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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사르 Nov 03. 2024

퇴사하고 돈을 아무렇게 쓴 이유.

다시 생계

나는 좀 그런 사람이다.     


편한 청바지를 입고,

낮은 단화를 신고,

가볍고 큰 가방을 들고,

안경을 쓰고,

기본화장만 하는 사람.     


남자친구는 내게 넌 늘 수수하니 좀 세련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내가 봐도 참 세련된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거울을 자주 들여다봤다.     


거울 속의 나는 생기가 없었다.

목표를 위해 절제하거나, 나의 욕구를 외면하며 살아온 시간들로 표정을 잃어버린 듯했다.


1년에 한 번은 동남아로 여행을 가고,

일 년에 한두번만 미용실에 가고,

언니 피부에 안 맞아서 내게 준 팩트들을 고마워하며 쓴다. (내게도 안맞는다.)

명품향수를 따라한 니치향수를 뿌리고,

마트에서 파는 속옷을 구매한다.

15만원 주고 산 가방이 제일 비싸고,

알뜰폰 요금제를 쓰며 통신사 할인 같은 걸 받을 빌미를 만들지 않는다.     


이런 나를 스스로 알뜰하고, 똑똑하다며 칭찬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좀 궁상맞다.


내가 여태 이렇게 살아온 이유는 나에 대한 자신이 있어서였다.

외모도 준수하고, 운동을 틈틈이 하고, 몸에 안 좋은 건 안 하니까.

책도 조금 읽고, 공부도 잘하고 심지어 열심히 일하는 데다, 바르고 정직하게 사니까.

나 정도면 꽤 괜찮지 않나,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오만이었다.


어쩔 수 없이 나의 가치는 상대적이었다.


나 라는 사람을 놓고 보면,


누군가에겐 충분하지만,

누군가에겐 모자랄 수도,

누군가에겐 넘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당시 나는 "모자란 사람"이었다.


그래서

퇴사를 하고 남자친구와 헤어진 후 평소엔 하지 않던 과도한 지출을 하며 지냈다.

남들처럼 돈을 써야 내 모자람이 채워질 것 같았다.

아무것도 쓰지 않으려 해서 내가 고달픈 것이라고 이해했다.

나는 아끼는 데 골몰할 여력이 없어서, 쓰지 않는 걸 택했다.

쓰지 않으면서도, 회사와 남자친구에게 반짝이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욕심으로 마음이 고달팠다.


내 마음도, 내 돈도, 내 시간도 쓰지 않으려 해서 내 인생이 고달프다.



그래서 가장 쉽게 쓸 수 있는 돈을 먼저 썼다.


태국 여행을 다녀오고, 면세점에서 비싼 향수를 샀다.

염색을 하고, 렌즈를 사고, 색조화장품을 샀다.     


어떤 면에서는 자신감이 올라갔다. 예뻐진 내 외모가, SNS 상의 그것과 비슷했고.

향수와 염색에 대해 얘기하는 내 일상적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듯 했다.

동시에 재미가 없었다. 하나도 재미가 없었다.


난 그냥 쓸모없어보이는 글을 쓰고 읽는 게,

나날이 달라지는 날씨를 배경으로 둔 동네를 산책하며 지나간 시간들을 반추하는 게

그러다 마음에 드는 꽃이나 벽이 있으면 사진을 찍어뒀다가 두고두고 보는 게.

그런 게 재밌는 사람이라.


그런데 이런 내 유유자적, 느긋하고 안일한 태도가 어쩌면 세상 돌아가는 것과 크게 동떨어져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를 잘하는 것 또한 사회적 평판을 높일 수 있는 수단인데, 나는 그걸 평가절하 해왔다.


‘왜 저렇게까지 돈을 써야해? 난 그렇게 안 해도 괜찮아.’

그래, 어떤 선민의식 같은 거였을까.


이 한참 뒤늦은 깨달음은 전원이 모두 여자인 팀으로 발령된 후부터 시작되었고, 꾸준한 추적관찰을 통해 내가 외골수에 순진한 사람이었다, 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왜냐면, 나는 마치 명절날 어른들과 겸상하는 어린아이처럼 그들의 세상살이 대화에 좀처럼 껴들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세상살이가 독서, 글쓰기, 영어공부하기, 꿈 찾기, 회사 비전, 이런 것들로 퉁쳐진다면 얼마든지 대화에서 활개를 칠 수 있었겠지.


하지만, 여자 팀원 사람들의 대화 패턴은 대충 이러했다.


-어제 OOO에서 OOO 샀다.

-어제 OOO에서 OOO을 먹었다.

-요즘 어디에 OOO이 생겼더라.

-어디에 산후조리원이 생겼는데 너무 좋다더라.


분명 다 알아들을 수 있는데, 외계어였다.

생전 들어보질 못한 뭘 샀고, 왜 가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어딜 갔고, 끝도 없이 생성되는 맛집 리스트를 공유하는데, 다들 신중하게 듣고 공감하며 기뻐하였으므로, 생애 처음으로 그런 것들이 꽤 중요한 정보라는 것을 깨닫고 나 또한 귀기울여 듣게 되었다.  -> 정말로, 그 상황은 자아이탈 화법(?)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겠다. 머리와 다르게 마음으로는 '맛집은 인터넷으로 검색해도 나오고, 뭘 사는지는 너무나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 아닌가? ' 그러나 얘기를 나누면서 사람들은 만족해했으니, 나와는 관심사가 다르다는 걸 실감할 뿐이었다.


한편으론, 그런 이야기만 나누고, 듣고 살다보니

내 귀에는 지루하지만, 분명 일상엔 도움이 되는 얘기다 싶은거다.

하기야 우리가 밥을 먹고 을 입고 를 타는 게 기본이 아닌가.

거기에 아늑한 산후조리원에서 아이를 낳으면 좋겠지.


그렇다. 돌려 말하면 사람들은 남들 만큼 사는 것, 그 자체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거다.

남들보다 맛있는 걸 먹고 싶고, 남들보다 예쁘게 입고 싶고, 남들만큼 산후조리원에서 쉬고 싶은 것.


독서 모임을 다니고, 글을 쓰고, 드라마 작가 수업을 듣거나, 영어 공부를 하는 둥

자신을 날카롭게 단련하며 사는 얘기는 자기소개처럼 말하고 끝나는 일이 된다.

그런 이야기는 스몰토크가 될 자격이 없다.      


그러다보니 얘기만 나눠도 사람들은 빠르게 서로의 형편을 눈치챘다.


명품을 얼마나 샀는지로,

핫플레이스와 맛집을 얼마나 다녀왔는지로,

얼마나 자주, 혹은 얼마나 멀리 해외여행을 가는지로,

차는 외제차인지, 새차인지, 중고차인지로.

골프는 부모님이랑 하는지 혼자 취미로 하는지로.     


'누구는 역시 부자야.'

'누구는 우아해.'


회사라는 곳에서 오가는 말이, 다소 수준떨어지지만, 아차 싶었다.

저런 말이 오간다면, 누군가는 나를 '없어보인다'라고 은연 중에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 싶은거다.

그렇다면 한없이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좀 더 있어보일 필요가 있겠다 싶었다.

만만하게 보이면 안된다.

그래야 내가 하고 싶을 일을 수월하게 할 수 있고, 사람들의 마음을 더 수월하게 얻을테니.


애초에 없는 집 자식인 나는,

넉넉한 삶에서 나오는 여유로움 자체를 누려보지 못했다.

물질에서 나오는 여유로움의 가치를 느껴보지 못했기 때문에 물질적인 것들을 되레 평가절하했다.

물질적인 것의 가치는 정신적인 가치보다 낮다고.

그러니 나는 마음이 부자인 사람이 되자고.


그러나 마음이 부자인 사람이 되지도 못했다.


오랜 백수생활을 통해 나의 정신력의 밑바닥을 봤고,

소위 노가다를 하고, 간병일을 하는 부모님과 공무원이 되어 최저임금을 받는 형제의 뒷바라지 끝에 마음은 옹졸해졌으나, 머리는 지식과 허영으가득 채워졌다.


지식과 허영으로 가득채워진 내가 마냥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덕분에 쉽지 않은 일도 쉬운 것처럼 해낼 수 있었고, 업무 프로세스도 쉽게 이해했다.

여기저기 메뉴얼에서 찾아서, 이론을 적용해서 해결하고. 전체적인 상황을 이해하고 세부적인 내용을 이해하고. 공부하는 것처럼, 일에 적응하는 자체는 그다지 어려운 아니었다.


오히려 부드럽게 소통하는 것, 예를 들면 애교를 부리며 팀장님~ 하는 것,

그리고 애교 부릴 대상인 팀장을 두고도 마치 내가 팀장인 것처럼 모든 것들을 결정해서 사업을 이끌어나가야하는 것, 그런 게 어려웠다.


종국에는 겨 안정적인 직장의 정규직이 되었으나 물질적인 빈곤에서 벗어날 기미가 안 보이자 절망에 빠졌다.


회사생활이 거지같아도 이게 내 인생의 유일한 동아줄이 아니고, 부모든 뭐든 비빌 언덕이 있다는 믿음이 있었더라면 마음에 여유가 있었을까.


그렇게 끝없이 퇴사까지 오게 된 이유를 되짚다가 생각하기를 멈췄다.


그리고 다소 생각 없이, 돈을 썼다. 어차피 가난은 극복하지 못하니 남들처럼 살아보자. 라는 식으로.

그러다 늙어버린 부모가 한 여름 땡볕에서 밭일을 하고 돌아온 모습에 죄책감을 느끼며, 자주 멍해졌다.


낙원이란 게 있을까.

낙원을 바래서, 낙원과 멀어지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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