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래서 널 좋아해

안전주의자의 안 안전한 친구

by autumn dew

우리는 생각해 보면, 닮은 구석이 별로 없었다. 나는 굉장히 패턴화 된 사람인 반면, 그녀는 종잡을 수 없는 편이었고 나는 어느샌가 그녀를 예측불가능한 것이 예측가능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대학 동기이자 단짝이었던 우리는, 생각해 보면 1학년 때를 제외하고는 서로 독립적인 대학생활을 보냈다. 복수전공을 하고 싶은 학과도 서로 달랐고, 각자 가졌던 1년 간의 휴학시기도 겹치지 않았다. 자연스레 연락은 드물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친구가 나에게 있다'는 것으로도 충분한 사이였다.


나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하고 싶은 일 앞에서 주저하지 않고 무작정 손을 뻗고 보는 그녀. 가끔씩 그녀의 일상을 들을 때마다 늘 흥미로웠다. 모든 것에 있어 '안전'을 먼저 따지는 나와는 닮은 구석이 없는 친구. 4학년을 앞두고 취업준비는커녕 갑자기 중국어를 복수 전공하더니 교환학생을 가야겠다며, 대뜸 중국으로 교환학생을 떠나질 않나. 직장생활 중에는 갑자기 쿠바에 가고 싶다며, 훌쩍 떠나서는 한국에서는 전혀 입을 수 없는 다소 옷감이 부족(?)한 느낌의 옷을 입고 현지인들과 춤추는 영상을 보내질 않나. 어떨 땐 만화 속 인물 같아서, 통화를 할 때마다 늘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단순하지만 특별한 선택을 하는, 인생의 새로운 단면을 가만히 있어도 가까이에서 들려주는 그녀를, 나는 그래서 좋아했다. (그녀는 사실 이곳에서의 내가 쓴 '친구'에 관한 모든 글의 주인공이다.)


기껏해야 1년에 한두 번 정도밖에 얼굴을 보지 못하는 사이었던 우리였는데, 올해 초 우리는 각자의 직장에서 새로운 삶을 선고받았다. 나는 감사실로, 친구는 비서실로 발령을 받았다. 처음 비서실에 발령이 났다며 통화를 했을 때, 그녀는 갑작스러운 현실을 연신 '가혹하다'라고 표현했다. 내 몸 하나 챙기기도 버거운데 다른 사람까지 챙기는 게 말이 되냐며 한참을 투덜대던 그녀는, 조용한 시골에서의 한적한 직장생활을 뒤로하고 회사의 본부가 있는 도심으로 나왔다. 나는 고향을 떠나 인천으로 오면서, 자연스러운 출퇴근의 개념에서 벗어나 출동에 가까운 출장으로 한 달에 절반 정도를 바깥에서 생활해야 했으니 우린 모두 관성을 깨고 삶의 패턴을 바꿔야 하는 전환점을 마주해야 했다. 이젠 더 멀어져 버린 서로에게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응원뿐이었다.


쿠바 여행을 다녀온 뒤 줬던 그림 선물


그러다 한 6개월 정도가 지났을 무렵이었나. 오랜만에 그녀와 통화를 하는데, 이제는 비서실에서의 삶이 적응이 되었고 일이 적성에 맞는 것 같다며 대뜸 비서 자격증을 취득하겠다고 했다. 자연스럽게 업무를 하면서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면서. 역시 예측 불가능한 것이 예측 가능한 친구. 그래, 내가 이래서 널 좋아했어.




대학을 졸업하고 연이은 취업 실패로 실패자처럼 좌절하고 있을 때, 아직 학생 신분이었던 그녀가 아무렇지도 않게 툭 던지듯 나에게 말했다. "내가 아무리 좋은 말로 응원을 해줘도, 네가 마음을 고쳐먹지 않으면 그 어떤 말도 소용이 없어." 주변 사람들의 어떤 말도 곱게 들리지 않았던 나에게, 응원 예상리스트에 없던 그녀의 한 마디는 당시 나에게 가장 큰 울림이었다. 그래, 내가 그래서 널 좋아했지.


그런 그녀가 큰 마음을 먹고 내가 떠나 온 인천으로 여행을 왔다. 시간 맞춰 기차역으로 마중을 나가기로 했는데 기차를 자주 타지 않는 데다 가뜩이나 예측 불가능한 그녀를 알기에, 기차에 잘 탑승했는지 연락을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간발의 차로 기차를 놓쳐서 부랴부랴 다음 열차를 예매했다고 했다. 다행히 20분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지만, 나는 여태의 그녀를 너무 잘 알기에 그 사실마저 대수롭지 않았다. 오히려 웃음이 나왔을 뿐.


혹시나 싶어 굳게 닫힌 문을 두드렸다며 보내준 인증 사진


그렇게 우리는 오랜만에 반갑게 만나 1박 2일 동안 한참을 떠들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 그녀는 그녀가 말했던 대로 비서 자격증을 취득했다고 했다. 그리고 이어 또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며 새로운 꿈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역시나 나 같은 '안전주의자'는 생각해 본 적도 없는 꿈이었다. 역시나 비범하다. 나와는 너무나 다른 방식의 일상을 살고 있는 그녀의 이야기에 계속 웃음이 나왔고, 우린 어쩜 이렇게 다른데 이렇게나 오래 친구가 되었을까-하고, 우리 사이를 신기하게 여겼다. 우린 너무 다르지만, 이런 서로를 대단하게 여기는 걸 보면, 마음의 결은 맞을 거야. 그렇지? 또 그렇게 까르르 웃었다.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다시 그녀를 기차역에 데려다줘야 할 때에 나는 또 혹시나 늦어서 기차를 놓쳐버릴까 불안한 반면 그녀는 전혀 바빠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나에게, 기차를 한 번 놓쳤을 때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는데 어떤 결과가 벌어져도 사람이 대처하지 못하는 일은 없는 것 같다며, 마음이 분주한 나를 진정시키려 노력했다. "너처럼 계획적인 태도를 일곱 스푼, 나처럼 낙관적인 마음을 세 스푼 정도 넣어서 잘 섞으면 괜찮은 삶일 텐데, 그지?"


네- 선생님, 잘 알겠습니다만.

기차를 타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너거든요.



약속 하루 전, 나는 한 번 더 확인 전화를 해야겠다 싶어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었다. 걱정 말라며 알아서 잘 가보겠다고 말하던(퍽이나) 그녀는, 나에게 지금 어디냐 물었고 나는 기숙사 근처 식당에서 홀로 저녁을 먹고 있다고 했다.


"뭐 먹어?"

"순댓국."

"와, 맛있겠다."

"혼자서 먹을 수 있는 메뉴는 한정적이잖아. 순댓국 아니면 국수 같은 거."


보통 혼자 타지에서 밥을 먹고 있다 하면 대부분 나를 안쓰럽게 여기고 잘 챙겨 먹으라고 응원을 건네는데, 역시나 그녀는 달랐다.


"왜 혼자 먹을 수 있는 메뉴를 한정 지어? 난 고깃집 가서 혼자 고기도 구워 먹는데. 3인분 정도 시키면, 혼자가도 아무도 뭐라 안 해. 그 정도 먹고, 마지막에 냉면까지 먹으면 딱 좋아. 진짜 한 번 해봐. 추천."


역시나 예상을 벗어난 어처구니없는 멘트에 한 손엔 핸드폰을, 한 손엔 숟가락을 듣고 한참을 웃었다.




어쩌면 나는 스스로를 서글프게 여기며 전형적인 응원과 위로를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나를 처량하게 여기기는커녕 아주 단호하게 다그치는 그녀.


"앞으로 혼자 먹을 수 있는 메뉴를 한정 짓지 마."


식당 가장 구석자리에 앉아 안쓰러울 뻔했던 식사가 아주 유쾌하게 마무리됐다.

아, 이런 일로 혼이 나다니.


역시. 내가 이래서 널 좋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