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현대자동차의 첫 번째 전기차 전용 모델인 아이오닉 5의 환경부 인증 주행거리가 공개됐다. 공개된 주행거리는 상온 405km, 저온 354km로 20인치 휠이 적용된 프레스티지 트림 후륜구동 모델 기준이다. 지난달 현대차에서 공개한 429km의 주행거리보다 줄어들었는데, 당시 공개한 주행거리는 19인치 휠이 적용된 익스클루시브 트림 후륜구동 모델 기준인 것이다.
사전계약 당시 뜨거운 인기를 보였던 만큼 아이오닉 5의 공식 주행거리가 공개되자 소비자들의 실망스러운 반응이 이어졌다. 사륜구동 모델도 아닌 후륜구동 모델 기준인데다 기존 현대 대표 전기차 모델인 코나 일렉트릭의 환경부 인증 주행거리보다도 상온 0.6km, 저온 12km 짧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직 공식적으로 공개되지 않았지만, 사륜구동 옵션을 선택할 경우 주행거리는 300km 후반대로 더 줄어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아이오닉 5 롱레인지 모델의 배터리 용량은 72.6kWh로 코나 일렉트릭 배터리 용량보다 8.5kWh 늘었고, 현대차의 전기차 전용 플랫폼인 E-GMP 플랫폼을 적용했다. 또한 현대차는 지난해 E-GMP 플랫폼을 공개하며 국내기준 1회 충전으로 500km 이상 주행이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한참 미달한 결과다. 비슷한 용량인 72kWh 배터리를 탑재한 테슬라 모델 3의 주행거리(상온 495.7km, 저온 438km)와 비교해도 한참 부족하다. 테슬라 모델 3와 비슷한 주행거리를 기대했던 소비자들의 실망감이 커질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현대 아이오닉 5의 주행거리가 경쟁모델 대비 짧은 것은 현대차가 강조하고 있는 V2L(Vehicle to Load) 기능 때문이다. 전기차의 구동용 배터리를 외부 전원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기술로 기존 내연기관 또는 전기차에 사용되는 220V 인버터와 유사하지만, 성능이 대폭 개선된 기능이다. 기존 200W 수준의 220V 인버터와 달리 아이오닉 V2L은 최대 3,600W까지 사용 가능하다. 이는 일반적인 가정용 벽체 콘센트의 정격 용량(약 2,500W)보다 높은 수치로 에어컨, 히터, 냉장고, 하이엔드 오디오 시스템 등 소비전력이 높은 대부분의 전자제품을 연결해서 사용할 수 있다.
V2L 기능을 적용하며 현대차는 아이오닉 5의 배터리 충전율(SOC)의 안전 마진을 일반 모델보다 더 높게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가혹 주행, 급속 충전뿐만 아니라 V2L을 이용한 고전력 제품을 사용할 경우까지 고려하면 배터리에 가해지는 스트레스가 타 모델 대비 높기 때문이다. 결국 배터리 화재 우려가 타 모델 대비 높고, 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안전마진을 높게 설계한 것이다. 특히 화재 이슈로 몸살을 앓았던 코나 일렉트릭의 배터리 충전율 안전 마진이 경쟁 모델 대비 30~40% 수준으로 매우 낮았던 것도 영향을 준 것을 보인다.
현재까지 V2L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곳은 캠핑 또는 행사장에서 활용하는 이동형 ESS(Energy Storage System) 정도다. 아이오닉 5로 헤어 드라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해서 머리를 말리러 차에 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때문에 아직까지 소비자들이 V2L 기술 적용으로 인한 주행거리 감소가 달갑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시대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자율주행 기술이 발전하며 자동차는 단순한 이동수단을 넘어 이동형 사무공간, 휴식 공간 등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레벨 4 수준의 자율주행이 구현되면 자동차는 운전자에게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는 하나의 공간이 될 수 있다. 앞으로 다가오는 자율주행 시대에는 V2L 기술이 정차 중 캠핑장에서 뿐만 아니라 운행 중 탑승객 모두 전력 제한 없이 다양한 경험을 누릴 수 있는 핵심 기술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오토버프(knh@autobuf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