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기상청은 틀려야 제맛

끝날 때까지는 결코 끝난 게 아닌 우리들의 사계절

by 에세이 작가 훈

2025년을 되돌아봤을 때 기억 속에 남은 장면들은 미리 세운 계획에 있지 않았다. 오히려 포기하려던 순간에 찾아온 뜻밖의 행운과, 끝까지 믿음을 버리지 않았을 때 마주한 반전들이 나를 성장시켰다.


흐린 하늘이 거짓말처럼 맑게 개고, 패색이 짙던 경기가 순식간에 뒤집히는 드라마 같은 순간들을 통해 나는 삶을 대하는 새로운 태도를 배웠다. 나의 2025년을 관통하는 가장 뜨거웠던 두 가지 기록을 남겨본다.


제주의 푸른 바다가 허락한 진심의 시간

KakaoTalk_20260310_234218535.jpg

지난 5월 친구들과 함께 가는 제주도 여행을 손꼽아 기다렸다. 야속하게도 출발 전날까지 장대비가 쏟아졌다. 야외 활동은 포기하고 숙소에만 머물러야 하나 싶어 아쉬운 마음으로 짐을 챙겼다.


하지만 제주도 여행 당일 아침, 눈을 떴을 때 창밖에는 빗방울이 아닌 쨍한 햇살이 가득했다. 어제의 걱정이 무색할 만큼 푸른 하늘이 펼쳐졌고, 제주도는 마치 우리를 기다렸다는 듯 가장 맑은 얼굴로 반겨주었다.


하늘이 내려준 날씨 속에서 우리는 망설임 없이 바다로 향했다. 배 위에서 즐긴 낚시는 기다림 끝에 찾아오는 전율을 선물해 주었다. 파도를 가르며 낚싯대를 드리우고 입질을 기다리는 시간은 그 자체로 힐링이었다.


손끝에 전해지던 묵직한 손맛과 친구들의 환호성은 일상의 스트레스를 단번에 날려버렸다. 이어 진행한 스노클링 역시 환상적이었다. 투명한 바닷속을 유영하며 마주한 풍경은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아름다웠다.


물안경 너머로 비치는 알록달록한 생태계와 햇살은 내면의 복잡한 생각들을 맑게 씻어내주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귀했던 건 2박 3일 내내 파도 소리를 배경 삼아 나누었던 우리들의 '진솔한 대화'였다.


낮의 활기찬 웃음이 잦아든 밤, 맥주 한 캔을 기울이며 우리는 그동안 묵혀두었던 이야기들을 꺼냈다. 평소라면 쑥스러워하지 못했을 속마음과 고민을 나누며 서로의 존재를 다시금 깊게 확인했다.


우울한 얼굴의 하늘이 맑은 얼굴로 바뀐 것처럼 이번 여행은 2025년의 행운처럼 추억이 되었다. 혼자가 아닌 함께였기에 그 맑은 하늘도, 밤의 대화도 더 찬란하게 빛날 수 있었다.


8회의 기적,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KakaoTalk_20260310_234406512.jpg

제주가 주는 여유만큼이나 나를 설레게 한 것은 전국 야구장 투어였다. 현장의 흙 내음과 관중석의 뜨거운 열기는 정체되어 있던 나를 다시 살아나게 만드는 원동력이었다. 그중에서도 결코 잊을 수 없는 극적인 경기가 하나 있다.


경기 중반까지 응원팀은 0:7의 스코어로 일방적으로 밀리며 무기력하게 끌려갔다. 관중석 곳곳에서는 탄식이 들려왔고, 나 역시 패배의 기운을 느끼며 맥주잔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기적 같은 '약속의 8회'가 시작되었다.


안타 하나에 함성이 커지더니, 볼넷 하나에 잠자고 있던 희망의 불씨가 다시 타올랐다. 선수들은 전광판의 점수와 상관없이 승리를 향해 달렸고, 마침내 역전 적시타가 터지던 순간 야구장은 거대한 축제의 장으로 변모했다.


8회 말 9:7의 역전. 그 결과보다 나를 전율하게 했던 건, 패색이 짙던 상황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선수들의 집념과 팬들의 함성이었다. 승리와 함께 들이켰던 생맥주의 목 넘김은 내 인생에서 가장 달콤하고 시원했다.


그 알싸한 시원함은 단순한 갈증 해소를 넘어, 불가능을 뒤집은 승리의 맛 그 자체로 각인되었다. 삶 역시 9회 말 2 아웃 전까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고, 포기하지 않는 자에게만 허락되는 반전을 직관하며 큰 교훈을 얻었다.


그날의 뜨거웠던 함성과 맥주 향기는 내가 현실의 벽에 부딪혀 좌절할 때마다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하는 소중한 에너지가 되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만들어낸 기적은 2025년 최고의 장면이었다.


제주도의 맑은 하늘과 야구장의 역전승은 나에게 동일한 메시지를 던졌다. 비가 온다고 해서 미리 실망할 필요도, 지고 있다고 해서 미리 포기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인생의 기상청은 틀릴 수 있고, 경기의 흐름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


2025년의 이 경험들은 앞으로 내가 마주할 수많은 '비 오는 날'과 '패배의 순간'들을 버텨낼 힘이 되어줄 것이다. 어려움 속에서도 결국 해는 뜰 것이며, 끝까지 최선을 다한다면 역전의 기회는 반드시 찾아온다는 믿음을 얻었다.


내년에도 내 인생의 경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2025년에 얻은 '반전의 묘미'를 기억해 기꺼이 다음 타석에 들어설 준비를 한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매 순간을 만끽하며 빛이 났던 2025년에게 고마운 인사를 전한다.

매거진의 이전글마흔둘을 넘기고 이것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린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