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같은 취미를 가지는 것
어렸을 때 우리 가족은 캠핑을 참 많이 다녔다. 우리 가족끼리도, 아빠 회사 동료네 가족들과 같이 가기도 하고, 계곡도 찾아다니고, 제주도로도 캠핑을 가고. 어린 시절 기억이지만 단편적으로 생각나는 몇 가지 추억들이 오랫동안 남아 행복한 추억이 되었다. 억수로 쏟아지는 비가 텐트를 두드리는 소리를 들으며 깔깔거리던 기억, 한여름인데도 계곡물에 담가놨던 수박은 얼음장같이 차가웠던 것, 세 가족이 봉고차로 이동 중 맨 뒷자리에서 창문 옆에 앉은 내 옆으로 다른 아이들이 도미노처럼 엎어져서 짜부되었는데 그게 또 재미있던 기억 등등(그때 그 기억이 지금까지 남아있으리라는 걸 그때는 알았을까?) 우리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그런 복작복작한 캠핑은 추억으로만 남게 되었다.
그렇게 20년 가까이 흐른 후 신입사원 시절, 연차가 없는 나에게 주어졌던 3일의 소중한 하계휴가에 아빠가 캠핑을 제안하셨다. 동생은 군대에 있었던 시절이라 부모님과 나 셋이 단촐하게 밀양 얼음골로 캠핑을 갔는데, 딱딱하게 긴장하고 살았던 반년의 피로가 한 시에 풀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늘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책을 읽고(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었다) 아빠가 해주시는 삼계탕과 닭갈비를 먹으며 와인을 마셨다. 계곡물에서 찰방거리며 노는 아이들을 보며 내 발도 담그고, 텐트 안에 누워 하늘도 보며 이게 행복이구나 했다. 부모님과 해마다 여행을 다니는 편이었지만 유독 그때, 신입사원 여름휴가 때의 캠핑은 더 진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그 추억은 지금껏 남아 회사생활에 지치는 날들에 나에게 힘이 되곤 한다.
그리고 또 10년이 흘렀다. 나는 나의 가족을 형성하게 되면 당연히 캠핑을 다닐 거라 생각했는데 남편은 어릴 때 캠핑을 안 다녀봐서 그런 추억이 없다며 캠핑을 '사서 고생'으로만 생각했다. 힘들게 짐을 바리바리 싸 가서 다 풀어헤쳐 세팅하고, 고작 하룻밤 자고 다시 짐을 싸서 집에 와서 정리하고, 그런 걸 왜 하는지 이해를 못 하겠다고 했다. 그런 남편을 끌고 산으로 계곡으로 캠핑을 다녔다. 남편이 캠핑을 좋아하지도 않는데 이것저것 장비부터 살 수는 없으니 장비가 다 갖춰진 글램핑부터 시작해서 춥지 않을 땐 원터치텐트 하나 달랑 들고 야영을 시도하기도 했다. 우거진 녹음, 살랑이는 바람, 숯에 올린 고기와 와인, 야외에서 마시는 시원한 맥주, 그리고 불멍은 쉽게 싫어할 수 있는 것들은 아니다... 이제는 남편도 캠핑을 좋아하게 된 것 같아서 최근에 패밀리용 대형 텐트를 샀다. 남편과 처음 캠핑을 간 것이 5년 전이니 5년의 빌드업 끝에 이뤄낸 결실이다. 텐트를 사니 조명도 새로 사야 하고 히터, 릴선, 테이블 등 살 것이 줄줄인데다가 예상보다 더 많은 것을 챙겨야 했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하나하나 준비했다. 그리고 새삼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어릴 때는 따라만 다녀서 몰랐는데 이 많은 것들을 하나하나 엄마가 다 챙기셨겠구나(아빠는 바쁘셨기 때문에). 하나라도 빼먹으면 난감한 게 캠핑인데 어린 우리와 바쁜 아빠를 두고 엄마 혼자 얼마나 고군분투하셨을까.
그 텐트를 들고 지난주에 남편과 드디어 캠핑이라고 말할 만한 '첫 캠핑'을 다녀왔다. 나름대로 예상되는 상황에 맞춰 열심히 준비했지만 아직 미흡한 부분들도 있었고 비까지 내려 원치 않았던 우중캠핑까지 경험했지만 정말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피칭하기 쉽다는 텐트를 골라 샀더니 피칭도 나름 수월했고, 준비한 음식들도 다 맛있었고, 춤추는 불을 바라보며 멍 때리는 것도, 마시멜로우를 구워 먹으며 남편과 농담 따먹기를 하는 것도, 각자 핸드폰하는 시간까지도 다 좋았다. 원하는 만큼 불멍을 하려면 장작 10kg로는 어림도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예상한 바이지만 남편도 이제는 캠핑에 빠진 것 같다. 그래... 캠핑의 매력은 쉽게 거부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지...
이제 남편과 평생 함께 즐길 취미를 만든 것 같아 기대되는 마음이다. 지금은 아이가 없지만 나중에 캠핑장을 뛰어다닐 아이가 있는 우리의 모습을 생각해 보는 것도 꽤 흥미진진하다. 캠핑을 다닐 때마다 주변 텐트의 아이가 있는 가족을 보면서 우리도 나중에 저렇게 놀면 되겠다, 하는 이야기를 자주 하곤 한다. 어린 시절 캠핑에 관한 행복한 추억들이 나라는 사람을 튼튼하게 지지해 주는 주춧돌이 되었듯이 미래 나의 아이에게도 이런 것들이 전달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그래서 요즘 우리는 캠핑에 아주 푸욱 빠져있다. 캠핑 다녀온 것이 고작 일주일 전이지만 다시 캠핑 가는 날만을 기다리며 틈만 나면 캠핑 유튜브를 찾아보고 캠핑 아이템을 구경하곤 한다. 보통 나의 관심사에 남편이 열정적으로 동참해 주는 일이 잘 없는데 지금은 남편이 더 신난 것 같기도 해서 참 좋다. 같은 취미를 가진다는 것은 나에게 꽤 중요한 한 가지 포인트였는데 이제 달성한 것 같아서 마음 한 켠이 따듯하기도 하다. 결혼생활이라는 건 길고도 험난한 여정일 텐데 나름의 베이스캠프를 구축하는 느낌이랄까. 긴 여정 동안 서로 힘든 상황이 올 수도 있겠지만 우리의 마음을 묶어주는 매개체를 하나쯤 구비해 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베이스캠프에서 다시 시작하면 되는 거다. 이렇게 남편과 함께 할머니 할아버지가 될 때까지 사이좋게 캠핑을 다니는 것이 나의 로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