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의 2월
1월이 끝난 후면 조금 더 여유로워질 줄 알았는데, 일적으로도 바빠지니 마음의 여유는 이미 없어진지 오래였다. 3년, 5년, 7년. 홀수해가 되면 다들 이직을 생각한다던 데 잠시 나도 이직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도 두 개정도의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해보는 경험을 갖고서 이직을 생각해보는게 목표였건만. 일이 바빠지고, 마음의 여유도 점차 없어지고, 체력적으로도 한계에 가까워지니 현재 상황에 대한 불안한 생각들이 들기 시작했다. 과연 현재의 내 모습은 현재의 직장에서도, 이직시장에서도 매력적일까? 서른을 시작한 나의 모습이 나중에 봤을 때도 후회하지 않을 수 있는 삶을 보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치열했던 하루를 보내고, 뜨거워진 머리 좀 식힐 겸 자연스럽게 SNS 앱을 열었다. 평소에 알지도 못했던 이야기나 요새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글들이 번쩍이고 있었다. 어떤 사각형은 동영상이 자동으로 재생되며, 뒤의 내용을 알고 싶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클릭하게끔 열심히 광고하고 있었다. 나도 수많은 엄지손톱만 한 사각형 중 서른에 관한 한 글귀를 발견하곤 무심코 눌렀다. 그 포스팅의 제목은 “사람은 서른 다섯 살 이후부터 후져진다”였다. 왜 하필 서른다섯부터일까 라는 호기심에 눌렀고, 어느 블로그로부터 캡처해온 글에 곧바로 뒤통수를 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잠시 깊은 생각에 빠지게 했던 그 글의 내용은 이렇다.
“35세 까지는 다들 비슷하다. 이건 돈과 자산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기본적 인간의 소양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밥 먹을때 쩝쩝거리지 않기, 말 곱게 하기, 셔츠 다려입기, 샤워하기 등. 대부분 다 지키는 일들이며, 별로 이상한 사람 많이 없다.
35세 이후부터 이걸 제대로 못하는 사람들이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주변인들이 나에게 잔소리하기를 포기할 때가 되었다는 신호이다. 35세 부터는 더 이상 나의 항로에 대해 주변인들이 간섭을 하지 않는다. 충고 해 봤자 서로 감정만 상하고, 한들 사람이 바뀌지 않는 나이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포기하기 때문이다.
신입사원한테 옷 깔끔하게 입으라는 부장은 있어도 40세 과장이 그러고 다니면 그냥 냅둔다. 이건 회사에서나 친구관계에서나 마찬가지다.
이때부터 근본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더 이상 남들이 지적해 주지 않으니 근본으로 돌아가는 거다. 자기관리가 되는 사람은 계속 유지하지만 안되는 사람은 여지없이 무너지는게 그 나이다. 이 편차가 남자는 상대적으로 훨씬 심하게 벌어진다. 충고 해 봤자 안좋은 소릴 들으니까.
35가 넘은 나이에도 나에게 충고를 하고 잔소리하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에게 애정이 남아 있는 사람일 것이다. 대부분은 그 역할을 엄마가 맡는다. 잔소리하고 짜증 받아주고. 오늘도 상처받을 걸 알지만 자식에게 잔소리를 한다, 아직 애정이 많이많이 남아있어서.”
– 원글 : [블로그, 하멜른, https://m.blog.naver.com/hameln3/223007980122]
짧은 글을 읽은 후 처음엔 어느새 삼십 대가 된 내 모습을 훑었고, 곧이어 서른다섯 살 이상의 다른 선배들이 뒤이어 떠올랐다. 순간순간 나도 모르게 남을 평가하고 판단했던 옹졸한 마음이었기에 썩 기분 좋지는 않았지만, 나도 그 나이가 되었을 때 과연 어떤 모습이 되어있을까, 어떤 모습이 되면 좋을까 고민하게 되었다. 당장 내 모습을 그대로 내가 생각했던 그 불편한 시선을 되돌려보더라도 썩 좋은 말들만 생각이 날 것 같진 않았다. 반성의 의미로 돌아보고, 나는 서른다섯 전에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지 한번 생각을 해보고자 한다.
5년 후인 서른다섯 살. 사람은 바뀌기 쉽지 않다는 것을 많이도 들어왔고, 나도 그런 사람이기에 차곡차곡 습관을 만들어 가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지금 서른 살의 내가 바라보았을 때 어떤 서른 다섯 살의 선배가 멋져 보일까. 막연히 상상만 하고, 목표를 잡다 보면 너무 괴리감이 들 것 같다. 우선 주변의 직장 선배 중, 그들과의 관계 속 지나쳐간 순간 중 그들의 멋져 보였던 모습들을 기억해본다.
균형잡힌 몸과 깔끔한 옷차림
회사에 입사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겉모습만 보고도 ‘저분 좀 신뢰가 간다. 멋지다’라는 느낌을 느꼈던 분들이 있었다. 공통점으로는 대부분 깔끔한 옷차림과 균형 잡힌 몸. 그들은 첫인상부터 일 잘하는 포스가 느껴졌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심지어 현장을 오가느라 바쁜 직무였던 분이었는데도, 항상 말끔하고 잘 다려진 셔츠를 입고, 구두를 신고 있었다. 현재의 난 연구실 실험을 핑계 삼아, 편한 후드와 맨투맨을 주로 입고 다니고 있다. 옷에도 워낙 관심이 없던 터였고, 한번 마음먹고 살 때에도 무조건 편한 옷을 사 왔었다. 이번 기회에 조금은 불편하겠지만, 좀 더 말끔한 모습으로 변신해봐야겠다.
처음 이야기를 나눌 때, 서먹함 깨기 차원에서 취미를 물어보았을 때도, 대부분 운동을 취미로 하고 있었다. 물론 원래부터 하나의 스포츠 종목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 관리 차원에서의 운동하고 있었다. 일도 잘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도 이미 잘 챙기고 있었다는 것을 한 번 더 느꼈다. 현재 PT를 크게 맘먹고 끊어놓은 상태에서, 나약한 마음에 개인 운동은 하지 않고 있었다. 당장 오늘이라도 바로 어제 배운 운동을 반복하고 익혀봐야겠다. 일단은 주에 세 번만이라도 꾸준히 가보는 걸로. ‘작심삼일도 여러 번 하면 된다’ 하지 않는가. 실패하더라도 매주 결심해 3일이라도 잘 가봐야겠다.
단단한 사람
직장 생활하면서 선임에게 한번 아! 하고 배울 때가 있었던 것 같다. 내가 느끼기에 큰일처럼 느껴지는 일도, 잔잔한 호수에 돌 하나 떨어진 것처럼 대하는 모습. 물론 어려운 일이야 같은 상황이었으나, 그들은 차분했다. 특히 지금 함께 일하고 있는 선임 중 한 분은 그럴 때마다 상황을 정리하고, 불편한 감정이 드는 것도 충분히 이해해주는 말과 함께 상황을 차분히 정리해나갔다. 그 순간 잠시의 나의 기분은 한순간 투정같이 느껴졌고, 다시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다. 때때로 내가 가진 지식이나 경험이 부족할 때마다 부정확한 발음과 급한 마음이 느껴지곤 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발표할 때에도 내가 취약한 부분에선 줄곧 그러한 모습들을 보였던 것 같다. 내가 일하고 있는 분야에 대해서 좀 더 공부해 단단한 실력을 갖춰놓으면 언젠가 나도 저런 상황 대처 능력과 여유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또 하나의 특징은 예쁜 말을 쓴다는 것. 어려운 상황에서 한두 마디의 불편한 말들이 분위기를 망치고,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을 그분들은 알고 있었다. 상대방의 마음에 동조하는 말을 할 때도, 그 어떠한 상황에도 비속어 또는 험한 말들을 그들은 쓰지 않았다. 또한 자신보다 어린 사람에게도 함부로 편한 호칭을 쓰지 않았다. 이름 뒤에는 항상 직급이 붙었고 그 끝맺음은 존댓말이었다. 이럴 때마다 멋진 선배, 멋진 어른이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남들을 대할 때 후져지지 않도록, 예의 있고 예쁜 말들로 대화할 수 있도록 좋은 글과 좋은 말들을 많이 듣고 말해봐야겠다.
배우는 삶
일 잘하는 선배를 보며 신기한 점은 어떻게 저렇게 모든 걸 알지? 라는 점이었다. 같은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느낀 점은 배움에 인색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일에 대한 지식이나 업무적인 기술 외로 새로운 프로그램 툴이라던지 아니면 흔히 젊은 세대의 문화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았다. 또 그러한 부분들에 대해 항상 알려달라는 말을 자주 했고, 그 덕분에 주변에 있던 나도 새로운 것들에 대해 접해볼 기회가 생기기도 했다.
또 하나의 특징으로는 가끔 일을 하면서 궁금한 점이 생길 때면, 궁금했던 질문에 대한 답변과 함께 자신이 예전에 참고했던 책들을 건네주는 사람들이 많았다. 외적으로 보이는 노력 외에도 꾸준히 공부하고 있었다는 것에 한번 더 놀랐던 것 같다.
일단 위의 세가지 만이라도 서른다섯전에 조금씩 따라해봐야겠다. '꾸준히 하다보면 내 몸에도 익겠지'라는 생각이다. 사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주변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에 대해, 관련된 사람들에 대해 불평을 마음속으로 늘어놓곤 했다. 앞서 본 글처럼 그 사람들도 한 순간에 바뀌기 쉽지 않은 나이임을 이해하고, 아직 바꿀 기회가 있는 나부터 마음을 고쳐먹어야 겠다. 서른살이 되었음에도 아직까지 주변의 간섭과 충고가 존재하는 것에 대해 감사(?)를 느끼며, 서른 다섯이 되기 전에 위에 나열했던 모습을 나도 갖춰보기 위해 노력해봐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