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떠났다.
지방에서 자란 아이들은 대학 진학과 함께 광역시로 서울로 갔고,
졸업 후엔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청년들은 떠났고, 중산층도 떠났고,
이제는 의료 접근이 어려워진 노인들조차
서울 근교로 이주한다는 뉴스를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그러나, 모두가 떠난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는 남았다.
떠나지 못해서가 아니라 남기로 결심해서 남은 사람도 있고,
떠날 수 있었지만 돌아온 사람도 있다.
어떤 이는 가족을 위해,
어떤 이는 고향을 떠나지 못해,
어떤 이는 지금 이곳에서도 충분히 삶을 꾸릴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여전히 그곳에 남아 살아가고 있다.
이 장은, 바로 그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창원 외곽의 한 공장에서 만난 50대 남성은
20년 넘게 정밀절삭 가공 일을 하고 있다.
그가 처음 기계를 다룬 건 20대 중반이었다.
사이클타임을 줄이기 위해 손의 각도를 수없이 바꿔가며
기계를 익혔고, 이제는 소리만 들어도 이상 여부를 안다.
그는 지금도 하루 10시간 이상 서서 일하지만,
높아진 최저임금으로 원가 경쟁력에서 밀려가며
원청인 대기업의 본사는 그의 존재를 ‘하청 생산직 라인 인원 1명’으로만 기록한다.
그는 말한다.
“여기 없으면 못 만드는 게 너무 많아.
도면 하나 바뀌면, 원청에선 다시 발주 넣는다고 난리지만
우린 그냥 바로 깎아서 맞춰줘. 이게 기술이야.”
그러나 그의 기술은 뉴스에도, 정책 보고서에도 나오지 않는다.
스마트 제조, 디지털 트윈 같은 첨단어의 홍수 속에서
그가 매일 만지는 선반과 밀링, 기름 먹은 공구는
구시대의 유물처럼 치부된다.
하지만 바로 그 공정에서
이 나라의 방산 부품, 전기차 모듈, 수출용 부속들이
지금도 매일 생산되고 있다.
그는 떠나지 않았다.
그는 이 산업의 마지막 실체적인 주체자 중 한 명이다.
경북 안동에서는 청년 두 명이 농업 기반 식품 가공 회사를 창업했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닌 뒤 돌아와,
지방자치단체의 청년 귀향 프로그램을 통해
폐교된 초등학교를 창고로 개조했다.
그들은 지역 농가와 직접 계약을 맺고,
자투리 농산물을 가공하여 판매한다.
초창기엔 물류 문제, 판로 확보, 브랜드 인식 등
수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여기선 물건 잘 만들어도, 팔 데가 없어요.
택배비는 비싸고, 박람회나 마켓은 서울에 있으니까.
근데 도시에서 ‘지방 청년이 뭔가 해본다’는 말은
되게 신선하게 들리는 거예요.
그래서 오히려 스토리로 어필했어요.”
그들은 남았다.
서울에서 취업할 수도 있었고,
더 안정적인 삶을 선택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남아서 실험하는 삶을 택했다.
그들이 말하는 건 대단한 혁신이 아니다.
그저 자신이 자란 땅에서,
지금도 계속되는 생산의 순환을
조금 더 지속 가능하게 만들고 싶다는 소망뿐..
나는 이런 사람들을 직간접적으로 만날 때마다
무언가 숙연해진다.
이들은 ‘성공’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버틸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버팀의 구조는 매우 취약하지만,
동시에 너무나 소중하다.
정치와 정책은 늘 떠난 사람을 붙잡으려 한다.
“청년 유출을 막자.”
“지방 정주 여건을 개선하자.”
그러나 정작 지금도 남아 있는 사람들의 삶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복지 인프라는 줄고, 의료는 멀고,
문화는 서울을 향해 있다.
남은 사람들의 삶은 정책의 대상이 아니라,
정책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그들은 지방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떠난 사람은 가능성을 품고 있고,
남은 사람은 현실을 견디고 있다.
그 차이는 매우 크다.
충청의 한 읍내의 부부는,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30대 중반에 귀향했다고 한다.
아이를 낳고 나니
도시에선 아이를 기를 수 없겠다는 결론이 났다고 한다.
“유치원 대기, 전세, 야근… 그냥 체력이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고향으로 내려왔어요. 연봉은 줄었지만, 살 만해졌어요.”
그들은 읍내의 작은 전셋집에 살며
남편은 지역 특수학교에서 행정직으로,
아내는 지역 아동센터에서 보육교사로 일한다.
이들은 스스로를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부부의 귀향은
지방의 가능성을 증명하는 하나의 서사다.
그들의 삶에는 서울에서 말하는 ‘혁신’이나 ‘성공’이 없다.
그러나 매일 아침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장을 보고, 동네 길을 걸으며
자신의 속도로 하루를 보내는 삶이 있다.
그것은 지방이 여전히
사람이 살 수 있는 공간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남은 사람들은 말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인터뷰에 익숙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특별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소중하다.
그들의 조용한 생존이
지방을 지탱하는 실질적인 뼈대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말한다.
“정주 인구를 늘리려면 혜택을 줘야 한다.”
“청년을 붙잡으려면 스타트업을 유치해야 한다.”
그 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 먼저 할 일은
지금도 남아 있는 사람의 하루를 살피는 것이다.
그들의 하루가 계속될 수 있도록.
그들의 노동이 보람을 가질 수 있도록.
그들의 기술이 이어질 수 있도록.
그들의 지역이 삶의 장소로 유지될 수 있도록.
나는 지방을 말할 때
떠난 사람만 말하는 구조가
이미 편향되었다고 생각한다.
그 구조는 항상 ‘도시 → 지방’의 방향만 상상한다.
그러나 지금 지방에 있는 사람들의 존재는
그 흐름의 반대를 증명하고 있다.
그들은 떠나지 않았고,
돌아왔고,
그리고 남기로 결심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지원을 주는 대상으로?
정책 대상군으로?
아니면, 진심으로 지방의 주인공으로?
지방의 회복은, 구조가 아닌 사람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사람은 지금도 그곳에 살아 있는, 남은 사람들이다.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어떻게 해야 지방이 망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