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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뀨어라운드 Jul 10. 2024

사랑이 너무 넘쳐서

아빠의 생일

주말에만 일찍 일어나는 아들


7월 7일은 내 생일이었다.


토요일엔 본가로 방문하여,

어머니와 누나, 조카와 함께 모여,

확대 가족의 생일 축하를 받았다.


그리고 일요일 이른 아침이 됐는데,

자고 있는 아이가 코가 막히는지,

숨 쉴 때마다 쉬익 쉬이익 코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오늘은 아빠 생일인데 좀 늦게까지 자주라’

마음속으로 빌면서, 조심조심 일어났다.


행여 아이가 깰 세라, 까치 발을 하고서는,

바닥에 놓인 휴대폰을 챙겨 몰래 방 밖으로 나왔다.


문소리도 안 나게 조용히 문을 닫고는,

미션 성공이라는 생각을 했다.


거실로 나와 소파에 누워서,

흐뭇하게 휴대폰을 하고 있는데 얼마 안 있어,


"크흐응 크흥!"


하고, 코 막혀서 세게 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이내 아이 방 문이 열렸다.


‘이런… 오늘도 실패다’


평일에는 8시에 깨워도 안 일어나는 아이가,

주말만 되면 8시도 전에

스스로 일어난다.


꼭 주말만 그렇다.


이건 참 놀라운 일이다.



왜 풍선이 없어?


아이는 졸린 눈을 비비며 나와,

내가 있는 소파로 다가왔다.


나는 흔들리는 마음을 숨기고 태연하게

아이에게 아침 인사를 건넸다.


“일어났어? 일찍 일어났네~~”


아이는 더 자고 오라는 나의 말에는,

단호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자기 몸 반만 한 라이언 인형을 끌어안고,

소파로 올라와 아빠 옆에 찰싹 달라붙었다.


‘아침의 여유는 오늘도 텄구나’


나는 일어나, 창문으로 다가가 커튼을 열었다.

그러자 아이가 의아한 얼굴로 묻는다.


“아빠, 왜 풍선이 없어??”


아이의 생일 때마다 우리는,

생일 축하 풍선을 거실 창문에 붙였었다.

기다란 가렌다와 함께 장식하고,

아침에 일어난 아이를 맞이해주곤 했었다.


그러다 보니,

왜 오늘은 아빠의 생일인데

풍선이 하나도 달려 있지 않느냐며

나에게 도리어 물었다.


그런데 아들아,

풍선은 네가 준비해야 하는 거 아니니…

아빠 생일에 아빠가 풍선 부는 건 좀 그렇지.


나는 애써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도 여전히 아이는 중얼거린다.


“할머니 생일 때도 풍선이 붙어 있었는데, 왜 아빠 생일엔 없지??”


그때도 엄마와 아빠가 준비한 거란다, 아들아.

그래도 생각해 준 건 고맙다.



누구의 생일날인가


하늘은 잔뜩 찌푸려 있고,

비도 살금 살금 내리는 날씨였다.


아내와 아이를 교회로 태워다 주고 돌아왔는데,

영 몸이 찌뿌둥했다.


침대에 누워서,

인스타도 들어가 보고, 유튜브도 들어가 봤다.

‘볼빨간사춘기’가 부른

‘에피소드’라는 노래가 듣기 좋았다.


오늘따라 이렇게 하염없이,

혼자서 음악을 듣고 싶은 기분이었다.


혼자 있는 시간은 그 얼마나 달콤한지,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가서,

어느새 아내와 아이가 교회에서 돌아왔다.


아이는 돌아오자마자,

자전거가 타고 싶다며 나가자고 졸라댔다.

축구도 하고 싶다며 축구공은 엄마가 들란다.


아빠는 자전거 뒤 손잡이를 잡고,

엄마는 축구공을 들고 집을 나섰다.


집을 나오는데 몸이 천근만근 돌덩이 같았다.

아내 얼굴을 보니, 아내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그럼에도 아이는 힘이 넘쳐흘렀다.


아내와 내가 번갈아 가며

아이의 자전거를 잡아주며 아파트 앞을 달렸다.

자전거에서 잠깐 내리면, 축구공을 같이 찼다.


이제 그만 들어가재도

더 하고 싶다고 요지부동이다.


야… 오늘은 아빠 생일인데,

그래도 아빠 말 한번 들어줘야 하는 거 아니니.


이건 내 생일인가? 아이의 생일인가?

계속해서 혼동이 왔다.



사랑이 너무 넘쳐서


점심은 집 근처의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을 찾았다.


안 좋은 컨디션에, 자전거와 축구까지 했더니,

몸이 축 늘어졌다.

날씨는 또 왜 이렇게 습한 건지.


밥은 좀 여유롭게 먹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아이 보고 엄마랑 같이 앉으라고 권했지만,

아이는 꼭 아빠 옆에서 먹고 싶단다.


“난 아빠 옆에서 먹을래!!”


끄덕여지지 않는 고개를 억지로 끄덕이며,

아이 옆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자 아이가 내게 바싹 붙어 앉으며 말했다.


“아빠~~ 우리 꼭 붙어서 먹자?!”

“그, 그래…”


하지만 밥 먹는 것은 역시 쉽지 않았다.


아이는 샐러드를 자기가 덜어주겠다며,

샐러드 집게를 손에 쥐고 놓질 않았다.


오늘은 아빠 생일이니까,

자기가 해줘야 한다 했다.


고맙다 아들아…?


그렇게 식사를 어찌어찌하고,

바로 코앞의 5분 거리 카페를 가기로 하고는,

결국 몇십 분을 걸려 도착했다.


아내에게 아이와 2층 자리를 맡고 있으라고 하고,

1층에서 주문 줄을 기다렸다.


그런데 어느새 또 아이가 내 옆으로 달려와

손을 흔들어댄다.


“아빠!! 난 아빠랑 같이 있을래!!”


아들아… 고마운데… 정말 고마운데,

아빠는 조금 혼자 있고 싶다…?


잠시 카페에서 시간을 보낸 뒤,

우리가 매주 가는 어린이 도서관을 들렀다.


그리고 나의 피곤한 기색을 눈치챈

아내는 내게 먼저 집에 가 있으라고 했다.


아이와 함께 도서관에 좀 더 있다가

집에는 버스를 타고 가겠으니,

먼저 가서 쉬라고 했다.

역시 아내뿐이다.


그렇게 혼자 집에 돌아와 보니,

마음이 헛헛하다.


아내와 아이랑 함께 있을 땐,

혼자 있는 시간이 간절히 그리웠는데,

막상 혼자 있게 되니,

좋으면서도 마음이 쓸쓸했다.


오늘 하루 동안,

남편의 컨디션을 눈치챈 아내가,

그래도 생일이니까 애써 웃으며

명랑하게 말을 건네던 것도 생각났고,


아이가 아빠 생일이니까 더 사랑을 많이 주겠다며

어디 가든 꼭 붙어서 계속

아빠, 아빠 하던 것이 생각났다.


참 내겐 과분한 사랑을 넘치게 받아서,

그 사랑의 무게에 오히려 힘들어한 것이

스스로 조금 후회가 됐다.

(많이는 아니고, 조금이었다.)



나를 위한 선물


우리 부부는 올해부터,

우리를 위한 생일 선물도 꼭 챙겨 보자고 다짐했다.


늘 다른 가족이나 아이를 위해서만 무엇을 사고,

우리 스스로를 위해서는 돈을 쓴 적이 별로 없었는데, 올해는 우리 스스로도 챙겨보자는 것이었다.


나를 위한 선물을 뭘 살까 고민하다가,

맥북으로 결정했다.


10년 전에 50만 원 주고 산 삼성 노트북을

지금껏 쓰고 있었는데, 느려도 너무 느렸다.


아내에게 이 말을 하니,


“그 그래. 근데 얼마야?”


말을 더듬는다.


당근으로 중고를 사겠다며, 아내를 안심시켰다.


아내의 허락을 받은 후,

오늘 당장 당근 거래를 하기로 했다.



저녁 9시 넘어서 연락해서,

9시 40분에 만나기로 하고는,

비 오는 밤길을 초고속으로 운전하여 다녀왔다.


원래 이런 건 고민도 길게 하고, 탐색도 길게 해서,

구매까지 하세월인 나인데,

이번에는 고민도, 구매 결정도 초스피드였다.


그만큼 오늘은 나 스스로에게

선물을 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생일이 지나갔다.


과한 사랑 속에 하루 종일 정신을 못 차리다,

마지막엔 거한 생일 선물까지 받았으니,

결과적으로는 분에 넘치게 감사한 생일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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