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을 바라보면 어색한 사회

에너지 위기 시대의 또 다른 에너지 위기

by autumn dew

취준생 시절, 코레일 직원 한 사람 분의 월급은 내가 마련해 줬겠다 싶을 정도로 채용 시험과 면접을 보기 위해 부단히 대구와 서울을 오갔다. 그렇게 도착한 서울은 늘 '아무래도 난 돌아가야겠어. 이곳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아.'라는 노랫말만 머릿속에 맴돌게 했고, 그곳에서 목격한 사람들은 분명 같은 한국 사람인데도 당시 내 눈엔 다른 나라 사람들 같았다. 이래 봬도 나도 네 살까지는 서울에 살았는데, 어떻게 다들 어찌 이렇게 붐비고 비싼 곳에서 살고 있을까.


그 언젠가 주말 연이어 있었던 필기시험을 보기 위해 서울에 올라갔고, 불행히도 퇴근 시간에 2호선을 탔다가 지옥을 맛봤다. 혹시나 방송을 놓칠세라 전전긍긍하는 나와는 달리, 서울 사람들은 모두 작디작은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귀에는 이어폰을 끼고 있었다. 미어터지는 곳에서도 모두 흔들림 없이 핸드폰만 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생각했다. 난 여기선 못 살아. 이렇게는 못 살아.


그렇게 결국 취업에 성공해 처음 발령받은 곳은 아주 작은 소도시였고, 여유롭다 못해 심심한 그곳의 밀도에 익숙해졌다가 주말에 대구에 와 버스를 타게 되면, 대구마저도 잡하게 느껴졌다. 일단 그 동네는 버스를 서서 탈 일이 없었으니까. 아니, 내 돈 내고 타는 버스를 이렇게 서서 타야 다고?



그렇게 첫 발령지와 대구를 거쳐 2년 전, 그렇게도 피하고 싶었던 수도권으로 발령을 받아 왔다. 떠나기 전, 같이 근무했던 이들은 내게 이제 서울 사람이네, 하고 장난치며 인사를 건넸지만 난 사실 두려웠다. 죄송하지만, 사용하는 언어부터 다른데요. 내 귀에 낯간지러운 서울말은, 흉내조차 불가하도록 혀가 굳어져 버렸으니. 언어는 둘째치고 그 미어터진 곳을 내가 견딜 수 있을까. 사람과 불가피하게 물리적 거리를 좁혀야 하는 것이 두려웠다. 숨을 나눠 쉬어야 할 텐데, 과연 그곳엔 내가 마실 숨이 남아있을까.




부득이하게 차를 이용하지 못해, 버스로 출근을 하게 되는 날엔 늘 만원 버스를 경험해야 했다. 여태 본 적 없던 뒷문 탑승, 앞문 하차. 버스 정류장 전광판에 '여유'였던 초록불이 노란색 '보통'으로, 그러다 빨간색 '혼잡'으로 바뀌는 것을 보게 될 때면 늘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렇게 올라탄 버스에서 언젠가 한 번은 출근하기도 전에 땀범벅이 되어 내린 적도 있고, 또 언젠가 한 번은 정말로 내리지 못할 뻔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더 놀라운 건, 불안해하는 사람은 나 말곤 없어 보인다는 점. 다들 여전히 한 손은 버스 손잡이에 한 손은 스마트폰을 들고 귀에는 이어폰을 꽂고 있다. 한 번은 서서 화장하는 사람도 본 적이 있다. 기인열전 인가.


사실상 내 에너지 절약을 위해서 자가용을 이용하는데, 안타깝게도 작금의 현실 진짜 에너지 위기가 왔고 청사에는 차량 5부제가 실시되었다. 이제는 내 에너지를 세상의 에너지 부족분에 양보해야 했다. 그러다 회식 때문에 차를 두고 퇴근해야 했던 어느 날, 그다음 날엔 도저히 지친 몸으로 만원 버스를 탈 자신이 없어 택시를 불렀다. 부득이하게 내 에너지를 비축할 요량으로 다른 에너지를 돈 주고 샀다.



이번 주 내 차가 부재였던 날. 서울에 출장이 예정돼 있었고, 어차피 서울은 대중교통으로 가는 것이 맞으니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고 서울로 갔다. 그렇게 업무를 마치고 다시금 집으로 돌아가는 길. 지하철의 문 앞에 서서 까만 유리에 비치는 지하철 안 사람들을 구경했다. 역시나 모두들 핸드폰을 보고 있고,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은 사람은 잠든 사람들과 나뿐이었다. 허공을 응시하면 이상한 사람이 되는 곳일까, 이 도시는.




붐비는 버스 안, 그들 사이에서 겨우 허공만 바라보다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하고 나면 에너지가 바닥을 친다. 분명 나에게 할당된 숨의 양이 이곳에서는 적은 것이다. 그래서 여전히 나는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핸드폰을 보지 않는다. 그저 타인의 시선이 닿지 않는 어느 허공을 바라볼 뿐. 그래야 조금이나마 내 에너지를 더 비축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여기는 무엇이라도 보면서 에너지를 써야 어색하지 않게 여타의 사람들과 섞일 수 있는 곳인 것만 같다.


이제 청사에서는 차량 5부제가 아닌 2부제를 한다고 한다. 큰일이다. 세상의 전쟁이 출근길 전쟁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하루빨리 전쟁이 끝나 세상의 에너지 위기도, 내 에너지 위기도 끝났으면. 일상의 평화를 되찾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