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학 진학을 고민하던 고등학생 때부터, 서울을 떠올리면 묘한 감정이 들었다.
한 번도 살아본 적 없고, 가끔 수학여행이나 친척 방문으로만 접하던 도시.
그러나 ‘거기서 살아야 뭔가 이룰 수 있다’는 막연한 인식은 이미 머릿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건 나만의 감정이 아니었다.
친구들도, 선생님도, 심지어 부모님도 서울을 말할 땐 목소리 톤이 달라졌다.
무언가 더 있어 보이고, 더 기회가 넘쳐나는 곳.
창원에서 서울까지는 기차로 3시간이 채 걸리지 않지만,
그 거리보다 훨씬 먼 기회의 간극이 존재했다.
통계로도 그것은 드러난다.
대한민국 전체 인구의 절반이 수도권에 살고 있고,
전국 청년층의 60% 이상이 서울, 경기, 인천에 몰려 있다.
대학, 연구소, 대기업, 언론, 중앙부처, 국회, 창업지원센터까지.
모든 구조는 서울이라는 한 도시에 집중되어 설계되어 있다.
지방은 사실상 확률의 싸움에서 밀려난 공간이었다.
‘지방대 출신’이라는 말이 실제보다 더 큰 장벽이 되었고,
정책에서 말하는 ‘균형발전’은 현실에선 체감되지 않았다.
그런 구조 속에서 우리는 너무 자연스럽게 서울로 향했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서울로 갔고,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은 서울에서 원룸을 구했다.
지역에서 기업을 시작하려는 사람은 드물었고,
창원에 있는 중견기업보다는 서울의 스타트업 인턴을 더 선호했다.
심지어 지방에 남은 사람들도, 자신이 ‘남았다’는 사실을 설명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서울은 무언가를 제공했다기보단,
‘서울이 아니면 안 되는 구조’를 만든 데에 더 가깝다.
좋은 대학, 유명 회사, 공공 인프라, 미디어 중심.
정책 결정권자들의 다수도 서울에 거주하거나 서울 출신이었다.
그러니 지역 문제는 뉴스가 되기 어렵고, 정책 우선순위에서도 밀렸다.
지방은 단지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의 대상일 뿐,
“어디서 중심을 만들 것인가”의 대상이 아니었다.
특히 청년에게 지방은 더 이상 ‘출발점’이 아니라 ‘머무를 수 없는 곳’이 되었다.
이직률은 높고, 연봉은 낮고, 인프라는 부족했다.
지방에서 열심히 일해도, 서울에서 잠깐 일한 사람보다 경쟁력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니 누구나 떠날 수밖에 없었고,
그 선택은 때로는 슬프고, 때로는 당연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질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서울은 정말 이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는가?
지방이 이렇게까지 버려져도 되는가?
남아 있는 사람들의 삶은 왜 이야기되지 않는가?
산업통상자원부 자문단 활동을 시작하며
나는 그 질문에 다시 정면으로 마주서게 되었다.
첨단산업이든, 전통제조업이든,
‘어디에, 누구와 함께, 무엇을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지방은 더 이상 주변이 아니었다.
방산도, 조선도, 기계가공도, 대부분 지방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 산업이 멈추면, 그 지역도 멈췄고,
결국 그 지역이 멈추면, 국가의 근간도 흔들렸다.
그러나 서울 중심의 시야에선
이것이 잘 보이지 않았다.
정책의 언어는 추상적이고,
뉴스의 관심은 트렌드에 집중되었으며,
지방은 항상 다음 선거를 위한 후순위 공약으로만 소비되었다.
나는 이 구조가 사람을 떠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지방이 낙후된 게 아니라, 지방을 떠날 수밖에 없게 만든 시스템이 실패한 것이다.
청년의 서울행은 꿈을 좇은 이주의 이야기가 아니다.
선택지가 사라진 구조적 결과다.
그러나 이걸 청년 탓으로, 무기력으로, 열정 부족으로 돌릴 순 없다.
정치가, 제도가, 사회가 그렇게 만들었다면,
이제는 그 구조를 다시 설계할 때다.
나는 다시 묻고 싶다.
왜 우리는 지방을 떠났는가?
그리고, 우리는 어디로 돌아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