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정말이지 엉망진창인 아침이었다.
사소한 짜증을 위트와 재치로 넘기는 법을 나는 아직도 덜 배웠다.
감정이 들어간 말은 사소한 짜증을 키웠고 화가 되었다.
참았던 화가 폭발한날. 나의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낸 날이었다.
그간의 노력들로 공들여 쌓은 탑을 내 발로 걷어차버렸다는 것에 더 화가 났다.
부모가 분을 내고 성을 내면 아이는 배우지 못한다.
수많은 시간들을 통해 절절하게 깨달았으면서도 항상 쉽지 않다.
그 후 자책, 후회, 죄책감으로 가득 찬 수렁에 빠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물론 처음 느끼는 것도 아니지만 '그런 날도 있지'하고 치부해 버리기엔 내상이 너무 깊었다.
누군가에게 호소하고 싶다가도 내 얼굴에 침 뱉기라는 생각에 그만두었다. 그리고 주님께 눈물로 울부짖었다.
주님! 저는 왜 변하지 않습니까!!!! 저도 변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너무 화가 납니다. 저를 변화시켜 주시고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언제나 반복되는 것 같은 기도제목이 오늘따라 참을 수 없을 만큼 질력이 나면서도 간절했다.
그때 이 말씀이 떠올랐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피를 토하듯 갈급할 때 내주 하시는 성령님께서 탄식하시며 떠올려주신다는 말씀이 이런 것일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 대한 말씀을 찾아보았다.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에게는 복이 있도다
-시편 112편 1절-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시편 128편 1절-
항상 경외하는 자는 복되거니와 마음을 완악하게 하는 자는 재앙에 빠지리라
-잠언 28장 14절
바로 어제 깊은 회개란 대체 무엇인가에 대해 주님께 물었었다.
아직도 '나는 그렇게까지 나쁜 인간은 아닌데 '하는 마음이 남아있었다.
나의 죄악 된 모습을 보여주시며 그럼에도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잊지 않아야 하는데, 나의 감정에 치우쳐 아직도 주인 되고 싶어 하는 교만을 깨닫게 하신다.
주님께 맡긴다는 표면적인 기도로 스스로에게 조차 덮어 숨기고 있던, 내 힘으로 변하고자 했던 마음을 드러내주셨다. 그러면서 왜 변하지 않냐고 주님께 울부짖을 때 진정한 마음으로 주님이 주님 되심을 인정하지 못하고 기도를 이용해 주인 되고자 했던 나의 오만을 바라보게 하셨다.
진정 벌거벗겨져야만, 바닥을 쳐야만 알게 되는 것 그 또한 죄인 된 본성때문임을 고백하게 하신다.
이제 내가 해야 할 것은 기도를 이용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다.
주님의 주되심을 인정하고, 내 의지로 바꾸려 하지 않고 항상 주님이 바라보고 계심은 인식하고 의식하며 삶을 살아내야 한다는 것을 깊이 알게 해 주심에 감사했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화가 나도 공공장소에서는 어쩔 수 없이 참게 된다. 그것은 보는 눈이 많이 때문이다.
하지만 나 혼자 있을 때나 아이와 단둘이 있을 때는 올라오는 감정을 참을 수 없게 되는 나의 비겁함을 대면해 본다.
천지를 창조하신 주님이 보고 계신다는 것을 의식한다면 내가 과연 그럴 수 있었을까? 어리석게도 나만 아는 나의 죄도 주님은 다 아신다는 것을 계속 잊고 살았다.
스스로 바뀌지 못하는 것을 인정하자. 그리고 주님이 계속 바라보신다는 것을 의식한다면 계속 죄인이고 비겁한 나는 주님이 무서워서라도 같은 잘못을 덜하지 않을까? 그렇다고 겁주어 자녀를 가르치는 주님이 아니다. 처음시작은 주님의 강력한 권위를 통해 가르침을 받고 그 후에 나에게 선하게 일하실 것이라는 것을 믿는다.
부러뜨린 것과 부러진 것의 차이.
세상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부러질 바엔 부러뜨리는 게 낫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주님은 우리를 만지실 때 억지로 부러뜨리지 않으신다. 미련해 보일지라도 그 속에서 조물자가 피조물을 대하는 존중감을 느끼게 하신다. 그리곤 진정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이다.
주님의 일하심으로 서서히 부러져 가야지.
잠언의 말씀이 나를 만져주심을 느낀다.
주님을 경외하는 자는 복되거니와 마음을 완악하게 하는 자는 재앙에 빠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