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면 ‘보통의 가족’에서 벗어남을 느끼는 이유

30대 아들이 ‘보호자’로, 어머니가 ’친구‘로 바뀌는 추석

by 에세이 작가 훈

추석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별 의미 없는 명절이자 빨간 날, 쉬는 날의 개념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시간을 보내는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

유치원부터 10대에는 친인척들과, 20대에는 부모님과, 30대부터는 '나’와 시간을 보내고 있다.

10대 때까지는 추석 연휴가 되면 그저 맛있는 음식을 먹고, 부모님이랑 친인척분들께 인사드리러 따라다닌 경험이 전부였다.

20대에는 성인이 되고 군대를 갔다 오면서 부모님과 주로 지냈다.

30대부터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가장이 된 내가 중심이 되어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20대부터 부모님과 함께 지낸 건 맞지만 친구들한테 시간을 좀 더 쏟은 건 사실이다.

그러다 20대 후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내가 명절을 주도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생겼다.

이때부터 '나'를 기준으로 추석의 계획들이 짜이고 있다.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가면서 추석의 본질이 '즐거움'에서 '의무'로 바뀌었다.

내가 명절의 중심이 되면서, 그동안 보이지 않던 어머니의 뒷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릴 때는 풍성하게 차려지던 상차림, 방문하던 친척 집의 순서, 친척들을 위한 용돈 봉투 같은 '당연했던 것들'이 사실은 부모님의 ‘치열한 노력과 무게’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깨달음은 단순한 슬픔을 넘어, 나 역시 그 무게를 짊어져야 한다는 인생의 통보이다.

30대 이후부터 추석은 더 이상 ‘쉬는 날'이 아니라, ‘책임지는 날'이 되어 버렸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친구들도 하나, 둘씩 결혼을 하고 자식이 생기면서 본인들 가정에 충실하게 되어 명절에도 만나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게 되었다.

명절에 친구들과 멀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 동시에 가장 외로운 현실이다.


20대의 추석이 '가족 행사 후 친구들과의 술파티'였다면,

30대의 추석은 '어머니와 조용히 텔레비전을 보거나, 혼자 산책하는 시간'이 된다.

친구들이 각자의 가정을 꾸리고 본인의 집으로 돌아가는 순간, 나는 세상이 만들어 놓은 '정상의 가족' 그림에서 잠시 벗어난 듯한 외로움을 느낀다.


하지만 이 외로움은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나'를 중심으로 세상을 재편하는 과정이 되었다.

나는 이 시간을 통해 어머니와의 관계를 다시 정립했다.

20대까지는 ‘보살핌을 받는 아들'이었다면, 30대 이후부터는 '어머니를 보살피는 보호자'가 되었다.


명절에 어머니와 단둘이 보내는 시간은 어색함보다는 묵직한 연대감을 형성한다.

어머니의 잔소리나 걱정 속에서 나에 대한 깊은 애정을 다시 확인한다.

30대~40대의 추석은 친인척과의 관계가 줄어드는 대신, 가장 가까운 가족과의 관계 밀도가 높아지는 시간이 된다.


성인이라면 누구나 겪는 '관계 다이어트'의 필연적인 결과라 생각한다.

결국 30대 이후부터 추석은 나에게 자아 성찰의 시간이다.

아버지의 그림자를 벗어나, 나만의 방식으로 추석을 정의한다.

명절 음식을 간소화할지, 여행을 떠날지 모든 선택은 내가 해야 한다.


선택 속에서 나는 어떤 가치관을 가진 사람인지를 확인한다.

명절이라는 전통적인 틀을 깨고 '나'의 행복과 가족의 평화를 최우선으로 두는 것이 바로 내가 생각하는 가장 건강한 방식이라 생각한다.

이제 추석은 더 이상 외부의 강요나 의무가 아니다.

그것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어머니, 가족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 온전히 시간을 투자하는 가장 중요한 이정표다.

과거에 대한 후회는 버리고, 지금 내가 가장 책임져야 할 것에 집중한다.


나에게 추석이라는 명절은
나이가 들수록 '가족'이라는 공동체 의식과 '나'라는
개인의 독립성을 동시에 성찰하게 만드는,
인생의 가장 깊은 이벤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