문장은 완벽할 수 있지만, 그 문장에 책임을 지는 생애는 존재하지 않는다. 주체로서의 인간이 쓴 글은 그가 살아온 배경, 그가 내린 선택, 그가 견뎌온 맥락과 맞물릴 때 비로소 저작권을 넘어선 '존재적 권위'를 획득한다. 작가는 이제 AI와 글쓰기 기술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에게 자신의 삶을 온전히 건네주며 그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아마도 그는 글에서 묻어나는 것처럼 인간애, 올바름을 실천하고 증명하는 삶을 살아가고 것이다. 이처럼 나보다 글을 잘쓰는 AI라는 존재가 있다 하더라도 우리가 할 일은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오롯이 나의 안목으로 세상을 편집하고, 나의 삶으로 그 문장의 진실성을 담보하는 것—그것이야말로 AI가 범접할 수 없는 인간만의 영역일 것이다.


드디어 저작권 이야기 : 편집저작물 - '안목'이라는 이름의 주체성

AI가 조력자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질문 외의 아주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는 이 시점에서 과연 "내가 한 일이라고 할 수 있는 경계는 어디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저자는 '편집저작물'이라는 법적 개념을 제시한다. AI가 생성한 조각들을 조합하고, 정교한 소제목으로 방향성을 부여하며, 자신의 관점에 따라 재배열하는 과정은 단순한 기술적 보조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흩어진 데이터들 사이에서 '의미'를 길어 올리는 고도의 정신 활동이다. 이때 필요한 역량은 아마도 프로세싱 능력이 아니라, 세상을 관통하는 '철학적 안목'일 것이다. 개인의 철학이 작동하는 순간, AI는 나의 주체성을 앗아가는 괴물이 아니라 나의 서사를 확장하는 강력한 도구로 재탄생한다.


허망함을 이겨내는 ‘인간’이라는 가치

개인은 언젠가 AI에게 분명 질 것 같다. 그래서 싸움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도 점점 커져간다. 때로는 인간이 시스템의 일부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역시 우리가 상상하는 AI도래기의 미래상 중 하나다. 하지만 정지우 작가는 그 어둠 속에서도 인간에 대한 애정을 기어이 찾아낸다. AI가 세상을 다 뒤덮더라도, 인간은 그 틈새에서 또 다른 '인간적 경험'을 갈망하며 고유한 길을 낼 것이라 믿는 듯하다. 그의 서사에서 인간은 쉽게 허물어지지도 않는다. 아마도 그 역시 자신의 삶에서 쉬운 포기를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우리는 더 이상 결과물의 퀄리티로만 우리를 증명할 필요가 없다. 대신, 그 결과물을 만들어내기까지 우리가 통과해온 시간과 고민, 그리고 그 결과물을 책임지는 우리의 삶 자체에 더 큰 가치를 두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뛰어난 프롬프트가 아니라, 더 깊은 자기만의 안목과 삶을 대하는 진솔한 태도이기 때문이다. 글에 묻어난 간절함, 진정성은 그것을 삶으로 옮기는 사람이 있어야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이 있는한 글쓰기의 주체는 여전히 '나'라는 사실을 부정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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