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텀민 Nov 10. 2023

주인공 없는 생일파티에 가는 기분이네요

팀장님의 부재

 모처럼 팀 회식이 잡힌 어느 날이었다. 우리 팀은 특성상 팀원들의 출장이 잦은 편이고 팀원마다 업무가 제각각이라 팀원 모두가 동시에 사무실에 출근해 있는 날이 그다지 많지 않다. 팀장님을 포함한 6명 중 항상 누군가는 출장 중이다.


 팀장님은 회식에 집착하는 편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싫어하는 게 갑자기 밥 먹자는 이야기인데, 오전 10시 다 되어서 오늘 점심 다들 가능하시죠?라는 질문을 들으면 성질이 난다. 내가 긴 회사생활을 이어올 수 있었던 이유 중 가장 큰 포션을 가지고 있는 게 바로 프리한 점심시간이기 때문이다. 어떤 조직에 가도 점심의 자유만 보장된다면 나는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팀 이동과 이직을 포함한 세 번의 조직 이동에 걸쳐 알아냈다. 남편은 점심 좀 같이 먹으면 어때, 말하지만 나에게는 그것도 며칠 전에는 알려주고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주어야 스무스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건이다(우리 팀은 평상시에도 점심을 제각각 먹는 편이다).

 팀장님은 점심을 제안하고선 꼭 이런 사족을 붙인다: 다 같이 출근한 날이 오늘 뿐 인 것 같은데 이런 때 밥 먹어야죠. 그렇지만 지난주에도, 지지 지난주에도 그런 말씀을 하셨잖아요?

 나는 이직한 지 이제 막 2년이 될 참이기 때문에 초반에는 군말 없이 따라나섰으나 요즘은 약속이 있다고 뻥을 치는 여유도 부리게 되었다. 그래도 점심 회식은 대부분 라이트 한 번개로 여겨지기 때문에 내가 따라나서지 않더라도 크게 개의치 않는 것 같다. 점심 회식이기 때문에 다른 팀원들도 부담 없이 따라나설 것이고.


 최근 여러 달 동안 팀 저녁 회식을 하지 못했다. 보통 저녁 회식은 술이 동반되므로 공식적인 팀 회식으로 여겨진다. 예전과는 다르게 자주 회식을 하지 않으니 가끔 가다 있는 저녁 회식은 필수 참석이고, 우리 같은 소규모 팀에서는 팀원 한 명이 스케줄상 안 되는 경우 모두의 참석을 위해 아예 날을 새로 잡곤 한다. 그러니 팀원인 나의 입덧은 한동안의 팀 회식을 중단시키는 이유가 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단순히 이 한 가지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아무튼 그렇게 대략 반년만의 회식이 있는 날이었다. 이 날은 오전에 한 달에 한 번 있는 팀 전체 회의도 있었다. 보통 오전 내내 진행하는데, 팀장님이 들어오시지 않았고 팀장님이 들어오시지 않은 팀 전체 회의는 20분도 안 되어 끝이 났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팀장님이 몸이 좋지 않으신지 감염을 우려해서 팀 회의에 참석하지 않으셨다고. 그래요? 회식은 어찌하시려나. 임산부인 나는 슬그머니 걱정이 됐지만 그러려니 하고 말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오후가 되자 팀장님이 회식 불참을 알리셨다. 아예 취소할 법도 한데 너무 오랜만의 공식 회식이라 그냥 본인 없이 진행하시는 것 같았다. 몸이 정말 많이 안 좋으신가 보다, 하는 걱정과 동시에 회식 분위기가 살짝 걱정이 됐다. 무슨 말을 해야 하지?


 업무 시간이 끝나고 회식 장소로 가는 엘리베이터에서 뒷자리 과장님이 말했다. 팀장님이 안 가시니 주인공 없는 생일파티에 가는 기분이네요, 허허. 세상에,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난처한 웃음을 지었다. 우리 팀은 경력직이 4명(팀장님 포함), 신입사원 출신이 2명인데 경력직도 가장 오래된 사람이 4년 차이고 신입사원 출신들도 이 팀에서 회사생활을 시작한 것이 아니다. 서로 간의 시간이 쌓여 생기는 끈끈한 정 같은 것은 없다고 봐야 한다. 그나마 4년 정도 본 팀원들끼리는 종종 티타임도 하는 것 같지만 내 생각엔 그것도 피상적이며 서로의 니즈에 의한 정보공유의 장- 정도로 보일 뿐이다. 이직하기 전 회사에서 소속되어 있던 팀은 로테이션이라는 개념이 없어서 한 번 입사하면 (본인의 의지로 다른 팀으로 이동하지 않는 한) 퇴사할 때까지 같은 팀에서 근무하는 시스템이었다. 그렇다 보니 10년, 20년을 서로 보아온 선배들도 많고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았건 오랜 시간을 함께 하게 되니 그래도 할 이야기라는 게 있는데, 지금 내가 소속되어 있는 팀은 정이라는 게 없어 보인다. 다들 기혼인 데다가 엔지니어 계열이라 그런지 - 엔지니어들은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있는 편이다 - 서로 궁금해하는 것도 없다. 아니면 아무래도 경력직이라 그런 걸까? 아, 가서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나. 이게 대체 누구를 위한 회식인가.

출처: shutterstock

 회식 장소에 도착했다. 메뉴 선정을 위한 대화 후 다들 별 말이 없다. 그나마 제일 수다스러운 과장님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회사 이야기다. 경력직으로 늦게 입사한 나는 잘 모르는 분인데 심지어 뒷담화다. 재미가 없다... 차라리 팀 업무 이야기라도 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 뒤로도 쭉, 그 과장님의 다른 사람 이야기가 이어졌다. 알맹이 없는 껍데기만 도로록 굴러가는 이야기. 다들 웃기도 하고 맞장구도 치지만 그뿐이다. 나서서 다른 주제를 꺼내거나 다른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 팀에는 곧 이사하는 사람, 곧 출산하는 사람(나), 신혼인 사람, 초등학교 1학년 자녀를 키우는 사람 등 제각각 여러 가지 이슈가 있는데도 자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예전의 나였으면, 요즘 애기는 어때요? 이사 준비는 잘 되어가요? 인테리어 중이라고 들었는데 집 예쁘게 완성되어가고 있어요? 등등 질문을 던져가며 대화를 이끌었을 것 같은데 (본인이 관심 있어하는 주제로 대화를 이끌어가면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나도 이제는 그럴 의욕이 없어졌다. 가만히 듣고만 있으니 재미는 없지만 편하긴 하다. 여전히 마음 한편, 대체 이 회식은 누굴 위한 회식이며 목적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 맴돌기는 했지만. 회삿돈으로 맛있는 걸 먹으니 좋은 건가. 하지만 내 취향이 반영된 메뉴가 채택되는 날은 그다지 많지 않다(나를 제외한 모두가 남성이므로).


 그렇게 팀 회식은 한 시간 만에 끝이 났다. (한 시간이라니!) 팀장님이 계셨으면 맥주집으로 2차를 갔을 것이다. 하지만 주인공 없는 생일파티가 길게 이어질 일도, 2차로 이어질 필요도 없으니 우리는 깔끔하게 해산했고 나는 약간은 씁쓸한 마음을 가진 채로 집에 돌아왔다. 라떼세대와 MZ세대 사이에 끼인, 아주 살짝 꼰대 기질이 있는 나는 그래도 회사 사람 사이에서도 약간의 정이라는 게 존재할 거라 생각하고 살았는데 그 얄팍한 기대마저도 깨어지는 순간. 우리 팀의 특수성일까, 내가 경력직이라 그런 걸까, 평소에 내가 노력하지 않아서 그런 걸까, 여러 가지 생각을 하다 역시 회사는 회사지- 하며 생각을 접었다. 초코파이 정情은 어디로 갔나.

매거진의 이전글 우물을 탈출한 개구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