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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의 서른 May 29. 2023

[친구] 얘들아 나랑 친구해줘서 고마워!

현재의 4월


  꼭 이 달의 주제를 받으면 괜히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던 그 단어가 멀게 느껴지고 물음표를 띄우게 된다. 이번에도 “친구”라는 흔하디 흔한 단어가 괜시리 낯설게 느껴졌다. 그럴 때는 역시 사전이다. 친구의 사전적 정의가 무엇인지 궁금해서 찾아보니,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이라고 한다. 만난 지 하루 만에 친구가 되는 경우도 있지 않나? 싶긴 한데, 진정한 친구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그런 인연이 오래 유지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수긍이 가는 정의이다. 하지만 오래 친했던 친구도 소원해지기도 하고, 마음이 상하기도 하고, 또 친하지 않았던 친구인데도 갑자기 친해지기도 한다는 점에서 친구란 참 알 수 없는 것 같다. 어렸을 때는 대부분 친구라는 것이 상황적 요인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나. 동네친구. 학교친구. 학원친구. 동아리 모임 등등... 하지만 상황적 요인에 만들어진 친구가 그 상황에서 벗어난 이후에도 유지되기란 매우 어렵다. 어느 한 사람의 노력이 아니라 두 사람의 상호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그렇다. 


  나이가 차니까 웬만하면 이제 10년 지기가 껌이다. 친해질 당시에는 이렇게까지 인연이 유지될지 당연히 몰랐다! 오랜 친구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하다보면 현재 생활은 다 다르다보니 공통 이야기인 옛날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는데 그 때마다 우리가 나이 들었음을 실감하게 된다. 지인과 허구만 해도 20년 지기를 향해 달려간다. 우리가 이렇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일단 난 아니다. 우리가 20년 지기라니! 나이가 들수록 이렇게 오랫동안 나를 봐 온 친구들이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다. 사회에서 새로 만나 인연을 쌓기 시작한 친구들이랑은 비교할 수 없는 오랜 친구들만의 편안함이 있다. 


  나이가 나이이다 보니 최근 결혼을 하는 친구들로부터 청첩장을 받는 일이 종종 생기고는 한다. 내 친구가 결혼이라니! 이 또한 격세지감을 느낀다. 각자의 인생을 사느라 예전같이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결혼 준비다 뭐다 바쁠 친구들이 시간을 내어 나에게 결혼 소식을 알리러 직접 만나 청첩장을 주는 친구라는 사실이 너무 고맙다. 그들 입장에서는 부담을 주는 것 같아 미안하다고는 하지만, 그런 게 친구 아니겠나. 그리고 이럴 때마다 남자도 없으면서 만약 나도 결혼을 하게 된다면 이 소식을 전할 친구들이 누가 있는지 세어보고는 한다. 그러면 나름 내 기준 꽤 많은 숫자에 놀라고는 한다. 가끔 스스로 성격이 이상한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끼리끼리는 사이언스라고 하던데, 내 곁에 좋은 친구들을 보면 나도 꽤 괜찮은 사람이구나 싶기도 하고! 세상에 친구 한 명만 있어도 성공한 인생이라는데, 이만하면 아주 성공한 인생이다.


  어느 집단에 있던지 둘도 아니요 셋도 아니요 감정을 공유할 단 한 사람만 있더라도 성공한 것이라 생각하는데, 내가 거쳐 간 대부분의 집단의 친구들과 아직까지 친구로 남아있어 나의 역사 나의 발자취를 기억해 줄 친구들이 있음에 감사하다. 벌써 20년 지기도 넘은 동네친구들이자 초등학교 친구들 4명, 중학교 친구들 지인 허구 2명, 고등학교 친구들 6명, 대학교친구들 8명, 대학원친구들 3명, 그리고 여행 다니면서 만난 언니, 직장, 인턴활동 중에 만난 친구들까지. 약 30명 남짓 되는 친구들은 나의 보물들이다. 그들은 지인 정도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연락이 끊기지 않고 언제든 약속을 잡아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나는 친구로 생각한다. 각자 바쁜 와중에 시간을 내어 약속을 잡아 만난다는 것이 친구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니까. 분명 이들 말고도 당시에 친했던 스쳐갔던 인연들도 참 많은데 이들만이 꾸준히 연락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스쳐가는 인연과 함께 할 인연은 또 정해져있나 싶다. 


  특히 오래된 친구들 같은 경우에는 다들 각자 일하는 분야가 다르다보니까 지금 사회에서 만나려고 하면 잘 만나지 못하는 유형의 사람들이 많아, 이야기를 듣다보면 간접경험으로 시야가 넓어지는 게 참 재밌다. 지인과 허구만 해도 그렇다. 내 친구들 중 유일한 영화학도와 이공계 석사생이다. 내가 지금 영화학도랑 이공계 석사생과 어디서 어떻게 만나 친구를 할 수 있겠는가.


  한때는 약간의 관계중독자였는지 내가 모임을 주도하거나, 먼저 연락하거나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의식적으로 그렇게 하다보니까 어느 순간 모든 것이 버거워지고 부담스러워졌다. 스스로 감당이 안 되자, 넓은 인맥보다는 내 주위 사람들만이라도 잘 챙기자는 마음이 들었고 나를 찾아주는 친구들에게 고마운 마음으로 더 먼저 연락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너무 폐쇄적 인간관계를 가지고 있나 싶으면서도 있는 친구들에게도 그다지 잘 하고 있지는 못한 실정이니! 인간관계에도 선택과 집중이라는 신조를 이어나가는 중이다. 


  나는 의식적으로 친구들에게 연락도 꾸준히 하려고 하는 편인데, 갑자기 잠수를 타며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려고 하는 성향을 가진 사람들도 종종 보았다. 그렇게 되면 대부분 연락이 끊기게 되는 것 같다. 연락이 끊기게 되면 씁쓸한 점이 마치 전 남자친구처럼 그들과의 추억이 굉장히 씁쓸한 추억으로 남는다는 것이다. 그런 경험이 많지는 않지만 대학원 시절 1학년 때 굉장히 친하게 지냈던 동기 언니들과 모종의 사건으로 어색한 사이가 되어 인연이 끊기게 되었는데, 당시 참 인간관계의 회의감을 많이 느꼈던 것 같다. 사이가 안 좋게 끝나다보니 당시 즐거웠던 추억들도 씁쓸하게 남아 펼쳐보기 애매한 페이지가 되어버렸다.


  모든 인간관계는 어렵지만, 친구는 아무런 대가가 없다는 점에서 더욱 어려운 인간관계다. 그 둘의 관계를 유지하는 건 그냥 그 두 사람의 사랑과 의지뿐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어느 하나가 손을 놓으면 그냥 끝나는 관계. 대가가 있다면 그건 더 친구가 아닌 것 같고! 물론 어느 관계나 기브앤테이크, 만나면 긍정적인 영향을 서로 줄 수 있어야 하는 건 맞지만 말이다.


  여행을 자주 다니던 시절에는 모든 관계에 초연하여 그냥 어디에도 정착하지 않고 이렇게 유랑하면서 살아도 좋겠다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 때도 그래도 외롭긴 했는지 SNS를 달고 살았던 점은 잊은 채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생각한 시절이 있었다는 것이 무색하게도 지금은 친구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닫고 있다. 이건 학생을 벗어나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서 더욱 더 그랬다. 회사는 회사니까 회사에서 만나는 동료들은 아무래도 친구랑은 다르기 때문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맞는 좋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그리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시간이 많던 대학 시절과 달리 가볍게 번개 모임을 할 수 있는 동네 친구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꼈는데, 나에게 그런 동네 친구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대학원 생활까지는 사실 학교라는 공간이 있었으니 괜찮았지만,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로는 연고지가 없는 곳에서 사회인으로 사는 건 참 외로울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서울이라면 젊은이들이 많이 모여 있으므로 이러 저런 취미 모임을 통해 친구들을 사귀면 되겠지만 지방에 사니 그마저도 마땅치 않았다. 용기가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 이는 강경지방파이던 내가 다시 상경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금 가지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처음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취업 준비를 해야 했는데 맨 땅에 헤딩하는 기분이었다. 당시 고향에서 터를 잡고 일하고 있던 고향 친구들을 만났는데, 또 나름 사회 선배들이라고 고민도 잘 들어주고 용기도 북돋아줬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자칫 큰 우울감에 빠질 수 있었을 것 같은데, 덕분에 또 다시 새로운 고향에서 적응을 잘 할 수 있었다. 취업을 하기까지, 그리고 이후 취업을 하고 나서도 첫 사회생활이었던 나에게 전용 질문 창구가 되어주었다. 그 중 한 친구는 함께 시간을 내어 같이 바람도 쐬러 가고 그 시기 자주 만났었다. 신기한 건 그 친구와는 20년 지기가 무색하게도 이전에는 특별히 단둘이 친한 사이는 아니었는데, 동네 친구가 되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날이 많아지면서 급격하게 다시 친해지게 되었다. 특히 시험에 떨어진 날 같이 집에서 떡볶이를 시켜 먹으며 혼자 있지 않게 시간을 함께 보내주고, 2개월간 있었던 사무실에서 갑작스레 다른 곳으로 이직해야 했을 때는 차로 짐도 실어주는 등 나에게 가장 힘든 날 가족보다도 더 큰 힘이 되었던 친구여서 평생 이 은혜를 갚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그 힘든 시기가 얼마 되지 않아 이 친구는 다른 지역으로 이직하게 되어 예전만큼 자주 만나지는 못하는데, 힘든 시기에 찾아 온 귀인이라고 생각한다.  


  불안하던 시기를 지나 고향에서 직장인으로 사는 삶이 적응되었지만, 모든 직장인이 그러하듯 인생의 회의감이 찾아오고 평생 이렇게 살아야하는지 막막하던 올해에는 또 다른 친구와 올해 이직을 하자고 마음을 다잡으며 카페에서 만나 취업준비를 했다. 이직스터디 아닌 이직스터디를 함께 하게 되었는데, 하루만 만나지 않아도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던지 수다스터디로 변질되곤 했다. 그렇지만 수다스터디인들 어떠랴! 어차피 집에 가면 침대에 누워서 의미 없이 유튜브 쇼츠만 보고 있었을 텐데. 퇴근하고 카페에서 만나 함께 그 시기의 고민을 깊이 나누고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마음 맞는 친구가 있음에 너무 감사했다. 이 친구와의 인연의 시작은 아직까지도 미스테리한 점이, 분명 어릴 때부터 친구인데 같은 반이 된 적도 같은 학원에 다닌 적도 없다. 분명한 것은 정말 기억이 나 나는 시절부터 우리는 친구였다는 점인데,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비슷한 점보다는 다른 점이 많다고 생각하게 되는 친구이기도 한데 그 다른 점 덕분에 그 친구에게 본받을 점도 많다고 생각한다. 


  백수가 된 지금은 함께 백수(?)인 친구가 있어 든든하다. 이 친구도 20년 지기 동네 친구이다. 다들 일 하고 있는 와중에 함께 놀 수 있다는 친구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 일인지. 아무리 백수를 원했다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미래가 불안한 상황에서 예전처럼 취미활동을 적극적으로 할 수가 없겠더라. 자칫하면 사람도 만나지 않고 밖에도 나가지 않고 우울해있었을 것 같은데, 친구와 함께 카페도 가고 여행도 가고 아침마다 등산도 하고 보드게임도 하는 등 덕분에 직장인보다 더 바쁘고도 즐거운 백수생활라이프를 이어가고 있다. 이 친구는 오히려 나의 퇴사를 누구보다 반겼을 정도이니. 이렇게 인생의 힘든 시기마다 오히려 때로는 가족보다 더 위로되는 친구들이 있어 너무도 감사하다. 


  갑자기 분위기 내 친구를 소개합니다가 되어 버렸는데, 한 친구만 더 소개하고 싶다.(쓰다보니 다 쓰고싶다!!!!) 다들 소중한 친구지만 그래도 네가 제일 친한 친구가 누구야? 하면 늘 말했던 친구이다. 이 친구는 외동딸이라 어떻게 보면 가족같은, 자매같은 친구이기도 하다. 만나면 늘 편하고 가감없이 나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친구다. 고등학교 친구인데, 거의 연인처럼 매일 안부를 물어주는 덕에 서로 일상을 공유하는 사이여서 제일 친한 친구라고 소개하고는 한다. 이 친구도 연뮤덕(연극 뮤지컬 마니아)이어서 내가 친구인지 용병(연뮤덕 용어 : 티켓팅을 도와주는 걸 용병이라고 한다)인지, 덕친(취미를 공유하는 마니아 친구)인지 실친(현실 실제 친구)인지 헷갈릴 때도 있지만, 10년 동안 나의 명실상부 베스트프렌드로 늘 그 자리에 있어 준 소중한 친구다.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건 힘든 순간들도 있지만, 또 기쁜 순간들도 마찬가지다. 나에게는 의외로 시니컬한 구석이 있는데, 좋은 소식을 알렸을 때 나보다도 더 기뻐하는 친구들을 보면 좋은 소식 그 자체보다도 좋은 소식을 알려줄 수 있어 기쁜 마음이다. 오히려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내가 기쁜 느낌이랄까. 어떤 때는 나보다도 더 나를 믿고 나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친구들. 고맙습니다. 나는 생일도 그다지 의미를 두지 않는 편이어서 카카오톡에 생일 노출도 하지 않았는데 다소 기억하기 쉬운 특이한 생일 덕분인지는 몰라도 잊지 않고 축하를 해 주는 친구들을 보면 잘 살아야겠다는 다짐이 새삼 샘솟고는 한다. 


  친구들 덕에 인류애를 상실하고 혼자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내가 요즘 들어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지, 이 세상에서 사랑이라는 가치가 얼마나 위대한지 새삼 깨닫고는 한다. 내가 연애를 장기간 안 해도 충분했던 건 친구들 덕분인지 탓인지! 원래도 외로움을 크게 타는 편은 아니지만, 친구들 덕에 아주 외로울 틈이 없었다. 그래도 다들 사는 게 바쁜지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듯 해 그건 아쉽지만, 이 또한 자연스러운 현상이겠지. 친구들이 다 유부의 세계로 떠나기 전에 나도 함께 떠나야 할 텐데! 부모님의 친구들을 비추어보건대 지금 나와 함께하는 친구들은 몇 십 년 후에도 인연이 계속될 게 분명하여 우리들의 미래를 그려보고는 한다. 우리 함께 잘 늙어나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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