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이 망한다”는 말은 어느새 일상적인 문장이 되어버렸다.
사람들은 익숙하게 그 말을 쓰고, 또 쉽게 체념한다.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이 단지 ‘인구감소’만은 아님을 잘 알면서도,
우리는 그것을 하나의 운명처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묻고 싶다.
정말, 우리는 지방을 그냥 이렇게 두고 무너뜨릴 것인가?
지방의 붕괴는 ‘사람이 없는 것’에서 출발하는 게 아니다.
그보다 먼저 무너지는 것은 경제의 기반이고,
그 기반이 바로 제조업이라는 점에서
나는 지방의 문제를 경제구조의 관점에서 먼저 보고자 한다.
제조업이 무너지면 지방은 무너진다.
지방이 무너지면 국가 전체의 구조적 균형이 붕괴된다.
이 단순한 연결은,
지금 우리가 설계하지 않으면 회복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1. 제조업과 함께 사라지는 도시들
지방의 여러 도시들은 본래 산업도시로 성장했다.
창원, 울산, 구미, 포항, 안산, 여수, 군산…
이름만 들어도 익숙한 이 도시는,
우리나라 수출과 제조를 떠받치던 근간이었다.
그 안에는 수많은 중소공장과 부품기업, 협력업체가 존재했고,
이들은 거대한 산업생태계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이 도시들엔 공장 매물이 붙고 있다.
매년 수백 개의 기업이 폐업하고 있고,
남아 있는 기업도 구인난으로 기계 가동을 줄이고 있다.
나는 최근 창원의 한 정밀기계 가공업체를 찾았다.
10명이 근무하던 이곳은 숙련공이 2명 퇴직하고,
신입이 한 명도 채워지지 않았다.
기계는 그대로 있지만, 돌릴 사람이 없다.
대표는 말했다.
“기술은 익히면 됩니다. 근데 사람이 없으면 공장은 멈추는 거예요.”
그의 말이 남달리 와닿았다.
기술은 아직 남아 있지만, 사람이 사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도시의 심장인 공장이 멈추니 도시의 온기도 곧 차갑게 식어갈 것만 같다.
2. 수도권 쏠림, 지방 제조업의 구인절벽
문제는 단지 ‘일자리 부족’이 아니다.
지방에는 일자리도 있고, 숙소도 있고, 기술도 있다.
그런데도 청년은 오지 않는다.
왜일까?
서울로 가는 청년은 말한다.
“창원에서 일하면 발전이 안 보여요.”
“경력관리도 안 되고, 고립되는 느낌이에요.”
“살 데도, 놀 데도 없어요.”
곧 창원은 그렇게 특례시의 자격도 위협받고 있다.
청년에게는 ‘일터’만 필요한 게 아니다.
경력을 설계할 수 있는 경로,
인간관계를 확장할 수 있는 장,
삶의 감각을 누릴 수 있는 환경이 함께 필요하다.
지방 제조업체 대부분은 고졸을 현장직으로 뽑은 뒤
별다른 커리큘럼 없이 10년을 숙련으로 메운다.
그러다 30대 중반이 되면 관리자가 되든지,
이직하든지, 퇴사하든지의 선택지를 마주한다.
게다가 대학진학률이 높아진 지금은 지방의 곳곳에 전문대졸 이상의 학력을 가진
하지만 전혀 다른 전공의 사람들이 일자리에 떠밀려 혹은 생활고에 떠밀려
제조업으로 공장으로 일하러 가고 있다. 그들의 꿨던 꿈이 아닌 자리라서 그럴까
더욱 힘들게 하루를 견뎌내는 것 같다.
나는 그 과정이 너무 고립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교육도, 기술도, 커뮤니티도 없는 생산 현장은 ‘살아가는 곳’이 되지 못한다.
3. 수도권 과밀과 지방 공동화는 동시에 악화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청년들이 모두 몰리는 수도권 역시
그들을 위한 도시가 되지 못하고 있다.
전세가 4억, 월세 100만원, 출퇴근 2시간…
도시는 더 이상 기회의 땅이 아니라
압축된 생존의 공간이다.
서울에 사는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일 끝나면 그냥 집에 가. 모든 게 비싸고, 만나기도 어려워.”
서울은 숨이 막힌다. 지방은 사람이 없다. 둘 다 병들고 있다.
이것은 구조적인 설계의 실패다.
서울만을 중심으로 산업, 교육, 문화, 주거를 몰아넣고
지방은 그저 ‘지방소멸 대응’이나
‘균형발전 보조금’ 정도로만 다룬 결과다.
이제는 국가 전략 자체를 바꿔야 한다.
4. 해결방안에는 무엇이 있을까?
① 제조업을 국가전략 기반으로 재정의하는 것은 어떨까?
제조업은 더 이상 민간 산업의 영역만이 아니다.
국가의 자립, 안보, 수출, 기술 축적을 위한 전략적 자산이다.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해
전기차, 배터리, 반도체 공장을 ‘미국 내’로 불러들였고,
이는 단순한 고용 문제를 넘은 공급망 방어 전략이었다.
우리는 어떤가?
방산 부품의 상당수는 창원에서,
화학소재의 핵심은 여수에서,
정밀부품은 대구와 구미에서 생산된다.
하지만 이곳들이 정부의 전략적 투자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지방은 첨단화되지 않으면 지원받기 어렵고,
그 사이에 수많은 중소 뿌리기업과 협력사들이 사라지고 있다.
나는 고민한다.
지방 제조업 중심지를 ‘지역 산업전략지대’로 지정하는 것은 어떨까?
수출비중, 기술파급력, 공급망 중심성을 기준으로
R&D-세제-인력-입지-스마트화 패키지를 설계해야 한다.
② 청년 기술인력의 정착은 어떻게 이뤄낼 수 있을까?
청년이 남으려면 ‘급여’보다 ‘삶’이 설계되어야 한다.
국가에서 기술인을 위한 장기정착 인센티브 패키지를 제안하면 어떨까?
예컨대,
•기술 숙련도별 5년/10년/15년 장기근속 보조
•근무연차에 따른 주택 구입 지원
•지역 커뮤니티 중심의 기술인 클럽/연수 시스템
•가족 동반 지원금, 육아 지원, 배우자 일자리 연계
기술인은 외롭다.
그들은 ‘현장’이라는 단절된 공간에서
끊임없이 기계와 마주하며 생계를 꾸려간다.
그러나 이들이야말로 국가산업의 최전선에 서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에게 “공장이나 가라”는 식의 말 대신
“이 나라를 책임지고 있다”는 자부심을 줄 수 있어야 한다.
③ 지역이 직접 정책을 설계하도록 만들자
지방정부는 지금까지 ‘행정기관’이었다.
중앙에서 내려오는 사업을 집행하고, 성과지표를 맞추는 것이 주된 임무였다.
그러나 이제는 지방이 기획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지방자치법이 강화되고 해당 지자체에서
"지역 산업기획단"을 상설화할 수 있다고 본다.
이 기획단은 지역의 공장, 대학, 시민단체, 청년단체가 함께 모여
일자리, 주거, 교육, 정주 인프라를 통합 설계해야 한다.
서울시가 ‘전략기획실’을 중심으로
청년정책, 도시계획, 디지털 전환을 연결하듯,
지방도 산업 중심의 총괄 기획부서가 있어야 한다.
여기에 시민사회, 기술자, 청년, 기업인이
주기적으로 참여하는 지역 정책랩을 만들자.
민-관-산 거버넌스의 실질 작동 모델을 지방에서 만들 수 있다.
우리는 왜 지방을 지켜야 하는가?
지방이 무너진다고 모두가 서울로 오면 되는 것일까?
아니다. 그곳엔 자리가 없다.
이미 서울은 숨이 막힌다.
무너지는 것은 단지 지역이 아니라 이 나라의 기반구조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말하고 싶었다.
지방을 다시 살리자는 말보다,
“왜 우리는 지방을 이렇게까지 버려왔는가”를 되묻고 싶었다.
지금이라도 구조를 바꿔야 한다.
사람이 돌아오도록, 기술이 이어지도록, 경제가 살아나도록.
그 시작은 화려한 마스터플랜이 아니라, 하루를 버티는 사람들에 대한 설계여야 한다.
지방이 망하지 않으려면 지금, 우리가 바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