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e Music Capital of the World" 오스틴의 거리를 걸을 때마다 어디선가 기타 선율이 들려올 것만 같은 도시. 15년 전 처음 이곳을 방문했을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시댁이 있는 달라스를 방문한 김에 들른 오스틴이었지만, 첫 만남부터 달랐어요. 4월의 따뜻한 햇살 아래, UT(University of Texas) 캠퍼스의 자유로운 분위기는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았습니다. 지금도 종종 그때 산 기념품들을 떠올립니다. 제 영어 이름이 새겨진 다크브라운 볼펜과 텍사스 별 모양 뱃지. 평소 기념품을 잘 사지 않는데, 그날은 이상하게도 뭔가를 간직하고 싶었죠. 마치 이곳과의 더 긴 인연을 예감했던 것처럼요.
1839년, 텍사스의 아버지로 불리는 스티븐 F. 오스틴의 이름을 따 세워진 이 도시는 처음에는 강가의 작은 정착지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오스틴은 단순한 도시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되었죠. 자유로운 영혼들이 모여드는 창의적인 공간,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문화의 도시로 발전해왔습니다.
달라스의 플래이노가 15년 전과 달리 한인들의 핫플레이스가 된 것처럼, 오스틴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스틴의 변화는 조금 달랐어요. 이곳은 성장하면서도 자신만의 독특한 정체성을 잃지 않았거든요.
UT 근처의 작은 햄버거 가게에서 먹었던 그 맛, 거리를 가득 채우던 자유로운 음악 소리, 다양성을 존중하는 포용적인 문화까지. 첫 방문에서 느꼈던 이 특별한 매력들이, 10여년 후에 우리 가족이 오스틴을 새로운 보금자리로 선택하게 된 이유가 되었습니다.
오스틴은 어떻게 이토록 특별한 도시가 된 걸까요? 그 비밀은 이 도시가 간직해온 다층적인 역사 속에 있습니다.
강가의 작은 정착지였던 오스틴은 세 가지 물결을 거치며 지금의 모습으로 발전해왔습니다.
첫 번째는 개척자들의 독립 정신이었습니다. 텍사스의 거친 대지에서 새로운 삶을 일궈낸 그들의 도전 정신은 지금도 오스티니언들의 DNA에 살아있죠.
두 번째 물결은 1960-70년대의 히피 문화와 반전 운동이었습니다. 이 시기에 형성된 자유로운 예술 정신과 포용의 가치는 오스틴의 정체성이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UT 오스틴을 중심으로 한 젊은 지성의 물결입니다.
특히 UT 오스틴의 존재는 이 도시를 끊임없이 새롭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캠퍼스를 걷다 보면 전 세계에서 모여든 젊은 인재들의 열정을 피부로 느낄 수 있죠. 이들이 가진 창의적인 에너지는 도시 전체에 활기를 불어넣습니다.
최근에는 '실리콘 힐스'라는 새로운 별명도 생겼습니다. 테슬라, 애플, 메타와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이곳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만들면서부터죠. 하지만 놀라운 것은, 이런 급격한 성장 속에서도 오스틴은 자신만의 색깔을 잃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첨단 기술과 자유로운 예술 정신이 만나 더욱 특별한 시너지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오스틴은 마치 거대한 캔버스와 같습니다. 개척 시대의 진취적 정신, 히피 문화의 자유로움, 대학가의 젊은 열정, 그리고 실리콘 밸리의 혁신이 이 캔버스 위에서 독특한 그림을 그려내고 있죠. 이곳에 발을 내딛는 순간, 당신도 이 그림의 한 부분이 됩니다.
15년 전 처음 방문했을 때 느꼈던 그 설렘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었나 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이미 저는 알았던 것 같아요. 이곳이야말로 제가 새로운 이야기를 써내려갈 완벽한 무대가 되리라는 것을.
"키득키득... 엄마의 영어가..." 최근 두 남자아이들을 혼내던 중 갑자기 엄숙하던 분위기가 웃음바다로 변했습니다. 제가 너무 화가 나서 한국식 억양으로 영어를 해버린 것이었죠. 억양도 없이 완전한 콩글리시로요. '와, 이것들이 진짜... 내가 전직 영어선생님이었다고. 엄마를 무시해?'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웃음이 났습니다. 한국에서는 영어교육 전문가였던 제가, 이제는 아이들 앞에서 서투른 영어를 구사하는 평범한 엄마가 된 거죠. 이런 일상의 작은 좌절이 오히려 저를 다시 일으켜 세웠습니다. 너무 집에만 있다 보니 영어 듣기 노출이 부족해져 억양이 무너지고 있다는 걸 깨달았고, 테드 따라 읽기 라던가 영어독서 북클럽등 더 적극적으로 영어 환경을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처음 오스틴에 왔을 때는 설렘으로 가득했습니다. 초등학생 아이들의 플레이데이트를 통해 반 친구들도 사귀고, 저 또한 동네 미국인 친구들을 만날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이 컸죠. 하지만 도착하자마자 코로나가 터졌습니다. 이제 막 학교에 적응하고 자신감을 찾아가던 아이들은 6개월간 각자의 방에서 온라인 수업을 해야 했고, 세 살배기 막내는 텅 빈 놀이터에서 혼자 놀거나 차 타고 드라이브 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이 시기가 오히려 축복이 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학원 운영으로 아이들과 함께할 시간이 부족했던 것이 늘 마음에 걸렸는데, 이제는 온전히 가족을 위한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된 거죠. 한국에서의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의 치열했던 일상이 오스틴에서는 평화로운 쉼으로 바뀌었습니다. 매일 아침 창밖으로 보이는 드넓은 파란 하늘과 동화 속에서나 볼 법한 뭉게구름, 주방에서 요리할 때 눈에 들어오는 초록빛 나무들과 싱그러운 잔디, 나무를 오가는 다람쥐들, 서로 화답하는 듯한 새소리까지... 한국과는 다른 자연이 바로 곁에 있다는 것이 무한한 행복을 가져다주었습니다.
2년차가 되어 백신 접종이 시작되면서 서서히 일상이 돌아왔습니다. '이제 진짜 미국 생활을 시작해보자'는 마음으로 페이스북에 가입해 Cedar Park 엄마들 모임에도 참석해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대화 속에서 저는 이방인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들이 어릴 적 보았던 영화, TV 프로그램, 음악, 스포츠 이야기가 오갈 때면 '여긴 어디, 나는 누구'라는 물음표가 수없이 떠올랐죠. 전환점은 막내가 Pre-K에 입학하면서 찾아왔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다양한 문화권의 엄마들 - 미국인, 중국인, 멕시코인 등 - 과의 교류는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었습니다. 서로가 이민자라는 공통점이 있어서인지 완벽하지 않은 영어로도 편안하게 소통할 수 있었고, 각자의 문화를 조심스레 알아가는 과정이 즐거웠습니다. 예전에 제가 학생들에게 늘 강조하던 "언어는 틀려도 괜찮아, 시도하는 게 중요해!"라는 말을 이제는 제 자신에게 다시금 적용하게 되었죠. 이런 경험들이 제 인생의 새로운 장을 열어주었습니다.
최근 많은 한인 가정들이 오스틴으로 이주해 오면서, 제 경험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이 부동산 전문가로의 전환으로 이어졌습니다. 지금은 새로 오시는 분들에게 단순히 집을 구해드리는 것을 넘어, 제 경험을 바탕으로 실질적인 정착 조언도 함께 드리고 있습니다. 영어교육 전문가로서의 8년은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경험이 제게 새로운 도전의 용기를 주었고,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게 해주었죠. 여러분도 각자의 자리에서 쌓은 소중한 경험이 있으실 겁니다. 그 경험이 새로운 환경에서 어떤 특별한 기회로 이어질지, 누구도 모를 일이니까요. 저처럼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시는 분들께 제 이야기가 작은 위로와 용기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달라스 시댁에 방문했을 때는 단순히 관광객의 눈으로만 이곳을 보았습니다. 시어머님, 남편과 잠깐 마트에 들러 야채와 과일을 사는 정도였죠. 그래도 한 곳에서는 정말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네요. 바로 샌안토니오의 유명한 아울렛이었습니다. 샤넬, 구찌 같은 명품 브랜드부터 나이키, 갭은 물론 각종 생활용품까지 모든 것이 한곳에 모여있는 거대한 쇼핑 천국이었죠. 임신했을 때 여동생과 함께 둘러보다가 "여기 다 보려면 2박 3일은 걸리겠다!"며 농담을 주고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이제는 실제 이곳에서 살아가야 하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이민 온 첫 달은 온통 쇼핑의 연속이었어요. 잠자리에 필요한 침대부터 시작해서 소파, 식탁, 가전제품까지... 하나하나 채워나가야 했거든요. 그런데 이게 웬걸, 종류별로 서로 다른 쇼핑몰을 가야 해서 하루에 2~3군데만 돌아봐도 진이 빠지고 하루가 훌쩍 지나갔습니다. 한국의 대형마트는 이곳에 비하면 정말 동네 구멍가게 수준이더군요. 한국에 이마트가 있다면 텍사스에는 H-E-B가 있습니다. (알파벳 그대로 읽습니다.) 이 H-E-B는 신선하고 저렴한 농산물이 특징인 로컬 슈퍼마켓인데, 너무 넓다 보니 원하는 물건을 찾는 것부터가 일입니다. 한 물건을 빼먹고 다시 가려면 그 긴 통로를 되돌아가야 해서 차라리 포기하게 되죠. 소스류만 해도 처음 보는 브랜드들에 용도를 일일이 살펴보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됩니다.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코스트코 역시 규모가 달랐습니다. 제가 자주 가던 양재동과 광명 코스트코는 이곳과 비교가 안 될 정도예요. 꼭 필요한 것만 골라도 2시간은 훌쩍 지나갑니다. 오스틴에 도착하자마자 다음 날 집 클로징을 했고, 한 달간 주방 리모델링 공사를 진행했습니다. 마침 부모님도 함께 계셔서 안팎으로 대청소를 할 수 있었죠. 청소를 마치고 점심으로 텍사스 로컬 브랜드인 'Whataburger' (왓어버거인데 연음시켜서 와러버거로 읽습니다.) 를 시켜먹었는데, 세상에나! 남편이 사온 버거 크기와 음료 컵 크기는 정말 놀라웠습니다. 게다가 가격도 저렴해서 부모님과 함께 웃으며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새록새록합니다.
지금 살고 있는 첫 집은 약 2,400 sqft(약 67평) 정도로, 한국의 보편적인 33평형에 비하면 거의 두 배에 달하는 크기입니다. 게다가 앞뒤 마당까지 넓게 있어서,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했던 새로운 경험이었죠. '나 이제 성공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습니다. 처음에는 이렇게 큰 집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나 걱정도 됐는데, 알고 보니 이 집이 텍사스에서는 작은 축에 속한다는 게 더 놀라웠습니다.
도로 역시 모든 것이 압도적입니다. 처음에는 내비게이션이 "하이웨이에서 세 번째 차선으로 가세요"라고 안내할 때마다 식은땀이 났어요. 위로는 고가도로, 아래로는 서비스도로, 거기에 8차선이 기본인 도로에서 차선을 바꾸는 건 마치 자동차 운전 게임 같았으니까요. 빠른 속도는 물론이고, 넓디넓은 스케일에 아직 감이 없어서 차선 하나 바꿀 때마다 휘청거리는 기분이었습니다. 특히 인터체인지의 하늘에 높이 솓아 있는 도로가 꼬여있는 모습을 보면서 "저 하늘로 올라가는 도로는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걸까?" 궁금해하던 때가 엊그제 같네요.
미국 이민을 결심했을 때, 남편은 우리가 살 도시를 찾는 데 정말 공을 들였습니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조건이 세 가지 있었죠.
미국 지역내에서 치안이 좋고 안전한 곳,
기후 좋고 공기 좋은 곳,
겨울이 춥지 않고 온화한 곳,
그리고 미래가 있는 곳.
미국인 남편은 6개월 동안 하루 3시간씩 각 주의 도시들을 꼼꼼히 연구했다고 합니다.
2017년 막둥이를 낳은 후, 한국의 대기오염은 제 인생에서 최악의 수준을 경험하게 했습니다. 항상 회색빛 하늘이 드리워져 있었고, 산에 올라가도 뿌연 먼지 때문에 가슴이 시원하게 뚫리지 않았죠. 마스크는 이제 필수품이 되었고, 아이들의 체육 시간마저 실내 활동으로 대체되는 일이 잦았습니다. 10분만 환기를 해도 선반 위에 까만 먼지가 쌓이는 걸 보며, 특히 갓 태어난 아기를 이런 환경에서 키워야 한다는 게 너무나 마음 아팠습니다. 혹시 야산에서 자라는 '으름'이란 걸 아시나요? 제가 어렸을 때는 동네 뒷산에서 이 '야생 바나나'를 마음껏 따 먹으며 놀았답니다. 그만큼 깨끗했던 우리나라가 이제는 숨 쉬기조차 어려워진 현실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아이들에게 더 나은 환경을 선물해주고 싶었죠.
한국의 여름은 또 어떻습니까? 8월의 짧은 바캉스 시즌을 제외하면 장마로 인한 긴 우기가 이어졌죠. 빨래는 잘 마르지 않아 냄새가 나고, 제습기는 하루 종일 돌려야 했습니다. 찜통 더위에 에어컨을 켜고 싶어도 무서운 누진세 때문에 가족들이 다 모일 때만 겨우 켤 수 있었고요. 아침에 화장하고 나면 금세 땀이 흐르고, 머리를 말릴 때는 드라이기 바람 때문에 사우나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오스틴은 달랐습니다.
전기 요금이 놀랄 만큼 저렴해서, 한국인의 체감 온도에 맞춰 에어컨을 24시간 틀어도 한 여름에 많이 나와봐야 200달러 정도입니다. 오히려 실내가 너무 시원해서 겉옷을 하나쯤 들고 다녀야 할 정도예요. 겨울은 더욱 좋습니다. 영하로 내려가는 날이 거의 없어 옷차림이 늘 가볍죠. 한국에서는 패딩을 하나 입어도 추워서 두 개를 겹쳐 입을까 고민했던 것과는 큰 차이입니다. 오스틴의 겨울은 아침저녁으로 쌀쌀하지만, 낮에는 24~25도로 따뜻하고 화창한 날이 대부분입니다. 제가 처음 오스틴에 왔던 1월, 그 청량하고 포근한 날씨에 단번에 사랑에 빠졌답니다. 지금은 2월인데, 실제로 겨울답게 느껴지는 기간은 한 달 정도에 불과합니다. 얼마 전 막둥이의 풋볼 연습을 보러 갔는데, 오후 6시에도 아이들은 반팔 반바지 차림으로 뛰어다니고, 어른들은 후드티 정도만 걸치고 있었어요. 어떤 분들은 벌써 여름이 오나 싶다고 하지만, 아직 오스틴의 아름다운 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봄이 되면 오스틴의 도로가에는 야생화들이 만발합니다. 빨강, 노랑, 파랑, 보라, 분홍빛 꽃들이 마치 하나님의 팔레트를 펼쳐놓은 듯 아름답게 피어납니다. 특히 텍사스의 주화인 블루보넷이 드넓은 평야를 파란빛으로 수놓을 때면, 오스틴으로 이주한 결정이 얼마나 옳았는지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됩니다. 사막의 이미지가 강한 텍사스지만, 오스틴은 화려한 들꽃과 콜로라도 강의 생명수를 머금은 우람한 나무들로 가득한, 제 삶을 한층 더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특별한 도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